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 & 자동차’라는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뭔가 어색한 조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동차 강대국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독일의 수도긴 해도,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친숙한 여러 자동차 생산지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어색함이 어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자극하기도 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읽어 나가면서 제목을 그렇게 지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독일에서 자동차공학 학위를 받고 지금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자동차 전문가다. 1990년대에 자동차 전문지를 접한 사람들 중에는 여러 매체에 ‘독일 통신원’으로서 글을 썼던 그의 이름이 떠오를 지도 모른다(월간 ‘모터트렌드’ 2기 초대 편집장과는 동명이인이다).
크게 다섯 장으로 나뉘어 있는 내용은 저자가 오랫동안 베를린에서 지내면서 겪은 일들과 현재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제도, 기술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전반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독일이 분단되어 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인적 체험에 관한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자동차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애호가로서의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동차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이라도 흥미롭게 느낄 만한 내용이다. 분단 독일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비롯된 특별한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 자동차 애호가 관점에서 본 독일 특히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문화와 예술에 관한 이야기,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만든 사고에 관한 이야기들 모두 그렇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독일 특유의 자동차 관련 제도와 문화, 시장과 미래를 준비하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현주소를 이해할 수 있다. 이 부분 역시 현지 업계에서 일하고 사람들과 만나며 그곳의 분위기와 흐름에 익숙하지 않다면 알 수 없고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와 산업의 폭이 아주 좁은 클래식 카와 과거에 비해 규모가 많이 작아진 튜닝 영역에 관한 내용들은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면 깊이 생각하며 읽게 된다. 나아가 자동차 기술과 산업의 뿌리는 자동차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고, 그런 관점에서 자동차가 독일 사회에 넓고 깊게 영향을 주어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방인의 관점에서 탄탄하게 뿌리내린 독일 자동차 문화와 산업을 바라보며 느끼고 이해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부담스럽지 않은 내용과 글 흐름을 즐기며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자동차라는 주제를 대하는 관점을 부드럽게 만들고 생각하는 폭을 넓히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이경섭 | 에고의 바다 | 2020년 9월 | 392쪽 | 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