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박물관에서 만난 클래식 마이바흐

독일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 마이바흐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마이바흐를 브랜드 이름으로 내세운 자동차가 처음 대중에게 선보인 때가 1921년이죠. 나중에 메르세데스-벤츠가 브랜드를 부활시키기는 하지만, 창업자 빌헬름과 카를 마이바흐 부자의 설계와 철학은 1921년부터 1941년까지 20여 년간 생산된 차들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마이바흐가 20여 년간 생산한 차는 1,800여 대(2,200여 대라고 기록한 자료도 있습니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만들어진 차들이 대부분 그렇듯, 지금까지 남아있는 차는 많지 않습니다. 운좋게도, 지난 2015년 가을에 독일을 방문했을 때 들른 슈파이어와 진스하임의 기술 박물관에서 비교적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몇몇 클래식 마이바흐 차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은 클래식 마이바흐 컬렉션이 박물관 차원에서도 중요한 주제기도 합니다. 마이바흐가 내놓은 여러 모델 중 특별한 의미가 있는 모델들을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죠. 방문 당시 찍은 사진들과 함께, 박물관에서 설치한 안내판에 적혀있는 차에 관한 설명과 자료들을 바탕으로 전시된 차들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봅니다.

참고로 현존하는 마이바흐 차들이 가장 많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곳은 독일 노이마르크트에 있는 ‘역사적 마이바흐 자동차 박물관(Museum für historische Maybach-Fahrzeuge)’이라는 이름의 개인 컬렉션이라고 하는데요. 찾아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지만 2015년 방문 당시에는 계획했던 동선에서 벗어나 있어 들르지 못했습니다.


마이바흐 스페치알렌바겐 (Spezialrennwagen, 1920)

1920 마이바흐 스페치알렌바겐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 전시)

마이바흐는 1921년 베를린 모터쇼에서 첫 완성차인 W 3을 선보였지만, 그 전에 자동차용 엔진을 먼저 개발하고 그 엔진을 시험하기 위한 자동차도 만들었습니다.

진스하임에 전시된 스페치알렌바겐(Spezialrennwagen)은 그와는 별개로, 마이바흐 엔진으로 특별히 제작한 일종의 드래그 경주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속 또는 고속 기록을 내는 데 쓰기 위해 항공기용 대형 엔진을 자동차 섀시에 얹어 만든 차들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그런 부류의 차들 중 하나죠.

박물관의 설명 자료에 따르면, 이 차는 300마력 직렬 6기통 23L 엔진을 얹었다고 합니다. 가속 때 차체가 들리는 현상을 억제하기 위해 일부러 차체 앞쪽을 길게 만들었고, 최고속도는 시속 160km를 넘겼는데 엔진 회전수는 1,050rpm에 불과했다고 하네요.

이 차는 마이바흐가 공식적으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마이바흐 엔진을 썼기 때문에 그릴에 마이바흐 엠블럼이 붙어 있습니다. 당대 많은 럭셔리 자동차 업체가 그랬듯, 자동차의 중심은 엔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바흐 W 5 SG (1928)

1928 마이바흐 W5 SG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 전시)

1921년에 마이바흐가 처음 내놓은 W 3에 이어, 두 번째 모델로 1926년에 선보인 모델이 W 5입니다. 120마력 직렬 6기통 7L 엔진을 얹은 W 5는 처음에는 플래니터리 기어 구성을 갖춘 전진 2단 변속기를 달았는데, 1928년에 독특한 구조의 전진 4단 변속기를 단 W 5 SG로 발전합니다.

W 5 SG의 변속기는 2단 기어 구성을 바탕으로 출발 때나 오르막에서 큰 힘이 필요할 때를 위한 저단과 고속 주행 때 엔진이 낮은 회전수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오버드라이브 기어를 추가한 구조였습니다. 일반 W 5의 변속기와 마찬가지로 W 5 SG의 변속기 역시 클러치 조작 없이 변속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고요.

이 차에 올라간 엔진의 최고출력은 1,800rpm에서 나왔고, 최고속도는 시속 150km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전시된 차는 주행 가능한 상태로 보존된 클래식 마이바흐 중 가장 오래된 모델이라고 합니다.


마이바흐 체펠린 DS 7 (1930)

1930 마이바흐 체펠린 DS 7 에르드만 & 로시 보디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 전시)

마이바흐의 가장 호화로운 모델인 체펠린 DS는 V12 엔진을 얹은 것이 특징입니다. DS는 더블 식스(독일어로 Doppel Sechs)의 머리글자로, 실린더 여섯 개로 이루어진 실린더 뱅크 두 개로 이루어진 엔진 구조를 뜻하는 것입니다. 체펠린 DS는 모델 이름 뒤의 숫자에 따라 DS 7과 DS 8로 나뉘는데, 먼저 나온 DS 7은 배기량 7L, 나중에 나온 DS 8은 배기량 8L 엔진을 얹습니다.

마이바흐에 V12 엔진이 올라간 것은 체펠린 DS가 처음은 아닙니다. 1929년에 나온 타입 12가 처음이고, 그보다 한층 더 호화롭고 편안하게 만든 모델이 1930년에 나온 체펠린 DS입니다. 체펠린 DS는 마이바흐 차들 중 처음으로 차체까지 올린 상태로 구매자에게 인도한 모델이라고도 합니다.

