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1월 16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1월 5일에 2017년 수입차 판매 결산 보도자료를 냈다. 자료에는 2017년에 가장 많이 판매된 모델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KAIDA가 집계한 2017년 수입차 베스트셀링 모델 1위는 총 9,688대가 팔린 BMW 520d가 차지했고, 7,627대가 팔린 렉서스 ES300h와 7,213대가 팔린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 E 300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자료를 보면 BMW 520d는 2위와 3위를 차지한 렉서스 ES300h, 벤츠 E 300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가장 많이 팔린 것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점을 알 수 있다. 자료에 나온 것은 각각 BMW 5 시리즈, 렉서스 ES, 벤츠 E-클래스의 세부 모델에 해당한다. KAIDA가 매달 내놓는 월간 결산 보도자료에도 같은 방식으로 집계한 수치가 올라온다. 그러나 당장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발표하는 국내 제조사 자료는 물론, 세계 주요 나라의 판매 결산 자료에서도 이렇게 세부 모델별로 판매순위를 집계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각국 제조사협회나 판매사협회에서 발표하는 자료에서는 대부분 이름으로 구분되는 모델 전체 판매량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세부 모델까지 일일이 따지면 그 수가 너무 많아 집계가 어려운 이유도 있지만, 자동차 제조사나 판매사는 물론 소비자도 브랜드나 모델을 수직 또는 수평으로 비교할 때 가장 우선 구분하는 기준은 모델 이름이기 때문이다. 모델 단위로 베스트셀러를 꼽으면 순위도 달라진다. E 300이 속한 벤츠 E-클래스는 520d가 속한 BMW 5 시리즈보다 8,433대 많은 3만 2,653대가 팔려 1위를 차지하고, 세부 모델에서는 2위를 차지한 렉서스 ES300h가 속한 렉서스 ES는 8,043대가 팔려 5위로 밀려난다.
KAIDA와 같은 방식의 집계를 지적하는 이유는 소비자를 비롯해 판매와 관련한 구체적 수치를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시장 흐름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보이는 모습이나 보편적 인식과도 차이가 있다. 특정한 모델이 많이 팔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베스트셀링 모델은 제품 자체의 상품성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판촉활동 및 판매조건, 인도 가능한 물량확보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의 제품구매 전반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낸 차라는 의미가 있다. 그만큼 소비자 인식에 주는 영향이 크고, 이후 판매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시장이 작고 판매 모델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집계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KAIDA가 집계하는 14개 회원사 23개 브랜드의 판매 모델이 수백 종에 이르는 지금에 와서는 과거와 같은 집계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한 가지 더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TS)이 시행하는 자동차 안전도 평가(KNCAP)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13일 ‘2017 올해의 안전한 차’ 시상식에서는 평가대상 11차종 중 안전도 평가점수가 높게 나온 BMW 520d, 벤츠 E 220d, 기아 스팅어를 ‘올해의 안전한 차’로 발표하고 시상했다. 여기에서도 기아 스팅어는 전체 세부 모델을 이름에 올린 반면, BMW 520d와 벤츠 E 220d는 세부 모델에 해당하는 차종을 선정해 평가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TS 웹사이트에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TS는 최저등급 사양을 원칙으로 기타장치(에어컨, 자동변속기, ABS 장치 포함)가 포함된 것으로 평가대상 차를 구매한다. 이는 최저등급 모델에 적용된 설계와 주행특성, 안전기술이 전체 세부 모델에 고루 적용된다는 것을 전제로, 평가대상이 된 모델을 통해 모델 전체의 안전도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뿐 아니라 충돌시험을 포함한 종합 안전도 평가를 실시하는 세계 주요 기관도 비슷한 기준으로 대상차종을 선정하고 해당 모델의 평가결과를 발표한다. 그러나 TS의 평가결과 발표에서는 국내 제조사 모델과 수입 모델의 모델 표기 기준을 서로 달리하면서 수입 모델에서는 세부 모델을 특정해 발표했다. 소비자 관점에서는 평가대상으로 선정된 BMW 520d와 벤츠 E 220d의 평가결과가 각각 BMW 5 시리즈와 벤츠 E-클래스 전체의 안전도를 대표하는 것인지, 세부 모델인 520d와 E 220d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불필요한 오해나 혼란을 줄이려면 모델 표기 방식을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KNCAP 같은 경우, 같은 모델에서도 세부 모델이나 소비자의 선택 여부에 따라 포함되는 안전장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평가 결과에 반영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2017 올해의 안전한 차로 선정된 차 중 하나인 기아 스팅어는 전방 충돌 경고, 차로 이탈 경고, 운전자 주의 경고 등 주요 예방안전 기술이 모든 모델에 패키지 선택사항을 추가해야 포함된다. KNCAP에서는 평가 때 주요 예방안전 기술의 적용방식에 따라 항목별 평가점수를 달리하는 방식을 쓰고 있지만, 이 역시 복잡할 뿐 아니라 해당 모델의 안전도를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통계나 조사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기준을 세우는 방식이다. 같은 숫자라도 기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이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향력 있는 기관의 발표는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더욱 기준 설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문제점들은 이미 다른 언론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해당 기관에서는 충분한 검토를 거쳐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