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보다 미래에 집중한 폭스바겐

[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8년 3월호 커버스토리로 다룬 폭스바겐 특집 기사의 원본입니다. 디젤게이트가 시작된 뒤로 폭스바겐의 행보를 돌아보고 그들이 추구한 변화의 방향을 짚어보는 내용의 글입니다. ]

디젤게이트로 얼룩진 브랜드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폭스바겐은 지속가능한 미래 이동수단을 청사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왔다. 폭스바겐은 현실보다 미래와 비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2015년 가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라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을 때 터진 디젤게이트는 보는 이의 입장에서도 무척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합리적이고 믿을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폭스바겐의 이미지는 송두리째 무너졌다. 꾸준한 성장을 통해 2014년 그룹 브랜드 합산 판매량이 1,000만 대를 넘어선 거대 기업의 윤리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과연 폭스바겐이 앞으로 디젤게이트에 어떻게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 관심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불명예스러운 사태의 근본 원인을 찾아 제거하고, 땅에 떨어진 기업 이미지를 끌어 올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다양한 조사와 검토가 이어졌고, 초기에 소수의 실수로 일축했던 마르틴 빈터코른 CEO는 이후 디젤게이트가 대규모로 이루어진 조직적 은폐임을 인정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경영 및 조직문화가 중요한 원인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폭스바겐은 미래지향적 새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 흐름을 빠르게 반영하기보다 보수적 관점에서 기술을 대하고 대량생산과 내연기관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한계였다. 기업과 조직 문화를 완전히 바꾸지 않고는 나아지기 어려운 과제였다.

이에 폭스바겐 이사회는 수장을 포르쉐에서 일하던 마티아스 뮐러로 바꾼 데 이어 대대적 경영진 교체와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회사의 체질을 바꿈으로써 경직된 분위기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한편, 디젤게이트와 관련해 예상되는 비용에 대비하려는 목적이 컸다. 그리고 디젤 엔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폭스바겐 그룹은 더는 디젤 엔진을 자랑거리로 여기지 않는다. 내연기관 시대를 차츰 떠나보내고 친환경 미래 이동수단에 집중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심는 방법이었다.

해가 바뀌자마자 폭스바겐은 제품 개발 조직을 재편했다. 차급에 따라 전담 개발 조직을 두는 한편, 전동 이동수단(e-모빌리티) 개발 조직을 독립시켰다. 제품 개발에서 차지하는 전동 이동수단의 비중을 끌어올린 것이다. 이어 2016년 6월에는 새로운 그룹 전략 ‘투게더 – 스트래터지 2025’를 발표했다. 기업 핵심역량의 성격을 바꾸는 한편 전기차, 공유 시스템, 자율주행 등 새로운 분야에 투자를 늘리는 것이 기본 방향이었다. 2025년까지 30개 이상의 새로운 전동화 모델을 내놓고, 그룹 전체 판매의 20~25퍼센트가 될 연간 200만~300만 대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물론 개발비 최적화를 비롯한 수익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

새 조직을 중심으로, 2016년 파리 모터쇼에서 선보인 I.D. 콘셉트를 시작으로 이른바 I.D. 시리즈로 불리는 일련의 콘셉트카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폭스바겐이 새로 개발한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인 MEB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I.D. 시리즈는 단순히 비현실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선보일 때마다 양산 로드맵을 함께 제시했다. I.D. 시리즈는 소비자들에게 폭스바겐이 현실적 전기차를 만든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제품 이미지를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번 충전으로 최대 400~600킬로미터 주행 가능한 이들이 생산되면 폭스바겐 라인업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진다. 

그렇다면 그 때까지는? 2016년 판매를 시작한 신형 티구안을 시작으로, 이미 전체 모델 라인업의 세대교체가 시작되었다. 아틀라스, T-록(Roc) 등 새로운 SUV가 라인업의 빈틈을 채우고, 아테온과 신형 제타 등이 전통적 세단 라인업에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물론 새로 나왔거나 나올 모델의 상당수는 개발 스케줄에 따라 예정된 것이고, 대부분 내연기관을 동력원으로 쓴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쓰는 GTE 버전이 추가되는 모델이 늘고, e-골프나 e-업! 등 완전 전기차도 생산되고 있다. 이는 이미 생산이 결정된 차에 친환경 구동계를 접목하느라 역량을 분산시키기보다 2020년 이후 생산할 I.D. 시리즈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즉 지금 나오고 있는 차들보다 앞으로 나올 차에 집중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지금의 폭스바겐에게 절박한 것은 우울한 현실을 떨쳐내고 미래를 밝게 만들 수 있는 해법이다. 폭스바겐의 지난 2년은 그와 같은 절박함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준비한 시기였다. 폭스바겐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2020년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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