대통령 전용차의 방어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 2017년 5월 14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 결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취임식을 전후해 이동할 때 새 대통령이 탔던 전용차에 눈길이 쏠렸을 것이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대통령 전용차와 관련한 정보가 어느 정도 알려졌는데, 구체적인 사항은 다른 국가원수 전용차와 마찬가지로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알려진 정보를 바탕으로 여러 사항을 추측해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전용차의 방어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좀 더 깊이 파헤쳐 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이야기에 앞서 간단히 용어를 정리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중요인물 보호를 위해 외부 공격에 대한 방어능력을 보강한 차를 흔히 방탄차라고 하는데, 방탄차는 엄밀히 말하면 총기 공격 대응에 초점을 맞춰 개조된 것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급조폭발물(IED)을 비롯해 각종 폭발물을 사용하는 테러가 늘어나면서 방폭 능력도 요인 보호용 차의 중요한 필요조건이 되고 있다. 방탄처리만 해도 어느 정도 수준의 방폭 능력을 갖추지만, 여러 국가나 단체에서 정한 방탄 및 방폭 능력 인증 기준에서는 두 가지를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흔히 쓰이는 방탄차라는 표현 대신,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췄다는 뜻에서 방호차라는 표현을 쓰겠다.

또한, 방호능력 인증 기준은 국가나 단체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미국에서는 국립사법연구소(NIJ) 표준을 기준으로 삼고 유럽에서는 독일, 영국, 프랑스의 국가별 기준 외에 유럽표준화위원회(CEN) 기준이 널리 쓰이다가 최근에는 독일 방탄 소재 및 구조 시험기관 협회(VPAM)의 14단계 등급 기준으로 인증을 받는 업체가 늘고 있다. 여러 인증 기준이 대부분 차에 쓰이는 소재와 구조의 방탄능력에 따라 등급을 구분하는데, VPAM 기준은 방탄과 방폭 시험 기준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방호능력을 알리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당선 후 곧바로 임기가 시작되면서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다시 취임식이 열린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할 때에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600 가드(Guard)를 탔다. 취임식 후 청와대까지는 현대 에쿠스 스트레치드 리무진을 타고 이동했다. 이 가운데 마이바흐 S 600 가드는 대통령 전용차로는 공식 행사에 처음 선보이는 것이고, 에쿠스 리무진은 외관상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 당시 처음 쓰인 것과 같아 보인다.

두 모델 중 2013년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쓰이면서 먼저 등장한 에쿠스 리무진은 일부 매체를 통해 보도된 바에 따르면 독일 슈투프 인터내셔널(Stoof International)이 제작해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에쿠스 리무진 전용차는 당시 판매되고 있던 2세대 에쿠스 리무진의 차체를 1.2m 정도 늘리고 각종 장비를 추가한 것이다. 아울러 비슷한 시기에 슈투프 웹사이트에 대통령 전용차와 같은 모습의 차 사진이 올라온 적이 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탄 에쿠스 리무진 전용차가 박 전 대통령 취임식 때 쓰인 것과 같다면, 슈투프가 개조한 에쿠스 방호차에 관한 정보로 대통령 전용차의 방어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슈투프 인터내셔널은 러시아 업체인 아머테크(ArmorTech)의 의뢰로 2012년 모스크바 모터쇼 현대자동차 전시관에 전시된 에쿠스 리무진 시큐리티를 제작한 바 있다. 당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에쿠스 리무진 시큐리티는 VPAM VR7 방호등급에 해당한다. 14단계인 VPAM VR 등급에서 11단계 이상은 군용 장갑차 수준으로 승용차를 바탕으로 만든 민간용 방호차는 10단계가 최고 수준이다.

VR7 등급이면 5.56x45mm 탄을 쓰는 M16 소총이나 7.62x51mm 탄을 쓰는 M60 기관총으로 차체 또는 유리에 45도 또는 90도 각도에서 쏜 탄환을 100% 방호하는 수준이다. 또한 TNT 0.112kg급 세열수류탄과 TNT 0.560kg급 도약식 대인지뢰의 차체 하부 폭발은 물론 TNT 15kg급 폭발물이 차체 측면에서 4m 떨어진 지면에서 폭발했을 때에도 탑승자를 보호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이 정도 방호능력을 갖추려면 탑승공간을 최소 7.5mm 두께의 방탄장갑으로 감싸야 한다.

차체와 섀시, 구동계의 한계를 고려해 개조하는 민간용 방호차는 VPAM VR6 또는 VR7 등급에 해당하는 것이 많으므로, 에쿠스 리무진 대통령 전용차에 에쿠스 리무진 시큐리티와 비슷한 수준의 개조가 이루어졌다면 보편적인 방호차 수준의 방어능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최근 모델인 마이바흐 S 600 가드는 메르세데스-벤츠를 만드는 다임러가 자체 방호차 개조 기술로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다임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마이바흐 S 600 가드는 완성차 업체가 만든 방호차로는 처음으로 VR10 등급 인증을 받았다. 이 등급은 NATO 표준 5.56x45mm 및 7.62x51mm, AKM 계열 7.62x39mm 일반 소총탄과 철갑탄은 물론 7.62x54mmR 탄을 쓰는 드라구노프 저격소총 공격도 모든 각도에서 방호할 수 있는 방탄 능력과 TNT 6kg급 지뢰가 차체 바로 아래에서 폭발해도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다. 한 방호차량 제작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탑승공간을 최소 18mm 두께의 방탄강판으로 감싸야 VPAM VR10 등급에 해당하는 방호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한다.

국내 수요가 적은 탓에 국내 브랜드 차의 방호 개조사업은 그리 활발하지 않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여러 이유로 테러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외국 수요는 꾸준하다. 외국에서 팔리는 국내 브랜드 차도 적지 않으니, 굳이 완성차 업체가 아니라도 외국 시장을 겨냥해 국내 브랜드 차를 개조한 방호차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이미 2009년에 현대가 직접 제작한 에쿠스 방탄차를 청와대에 전달했던 사례도 있고, 미국 대통령의 캐딜락 전용차처럼 국내 기술과 국내 브랜드 차로 만든 방호차를 우리나라 대통령이 타고 다니는 것은 국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물론 높은 수준의 방호 개조 기술을 갖추고 발전시키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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