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승] 쉐보레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 RS


트레일블레이저는 스파크와 말리부 생산이 끝나고 2023년 3월에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나오기 전까지 GM 한국사업장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해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유일한 모델이었습니다. 아울러 쉐보레가 우리나라 판매하는 유일한 소형 SUV였고요. 제품 전반이 국내에서 경쟁력이 낮아 판매량이 곤두박질한 상황에서, 트레일블레이저는 비교적 합리적인 제품 구성과 값으로 출시 후 한동안 적잖은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GM 한국사업장 관점에서는 국내보다는 외국 특히 미국 시장에서 잘 팔려 수출역군 역할을 했다는 의미가 더 컸죠.

공교롭게도 GM은 트레일블레이저와 많은 특성이 겹치고 같은 차급 안에서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내놓아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야 각자 나름의 영역을 차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좁은 시장에서 영역 다툼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물론 두 모델은 제품 특성이 다르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SUV의 장점을 결합한 소형 세단의 대안 개념으로 만들어졌다면, 트레일블레이저는 전형적인 도시형 SUV 개념을 바탕으로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는 네바퀴굴림(AWD)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요. 개념의 차이만으로 소비자들을 설득하기엔 무리일 테니, GM 한국사업장은 트레일블레이저를 살짝 더 고급화하면서 값을 올려 윗급 모델로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일부러 차별화한 것이죠.

그러나 대다수 소비자들에게는 그런 구분이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트레일블레이저뿐 아니라 이 차급에서 기대하는 건 대부분 알맞은 크기와 값에 편하게 탈 수 있는 차일 테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트레일블레이저는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장점이 돋보여야 할 겁니다. 과연 돋보이는 장점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점이 그런지를 GM 한국사업장이 준비한 시승행사에 참가해 차를 둘러보고 몰아보며 살펴봤습니다.

사실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는 이전과 달라진 점이 많지 않습니다. 많지 않다기보다는 소소한 변화가 몇몇 부분에 집중되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특히 외모는 분위기는 비슷하면서 일부 요소만 바꿨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차체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이전에도 화려하면서 세련된 색들이 있었는데, 새로 추가된 어반 옐로우와 피스타치오 카키, 토피넛 브라운도 색 자체도 예쁘고 차와도 잘 어울립니다. 사진에 나온 시승차에 쓰인 색이 어반 옐로우로, 새로 추가된 색들은 상위 트림은 액티브(Activ)와 RS에서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앞모습에 손을 많이 댄 편인데요.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닮은 모습으로 이전보다 날카롭게 다듬었습니다. 얇아진 주간주행등과 위쪽 그릴, 아래쪽이 넓어진 아래쪽 그릴, 세로로 길어진 틀 안에 넣은 프로젝션 타입 LED 헤드램프 등으로 인상이 좀 더 뚜렷해졌습니다. 그 가운데 프로젝션 타입 LED 헤드램프는 트림에 관계없이 기본으로 들어가고요. 테일램프는 모양은 그대로 두고 빛나는 안쪽 부분의 모양만 손질했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앞뒤 범퍼 아래쪽 장식의 모양을 바꾸고 탄소섬유 분위기를 내는 패턴을 더하고 휠 디자인을 바꾼 정도로 마무리했습니다.

실내의 변화는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대시보드는 위쪽 절반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는데요. 계기판에 8인치,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에 11인치 디스플레이를 넣으면서 두 디스플레이가 가로로 넓게 뻗은 형태로 대시보드 위에 얹힌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다른 차들처럼 두 디스플레이를 하나의 틀 안에 넣지는 않았고, 살짝 빗겨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트레일블레이저 기준으로는 크게 바뀐 것이지만 실제로는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공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디스플레이 배치가 달라지면서 대시보드 가운데 송풍구도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아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한편 대시보드는 소재 자체는 그리 고급스럽지 않지만, 도어 트림에서 시작해 대시보드를 가로질러 배치하고 송풍구를 감싸는 반광 처리 장식과 대시보드 아래쪽 표면의 메시(격자무늬) 패턴과 스티치(봉제선)는 제법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냅니다. 다만 그런 시각적 고급감은 앞좌석에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주제로 디자인한 뒤 도어 트림은 표면이 거친 검은색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앞뒤 내장재 처리에 차이를 두는 것은 대중적 브랜드의 소형차들에서는 흔히 볼 수 있어서 큰 흠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아쉬운 점이긴 하죠.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모두 화면에 표시되는 그래픽 디자인이 깔끔하고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특히 한글 글꼴이 깔끔하다는 점은 다른 외국계 자동차 업체들의 디지털 인터페이스에 비해 돋보입니다. 계기판은 그래픽 테마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이 따로 없고,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꿨을 때 색깔이 바뀌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에 표시되는 메뉴와 기능은 많지 않은데요. 무선 연결이 가능한 안드로이드 오토 및 애플 카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스크린 자체의 터치 및 슬라이드 반응 속도는 빠르면서 스마트폰 연결 시 앱 기능 조작 반응은 느립니다.

