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 트렌드 한국판 2017년 10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V12 엔진 특집으로 애스턴 마틴 라피드 S, 페라리 GTC4 루소 등과 함께 시승하며 차의 성격과 엔진의 상관관계 등 V12 엔진에 초점에 맞춘 글의 일부입니다. ]

독일 자동차 브랜드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V12 엔진을 얹은 양산차를 내놓은 것은 1987년의 일이다. 그 주인공은 BMW의 2세대 7 시리즈(E32) 최상위 모델인 750iL이었다. 당시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중 독보적 입지에 있던 메르세데스-벤츠조차 가장 고급스러운 모델에 V8 엔진을 쓰던 시절이었다. BMW의 V12 엔진은 프리미엄 브랜드 대열에 제대로 뛰어들려는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 도전은 효과적이었다. 750iL과 M70 V12 5.0리터 엔진은 BMW의 이미지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사람들이 BMW를 메르세데스-벤츠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를 하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지난 30년 사이에 엔진 트렌드는 크게 바뀌었고 V12 엔진의 위상도 전과는 다르다. 특히 다운사이징과 전동화가 대세가 되면서, 소량만 팔아도 설득력이 있고 충분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나 초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라면 굳이 다기통 대배기량 엔진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BMW도 마찬가지여서, 엔진의 중심은 6기통, 다시 4기통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래도 브랜드 최상위 모델인 7 시리즈,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M760Li x드라이브에 V12 엔진을 넣을 수 있는 것은 초 럭셔리 브랜드인 롤스로이스를 그룹 우산 아래 두고 있는 덕분이다. 

BMW 품 안으로 들어간 이후의 롤스로이스에는 7 시리즈에 쓰이던 것을 바탕으로 만든 V12 엔진이 올라갔다. 그러나 지금 M760Li x드라이브에 올라가는 V12 엔진은 롤스로이스에서 쓰고 있지 않다면 경제논리에 맞지 않아 퇴출되었을 수도 있다. BMW 라인업에서 V12 엔진을 쓰는 모델은 이 차가 유일무이하다. 롤스로이스의 심장으로 쓰인 BMW의 엔진이 이제는 BMW에 롤스로이스의 후광을 비추고 있는 셈이다. 

물론 M760Li x드라이브의 엔진은 ‘M 퍼포먼스’라는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 고스트와 레이스, 던에 쓰는 엔진과는 다르게 조율한 것이다. 부드러움을 중시한 롤스로이스의 것과 달리, M760Li x드라이브는 BMW와 M 퍼포먼스 브랜드 성격에 맞춰 후련한 가속력을 발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차체구조에 탄소섬유 소재를 주로 쓰는 등 대대적 경량화에도 주요 핵심 경쟁모델보다 무거운 M760Li x드라이브는 현행 5 시리즈(G30) 바탕의 M5가 나오기 전까지는 BMW의 모든 시판차 가운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장 짧은 시간(3.7초) 안에 가속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 승용차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엔진 형태인 V12 구성의 매력을 BMW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시동을 걸 때, 또는 오토 스타트-스톱 기능이 활성화되어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할 때에는 고르고 미세한 진동과 세련되면서도 힘찬 배기음이 몸으로 전해져 온다. 정지가속 때에는 살짝 숨을 고르는 느낌이 뚜렷해, 처음부터 가슴팍이 좌석 등받이에 꽂히는 듯한 충격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면 매섭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전혀 힘든 기색 없이 쭉 뻗어나간다. 회전수가 낮을 때에도 꾸준한 토크를 내어 회전영역뿐 아니라 속도영역에도 전혀 구애받지 않고 가볍게 속도를 붙인다는 점이 다기통 대배기량 엔진의 장점이다. 게다가 이 엔진에는 영리한 터보차저까지 더해 토크를 한층 더 키웠다. 힘이라는 관점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V12 엔진의 또 다른 매력은 쉴 새 없이 실린더를 오가며 일어나는 폭발이 진동을 상쇄하며 매끄러운 회전질감을 만드는 것. 잔뜩 쌓여 있는 골프공 속에서 둥근 돌멩이 하나를 찾아내는 것처럼, 솔직히 이 세련된 엔진에서 신경을 칼날같이 곤두세우지 않고서는 좀처럼 두드러지지 않는 거친 부분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아쉽게도 찾기 쉽지 않을 뿐, 거친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터보차저가 인위적으로 힘을 높이면서 소리와 진동에서 사라져야할 거친 부분을 고스란히 키우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동안 경험했던 다른 V12 엔진들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일 뿐, 훌륭한 엔진임에는 틀림없다.

오히려 특출한 엔진은 섀시를 상대적으로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x드라이브 사륜구동 시스템을 썼고, 서스펜션도 조금은 움직임을 절제하는 방향으로 설정했음에도 차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다. 서스펜션의 반응이 느린 것은 아니다. 움직임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피드백이 무뎌지는 것이다. 운전자가 노면에 따른 차체 움직임을 제대로 읽기가 어렵다. 움직임을 보정하고 보조하는 여러 기술이 역동성을 조금 허전하게 만드는 셈이다. 완전한 M 모델이 아니라 M 퍼포먼스 모델인 이상 순수한 운전의 즐거움의 구현은 적당한 수준에 머문다. 게다가 7 시리즈는 뒷좌석 중심의 차다. M760Li x드라이브에서 V12 엔진은 상징성 말고도 ‘뒷좌석을 위한 고성능’의 뿌리로서의 의미도 크다. 그런 점에서는 제 역할을 훌륭히 한다.

고효율과 친환경이 자동차가 갖춰야 할 당연한 덕목인 이 시대에, 기술적으로 정 반대의 특성을 지닌 V12 엔진이야말로 자동차의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예술품일 것이다. 바이에른 엔진 공장(Bayerische Motoren Werke)이라는 회사의 뿌리를 생각할 때, BMW 엠블럼이 붙은 V12 엔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엔진의 시대’에 가장 화려한 빛을 발하는 예술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