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전성시대가 반갑지 만은 않은 이유

[ 2018년 4월 8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미국 뉴욕에서 3월 30일에 시작한 뉴욕국제오토쇼(NYIAS, 이하 뉴욕 오토쇼)가 이번 주말이 지나면 막을 내린다. 주요 완성차 및 부품 업체의 관심이 소비자가전전시회(CES) 등 IT 관련 행사로 쏠리면서 자동차 중심의 대표적 행사인 모터쇼의 인기가 점점 더 시들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디트로이트, 뉴욕, 시카고, 로스엔젤레스(LA) 등 미국 대도시에서 열리는 모터쇼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행사로 의미가 있다. 특히 완성차 업체의 새차 발표 무대로서의 역할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이번 뉴욕 오토쇼에서도 주목할 만한 여러 종류의 새 모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절대적인 수는 많지 않지만, 뉴욕 오토쇼에서 세계 최초 또는 미국 최초로 공개된 모델에는 SUV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캐딜락 XT4, 토요타 RAV4, 링컨 에이비에이터, 스바루 포레스터, 폭스바겐 아틀라스 크로스 스포트 등이 첫 선을 보였고, 페이스리프트와 고성능 가지치기 모델도 다수 공개되었다. 상대적으로 전통적 장르인 세단, 왜건, 해치백 등의 데뷔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2008년에 시작된 금융위기 여파가 가라앉고 유가가 안정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SUV의 인기가 이번 모터쇼에도 이어진 셈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지금 미국 시장에서 SUV가 누리고 있는 높은 인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이후 2000년대 들어 고유가 시대로 접어들기 전까지 SUV의 인기가 꾸준히 높아졌다. 이후 중동 전쟁, 세계적 소비 급증, 투기수요 증가로 고유가가 지속되며 주춤하던 SUV 소비는 2014년 유가 폭락 이후 반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심지어 지금의 SUV 붐은 과거와 달리 그동안 주류 차종 역할을 했던 세단 판매를 크게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다.

FCA는 일찌감치 판매가 저조한 크라이슬러 200과 닷지 다트 생산 중단결정을 내렸고, GM은 임팔라, 포드는 토러스 생산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다. 미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승용차 차급인 중형 세단 시장에서도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 등의 판매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현대기아가 최근 미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를 빈약한 SUV 라인업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SUV의 인기는 자동차 보급률이 높은 나라에서 대부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국내에 판매된 소형 SUV는 14만 7,429대, 중형 SUV는 21만 5,468대, 중대형 SUV는 9만 8,493대였다. 2016년과 비교하면 중형 SUV는 5만 1,000여 대가 줄었지만 소형은 3만 7,000여 대, 대형은 1만 9,000여 대가 늘어 전체적으로는 SUV 판매가 늘어났다. 특히 전체 승용차 판매 가운데 소형과 중형 차급에서 SUV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42.8퍼센트와 53.8퍼센트에 이른다. 내수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는 수입차 시장에서도 흐름은 비슷하다. 베스트 셀링 모델은 아직 대부분 세단이 차지하고 있지만, SUV는 전체 판매량을 늘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SUV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도로 면적을 비슷하게 차지하는 여느 승용차보다 실내 공간 넓고 편안하며 다용도로 쓸 수 있는 SUV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는 완성차 업체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SUV를 적극적으로 내놓고 마케팅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강화되는 안전 및 환경 기준, 글로벌 차원에서 치열해지는 경쟁 등으로 업체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수익성 향상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크게 휘청했던 업체들은 한층 더 적극적으로 ‘많이 남는 제품’인 SUV를 집중 개발하고 있다. GM과 포드 등은 공공연히 수익성 높은 SUV와 픽업을 팔아 자율주행 기술과 공유사업 등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아울러 미국 시장에서 한동안 비워 놓았던 소형 픽업트럭과 대형 SUV 장르에 새 차를 내놓고 라인업 구성도 더 촘촘하게 갖출 예정이다.

이와 같은 흐름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을 발견할 수 있다. 크고 무거운 SUV는 비슷한 크기의 일반 승용차보다 대개 연료소비와 배기가스 속 오염물질 배출이 더 많기 마련이다. 업체들이 친환경 기술 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시장에 더 많은 SUV를 투입한다는 것은 그들이 개발하는 친환경 차가 나올 때까지 더 많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친환경차에 대한 요구가 큰 현실 속에서도, 일부 프리미엄 브랜드를 제외하면 정작 현재 판매되거나 곧 판매를 시작할 SUV에 하이브리드 카처럼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는 부분전동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곳도 흔치 않다. 게다가 한창 유가가 높았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상대적으로 유가가 낮은 선에 안정되어 있다지만, 갑작스러운 변수로 다시 유가가 급등한다면 그 여파는 치명적일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처럼, 늘어나는 SUV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칼럼에서도 이야기했듯, 지금은 내연기관 시대에서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자동차의 전환기다. 전기차가 시장과 도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내연기관 차를 넘어설 때까지는 내연기관 차의 경제성과 환경영향을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SUV의 시장 장악은 환경개선을 위한 노력을 퇴보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전동화를 서둘러야할 쪽은 오히려 SUV 쪽이라는 것을 자동차 업체들이 인식하고 제품화해야 전기차 시대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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