편의 장비와 기능에서는 반가운 점과 아쉬운 점이 엇갈립니다. 부분 변경 전에는 선택 사항이기는 했지만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넣을 수 있었는데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에서는 아예 빠졌고요. 이전에도 없었던 뒷좌석용 송풍구는 여전히 없습니다. 대신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충전에 편리한 USB 포트는 시승차(RS 트림 풀 옵션) 기준으로 앞좌석용과 뒷좌석용으로 모두 A 타입 한 개와 C 타입 한 개씩 마련되어 있습니다.

공간 구성은 앞뒤 모두 좌석 크기가 조금 작게 느껴진다는 점을 빼면 정석에 가깝습니다. RS 트림에 들어가는 D 컷 스티어링 휠은 지름이 작고 림이 굵어 스포티한 느낌을 주면서도 뒤에 놓인 LCD 계기판을 가리지 않습니다. LCD 스크린 좌우로 넓게 펼쳐진 의미 없는 검은색 장식을 눈에 띄지 않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요. 앞좌석은 파노라마 선루프가 천장 공간을 어느 정도 차지하는데도 앉는 높이와 머리 위 공간 모두 적당히 여유가 있습니다. 넓은 유리 덕분에 시야도 좋고요.

좌석 쿠션은 앞뒤 모두 탄탄한 편인데, 앞좌석은 굴곡이 어느 정도 있고 옆구리를 받치는 부분이 알맞게 튀어나와 있어 몸을 비교적 잘 잡아줘서 안정감이 있습니다. 뒷좌석도 앉는 부분 높이와 등받이 각도가 적당해서 자세를 편하게 잡을 수 있지만, 좌석 표면에 굴곡이 거의 없어서 차로를 바꾸거나 커브를 돌 때에 안정감이 떨어집니다. 뒷좌석 너비는 어른 두 명이 나란히 앉기에는 넉넉하지만 가운데 자리에 어린이 한 명을 더 앉히기에는 부담스러워 보입니다.

트렁크 공간은 이 정도 크기의 차에서는 무난한 수준이고, 바닥 패널을 필요에 따라 위아래로 옮길 수 있습니다. 트렁크 양쪽 벽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공간을 활용하기에는 편리합니다. 뒷좌석 등받이는 6:4 비율로 나뉘어 있어 따로 접고 펼 수 있고, 트렁크 바닥 패널을 위쪽에 설치하면 뒷좌석 등받이를 앞으로 젖혔을 때 바닥이 평평해집니다. 다만 트렁크에 실은 짐이 드러나지 않게 해 주는 스크린이나 선반이 없는 점은 아쉬운데요. 주행 중에는 뒷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트렁크쪽으로 올라오는 소음이 전달되는 데에도 영향을 줍니다.

동력계와 구동계, 섀시 등 차를 이루는 구조와 물리적 특성은 이전과 같습니다. 직렬 3기통 1.3L 가솔린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156마력)과 최대토크(24.1kg・m) 모두 이전과 같고요. 선택 사항인 스위처블 AWD(네바퀴굴림) 시스템을 갖춘 시승차에는 9단 자동변속기와 스위처블 AWD 패키지에 포함된 RS 트림 전용 19인치 휠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뒤 서스펜션은 AWD 시스템이 들어간 차에만 쓰이는 Z링크인데, 앞 서스펜션은 동력계 구성에 관계없이 맥퍼슨 스트럿 방식이고 뒤 서스펜션만 동력계 구성에 따라 다른 구성도 이전과 같습니다.

엔진은 직렬 3기통 기준으로 보면 진동과 소음이 크지는 않습니다. 물론 동급 차들에 들어가는 직렬 4기통 엔진들과 비교하면 떨림과 소리가 조금 더 큰 편이긴 한데, 느린 속도에서 빠르게 가속할 때가 아니면 신경 쓰일 만큼 진동과 소음이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이 엔진을 넣는 것을 고려해 차를 설계했을 뿐 아니라 세단처럼 차의 움직임이 더 절제된 차들보다는 움직임에 더 여유가 있는 SUV에 들어갔기 때문에 체감 진동이 어느 정도 상쇄되는 덕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적당한 힘을 내면서 효율에도 신경을 쓴 엔진이어서, 힘은 적당한 수준에서 아쉽지 않을 정도의 여유가 더해진 정도입니다. 느린 속도 영역에서 가속할 때에는 부담이 크지 않고, 빠른 속도 영역에서는 속도가 빨라지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둔하지만 그래도 제법 속도를 잘 붙입니다. 운전자의 조작에 비교적 잘 반응하는 느낌이 드는 편인데요. 이는 최대토크가 꽤 넓은 엔진 회전 영역에 걸쳐 나오는 특성 덕분이기도 하고, 알맞게 반발력을 조율한 액셀러레이터 페달 덕분이기도 합니다.