DS 7은 최고출력 150마력으로 시속 145km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차 무게가 3톤 남짓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족한 성능은 아닌 셈이죠.

사진에 나온 차는 진스하임 박물관에서 촬영했지만, 앞 범퍼에는 슈파이어 박물관 소장품임을 뜻하는 번호판이 붙어 있습니다. 다른 박물관들도 그렇듯, 두 박물관이 소장품을 교차 전시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죠.

아울러 전시된 차는 코치빌더 에르드만 & 로시(Erdmann & Rossi)가 차체를 만든 희귀한 모델이고, 뮌헨 독일 박물관에 차체 없이 섀시 상태로 전시되어 있던 것을 수집가가 자신이 갖고 있던 차와 맞바꿔 복원했다고 합니다.


마이바흐 체펠린 (1930)

1930 마이바흐 체펠린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 전시)

슈파이어 박물관에 전시된 이 차는 설명에 ‘마이바흐 체펠린’이라고만 적혀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모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전시된 다른 마이바흐 차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라디에이터 그릴과 앞뒤 지붕을 나누어 접을 수 있는 브로엄 랜돌렛(brougham-landaulet) 형식 차체가 무척 호화로워 보입니다. 차체 뒤에는 따로 트렁크를 달아 놓았고요.


마이바흐 DSH (1934)

1934 마이바흐 DSH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 전시)

DS가 직렬 6기통 엔진 두 개를 결합한 V12 엔진을 뜻하는 표현이라면, DSH는 V12 엔진을 반으로 쪼갠(Doppel Sechs Halbe, 영어로는 Double Six Half)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DS의 V12 엔진을 그냥 절반으로 쪼갠 것은 아니고, 이전의 직렬 6기통 엔진이 아니라 새로 개발한 W 6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은 것입니다. DSH에 쓰인 배기량 5.2L의 W 6 엔진은 최고출력이 130마력이었다고 합니다.

1934년에 등장한 DSH는 1937년까지 약 40대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마이바흐 SW 35 (1935)

1935 마이바흐 SW 35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 전시)

마이바흐의 SW 모델은 1935년부터 생산되었습니다. SW는 스윙액슬 서스펜션을 쓴 차를 뜻하는 독일어(Schwingachs-Wagen) 머리글자입니다. 스윙액슬은 뒤 차축이 일체형이 아니라 디퍼렌셜 박스와 바퀴 사이를 잇는 드라이브 샤프트가 있어, 좌우 뒷바퀴가 따로 위아래로 움직이는 일종의 독립 서스펜션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형 뒤 차축을 갖춘 차보다는 승차감이 더 뛰어나겠죠.

마이바흐의 첫 SW 모델인 SW 35는 1935년에 나왔습니다. 모델 이름 뒤의 두 자리 숫자는 엔진 배기량(3.5L)을 뜻하는 것으로, SW 모델에는 모두 직렬 6기통 엔진이 올라갔습니다. SW 35의 엔진은 최고출력이 140마력이었습니다.


마이바흐 SW 38 (1938)

1938 마이바흐 SW 38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 전시)

1938년에 나온 SW 38은 SW 35와 같은 구조를 바탕으로 배기량을 3.8L로 키운 직렬 6기통 엔진이 올라갔습니다. 엔진 출력은 SW 35와 같은 140마력이었는데, 낮은 품질의 연료를 써도 SW 35와 같은 수준의 성능을 내도록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진스하임 박물관에 전시된 차는 마이바흐에서 보기 드문 2도어 컨버터블인데, 세단보다 짧은 차체와 차체 옆 부분을 화려하게 치장한 것이 눈길을 끕니다.


마이바흐 SW 38 (1939)

1939 마이바흐 SW 38 (진스하임 기술 박물관 전시)

진스하임 박물관에 전시된 또 하나의 SW 38 모델은 1939년형입니다. 뒤 도어 뒤쪽에 뒷좌석이 있고 지붕 전체를 열고 닫을 수 있는 컨버터블 리무진 형태의 호화로운 모델입니다. 박물관 설명에는 차체 형식을 ‘Transformations – Convertible’이라고 써 놨는데요. 접이식 지붕을 1열 좌석 위만 열 수도 있고 전체를 열 수도 있는 구조라고 합니다. 어쨌든 운전사를 두고 차주는 뒷좌석에 앉는 형태의 고급차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마이바흐는 엔진 배기량을 4.2L로 키운 SW 42를 마지막으로 생산이 중단됩니다. SW 42 가운데 두 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현대적인 모습의 차체를 얹어 마이바흐 임원용 차로 쓰였다고 합니다. 얼마 전 올린 마이바흐의 역사에 관한 글(링크: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아닌 마이바흐의 역사에 관한 짧은 이야기)에 넣은 카를 마이바흐의 사진을 보면 왼쪽에 서 있는 차가 하나 있는데요. 그 차가 바로 전후 만든 새 차체를 얹은 SW 42입니다.

현대적 모습의 차체를 얹은 마이바흐 SW 42(왼쪽) © Rolls-Royce Power Systems AG
1950년에 코치빌더 스폰(Spohn)이 만든 차체를 얹은 1938년형 SW 42 © Rolls-Royce Power Systems 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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