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0월 23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10월 20일, 제너럴 모터스(GM)의 호주 계열사인 홀덴은 애들레이드 근교에 있는 엘리자베스 공장의 생산을 완전히 끝냈다. 홀덴이 GM 계열사로 편입된 것은 1948년이었지만,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이른 1936년의 일이었다. 홀덴이 81년의 자동차 생산을 마감한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홀덴의 생산 중단으로 이제는 호주에서 승용차를 생산하는 업체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2주 전인 10월 3일에는 10년 이상 호주 최대 규모의 자동차 제조업체였던 토요타가 현지 공장의 생산을 중단했고, 앞서 2016년 10월에는 홀덴보다 더 오랫동안 생산해 온 포드 공장이 문을 닫았다. 생산은 중단하지만 자동차 사업 전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홀덴과 토요타는 앞서 포드를 비롯해 현지 생산을 중단한 다른 업체들이 그랬듯 수입 및 공급 업체로 규모를 줄이고, 모든 승용차를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것을 수입해 딜러 네트워크에 공급한다.

호주는 2016년에 92만 7,000여 대의 승용차가 판매되었고, 지난 10년 동안 약 11퍼센트 성장한 시장이다. 또한, 2016년 기준으로 인구 2,413만 명에 1인당 GDP가 5만 달러에 가까운 것을 비롯해 자동차 시장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경제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몇 년 전부터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가 호주에서의 생산 중단을 예고하고 계획대로 실행하게 된 데에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지 생산이 경제성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성이 없어지게 된 배경은 복잡하고, 그 배경에는 주요 자동차 생산국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1980년대 이후 호주 정부는 자동차 산업 보호 정책을 폈다. 수입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자동차 및 부품을 수출하는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비관세 장벽도 펼쳤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경제정책도 함께 바뀌어 점차 관세가 낮아지는 한편 여러 나라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자동차 수입이 활발해졌다. 정부의 수출 유도도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환율이었다.
2004~2005년에 호주에서 생산한 차의 수출은 정점을 찍었다. 우리나라에 홀덴이 생산한 대형 세단(스테이츠맨, 베리타스 등)이 수입되어 당시 GM대우 브랜드로 판매되었던 것도 그 즈음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사이에 호주 달러의 가치가 꾸준히 높아졌고, 수입은 유리하지만 수출은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즉, 호주 차의 수출 가격 경쟁력은 낮아진 반면 외산 차의 수입 가격 경쟁력은 높아졌다. 동급에서 더 싸거나 같은 값에 더 많은 장비를 갖춘 수입차가 늘어나면서 현지 생산 모델이 시장 몫을 빼앗겼다.

호주 소비자들의 소비 형태에도 변화가 생겼다. 현지에서 생산하는 차종은 대부분 중형 및 대형 세단 중심으로 배기량이 큰 엔진을 얹은 것이 많았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비슷하게 넓은 국토와 미개발지가 많은 환경 때문에 큰 차와 험로 주행에 유리한 정통 SUV의 인기가 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도시화와 고유가 등의 영향을 받아 호주에서도 소형차와 도시형 SUV 판매가 늘어났다. 호주 자동차 업계는 이런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소형차를 생산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임금과 세금 등 각종 비용을 고려하면 생산보다 수입하는 쪽의 마진이 컸기 때문이다.
수입 경쟁도 심해져, 올해 초 기준으로 호주에 판매되고 있는 자동차 브랜드 수는 64개에 이를 정도다. 호주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던 업체들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에는 시장 규모가 작다’는 주장을 주로 했지만, 실제로는 빠르게 수입이 늘어나면서 너무 많은 업체가 시장 몫을 나눈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는 연 150만 대 규모의 내수 시장에 다섯 개 업체가 자동차를 생산하고 20개가 넘는 브랜드가 수입 판매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내수 시장의 80퍼센트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현대와 기아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이 처한 상황은 호주 자동차 산업이 맞닥뜨린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차이가 있다면 국내 생산 업체들의 수출비중은 호주보다 훨씬 더 높고 내수 시장에서 수입차의 영향력이 커지고는 있지만 국내 업체와 수요가 겹치는 영역이 아직까지는 작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규모가 작더라도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국내 자동차 업체는 최대한 살아남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자동차 업체 생존의 전제는 채산성을 확보해 규모를 유지하거나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고, 이는 자동차 업체만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내 자동차 산업 특성을 고려한 정부 정책도 뒷받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