9단 자동변속기는 변속이 매끄러우면서도 빠릅니다. 자연스럽게 속도를 높이고 낮출 때에는 변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좀처럼 느끼기 어렵고요. 다만 스포츠 모드를 선택한 상태로 달릴 때에는 가속과 감속이 잦을 때 약간 울컥거리는 느낌을 주고, 수동 모드로 변속할 때에는 변속 반응이 조금 더딥니다. 이런 특성은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에도 느꼈던 점이어서 아쉽습니다.

스위처블 AWD 시스템은 기본 주행 상태에서는 앞바퀴에만 구동력이 전달되고, 버튼을 눌러 AWD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뒷바퀴로 구동력이 전달됩니다. 하지만 AWD 시스템이 작동하더라도 특정 속도 이상으로 빨리 달리거나 굳이 뒷바퀴로 구동력을 전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적인 주행 상태에서는 자동으로 뒷바퀴로 전달되는 구동력을 끊습니다. 구동 부하를 줄여서 연료소비 효율을 높이는 거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뒷바퀴로 구동력이 전달될 때에는 가속할 때 차체 앞쪽이 들리는 현상이 줄어 달릴 때의 안정감도 더 커집니다.

가속과 감속뿐 아니라 스티어링도 운전자의 조작에 빠르고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움직임에 여유가 있으면서도 탄력이 있는 서스펜션도 전반적인 주행 감각을 안정적으로 만듭니다. 종합적으로 다루기 좋은 차라는 느낌이 뚜렷하게 듭니다. 특히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처럼 비교적 포장이 잘 되어 있고 특정 속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을 달릴 때에는 꽤 편안하게 달릴 수 있습니다. 비포장도로에서는 요철의 주기에 따라 차체 위아래 움직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무난한 느낌입니다. 이 정도 차급 차로서 승차감은 평균 수준 이상입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비포장 도로를 달릴 기회도 있었는데요. 그리 험한 코스가 아니어서 일반 도로용 타이어를 끼운 채로 AWD 시스템만 작동시키고 달리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습니다. 일부 경사가 심한 곳과 미끄러운 구간이 아니었다면 굳이 AWD 시스템을 켜지 않고도 충분히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레일블레이저 출시 초기에 제법 험한 비포장 도로를 달렸을 때 빠른 동력 배분이 마음에 들었는데, AWD 시스템 자체가 크게 바뀐 것은 없으니 여전히 쓸만한 성능을 보여줍니다. 다만 요즘 차들에 널리 쓰이고 있는 ESC(전자식 주행 안정성 제어 시스템) 기반 험로 주행 모드나 HDC(내리막 속도 제어 기능)는 없어서, 진짜 구동력과 접지력을 신경쓰며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AWD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사진제공: GM 한국사업장

한창때 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나라 소형 SUV 시장은 여전히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리고 소형 SUV는 소비자들이 다른 차급 차들보다 값 대비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렇게 본다면 이미 시장에서 뛰어난 값 대비 가치를 인정받아 잘 팔리고 있는 모델이 있는 상황에서,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는 상대적 강점이 돋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브랜드 안에서 값 대비 가치가 뛰어난 트랙스 크로스오버까지 추가되었습니다.

물론 부분 변경 전과 마찬가지로 동력 특성과 주행 특성 등 기본적인 장점들은 매력이 있습니다. 선택 사항인 AWD 시스템도 제법 쓸만하고요. 그래서,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는 이 차의 장점과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마음놓고 사도 좋지만, 트랙스 크로스오버나 다른 업체의 경쟁 모델들과 비교해 구매를 고려하는 분들을 확실하게 끌어오기에는 애매할 듯합니다.


[ 상세 제원 ]

쉐보레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 RS
차체형식
공차중량
5도어 5인승 왜건
1,470kg
길이x너비x높이
휠베이스
트랙 앞/뒤
4,425×1,810×1,670mm
2,640mm
1,549mm/1,570mm
서스펜션 앞/뒤
브레이크 앞/뒤

타이어 규격 (시승차)
맥퍼슨 스트럿/Z링크(변형 토션 빔)
벤틸레이티드 디스크/디스크
앞 245/45 R19, 뒤 245/45 R19
엔진 형식
최고출력
최대토크
연료탱크 용량
I3 1.3L (1,342cc) 가솔린 터보
156마력/5,600rpm
24.1kgm/1,600~4,000rpm
50L
변속기
굴림방식
자동 9단(AT)
네바퀴굴림(AWD, FF/AWD 전환 가능)
표시연비 – 복합 (도심, 고속도로)
CO2 배출량
에너지소비효율
11.6km/L (10.7km/L, 12.7km/L)
146g/km
3등급
기본값
시승차 값
3,099만 원 (RS)
3,634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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