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구독 서비스의 명암

[ 2019년 1월 28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최근 국내 자동차 업계에 ‘자동차 구독 서비스’임을 내세운 서비스들이 속속 시작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현대 브랜드에 ‘현대 셀렉션’, 제네시스 브랜드에 ‘제네시스 스펙트럼’ 서비스를, BMW코리아는 ‘올 더 타임 미니’라는 이름으로 미니 브랜드 차들에 대한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볼보자동차코리아도 일부 국가에서 하고 있는 ‘케어 바이 볼보’의 국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동차 구독 서비스는 매월 일정 비용을 내고 비교적 자유로운 계약기간 동안 차를 빌려 탈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동차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서비스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자동차 업계나 매체에서 이와 같은 서비스의 이름에 비슷한 뜻의 구독이라는 단어를 쓴 듯하다. 원래 구독(購讀)은 단어만 놓고 보면 책이나 신문, 잡지와 같은 출판물을 사서 읽는다는 뜻이다. 영어권에서도 이미 서브스크립션이라는 단어가 출판물에 한정하지 않고 매월 지불하는 비용의 대가로 주기적으로 같은 품목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따라서 크게 보면 구독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다만 서브스크립션이라는 단어의 뜻에는 주기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한자어로 뜻을 그대로 살리자면 정기구독(定期購讀)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다.

자동차 정기구독 서비스는 최근 들어 자동차 분야에서 전통적 소유 중심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난 형태로 차를 쓰는 방법이 등장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흔히 공유경제 개념의 확대와 더불어 자동차 정기구독도 같은 부류의 서비스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린 인식이다. 현재 법규와 제도 기준으로 보면, 자동차 정기구독은 자동차 대여 즉 렌터카의 변형이다.  표면적으로는 자동차 브랜드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실제 운영은 렌터카 업체가 보유한 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 관점에서는 흔히 말하는 카 셰어링과 비슷하다.

자동차 정기구독이 다른 서비스와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대여 계약기간을 꼽을 수 있다. 계약기간이 주로 일 단위인 것이 일반 렌터카이고 연 단위인 것이 장기 렌터카라면, 카 셰어링은 30분 단위이고 자동차 정기구독은 월 단위로 계약이 이루어진다. 다만 서비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장기 렌터카처럼 초기 보증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있고, 계약기간 중 해지 조건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아울러 자동차 정기구독 서비스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은 소비자가 쓰는 차를 계약기간 중에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현대나 BMW가 하고 있는 서비스 모두 계약기간 중 세 개 차종을 돌아가며 바꿔 탈 수 있다.

아울러 대부분 서비스가 ‘자동차 소유에 따른 부담과 번거로움이 적다’는 것을 장점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특징들은 이미 장기 렌트나 리스에서도 선택하는 상품에 따라 똑같이 경험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월정액은 일반적인 장기 렌트나 리스와 비교하면 경제적이라 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이런 서비스들의 한계다.

자동차 업체들이 선보인 정기구독 서비스의 면면을 보면 요즘 1인 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을 중심으로 저변을 넓히고 있는 공유 오피스와 언뜻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보증금이 적거나 없으면서 월정액은 일반 임대 사무실보다 비싼 편이고, 유무선 인터넷 등 사무환경에 필요한 서비스를 기본 제공하고 세무 서비스 등의 편의를 뒷받침하는 것이 여러 공유 오피스의 특징이다. 달리 말하면 기존의 임대 형태에서 사용자가 내는 보증금 부담을 줄여 접근성을 높이는 대신 임대사업자는 월 임대수입을 늘릴 수 있다.

기본적으로 경제발전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자동차 판매가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시장에서 생산을 안정화하고 판매 이외에 수익을 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동차 업체들도 공유 오피스 사업자 또는 공유 오피스 사업자에게 공간을 임대해주는 임대사업자나 건물주와 같은 식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 자동차 업체들이 제시하는 자동차 정기구독 서비스의 장점이 과연 소비자가 구매 대신 구독을 선택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일까? 

물론 이런 서비스들이 아직 완벽한 형태라고 하기는 어렵다. 국내에서 갓 시작한 이들 서비스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외국에서 시작된 서비스들 모두 소비자들이 이런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파악하려는 시험적 성격을 띄고 있다. 특히 외국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초기 운영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고 재정비하고 있는 브랜드들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지금 소비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정기구독 서비스는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자동차 업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자동차를 구매하고 소유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이런 서비스는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차값과 운용비용 부담을 감수하기에는 소비자의 실질 가처분 소득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흐름대로라면,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차들이 나오기 보다는 소비자가 어쩔 수 없이 자동차 사용 형태를 바꿔야 할 것이다. 이는 소비자에게 특정한 방식의 소비를 강요하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런 관점에서,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 변화와 새로운 서비스의 등장을 무조건적으로 따라가기보다는 과연 그런 흐름이 사회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에 관한 근본적 성찰이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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