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8년 8월호 피처 기사 ‘세컨드가 필요해’에 실린 글입니다. 여덟 명의 자동차 칼럼니스트와 기자, PD가 꿈꾸는 세컨드카를 모은 기사에서 제가 쓴 부분입니다. ]

차 좋아하는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소위 ‘드림 카’라는 것이 늘 들어있다. 다다익선이라고, 많으면 많았지, 드림카가 꼭 하나일리도 없다. 나도 그렇다. 늘 두서너대예닐고여덟대의 드림카가 의식 속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곤 한다. 꿈꾸는 것은 자유라고 하는데, 심지어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고려해 드림 카를 접근 가능한 가격대로 묶어 놓으며 자유롭지 않게 상상해도 그 정도다. 소심한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상상을 짓누를 정도로 현실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차를 좋아하고 글 쓰기를 좋아해 자동차 글 쓰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차와 글에 대한 열정은 식어버리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일만 하고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글이야 늘 쓴다고 쳐도, 일이 많아질수록 정작 글쓰기의 뿌리가 되는 자동차와 부대낄 일은 점점 줄어든다. 나아가 마니아다운 열정을 펼치거나 순수하게 차와 씨름하며 즐길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순수하고 뜨거운 차 그리고 그런 차를 즐기고 싶은 갈망은 심해진다.
늘 그렇듯 서론이 길었다. 갖고 싶은 세컨드 카로 대뜸 케이터햄 세븐을 꼽은 배경이 그렇다. 이미 일상용으로 굴리고 있는 차가 있고 그럭저럭 만족하며 타고 있는 이상, 세컨드 카를 갖는다면 뭔가 비현실적인 차일수록 좋다. 그러면서도 마니아로서 차의 본질인 달리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고, 글쟁이로서 차에 담긴 이야기와 경험하고 즐기며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차면 좋다. 그런 차 중 하나(앞서 이야기한 두서너대예닐고여덟대 중 하나)가 바로 케이터햄 세븐이라는 얘기다.

세븐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이미 마니아들은 잘 알고 있다. 20세기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굵은 획을 그은 비운의 천재 콜린 채프먼의 철학이 담겨 있고, 현대적인 순수 스포츠카의 원형이면서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도 처음 태어났을 때의 개념을 이어받고 있는 몇 안되는 차 중 하나다. 내가 아는 한, 세븐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차 가운데 가장 솔직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달리기 관련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로터스 엘리스나 에리얼 아톰 같은 차들도 꼽을 수 있겠지만, 그런 차들의 원형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만 남겨 놓은 것이 세븐이다.
뼈대, 섀시, 동력계와 구동계, 스티어링 휠과 기어 레버, 페달과 최소한의 계기, 휠과 타이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 그런 것들을 간신히 가릴 정도만 갖춘 껍데기. 그게 전부다. 세븐도 여러 모델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기본형 중의 기본형인 160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단순화하고 가벼움을 더하라’는 채프먼의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된 모델이 세븐 160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빠른 것과 재미있는 것은 다르다. 세븐은 후자임에 틀림없다.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음으로써 온전히 달리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만큼, 일상 속에서 곧잘 잊곤 하는 자동차의 본질을 되새길 수 있는 자극제와 활력소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세븐을 새차로 살 수는 있다. 다만 법규 때문에 번호판을 달 수는 없다. 차고에 모셔뒀다가 캐리어에 실어 서킷으로 가져가 타거나, 전문 업체의 보관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 내차로 만들지 않더라도 빌려서 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식이 되든 조금만 노오오오오력하면 원래 목적대로 직접 경험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세븐은 나에게 사그라지던 마니아로서의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비현실과 현실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세컨드 카로 꿈꿀 만한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