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쌍용 체어맨 CM600S ‘블랙 레이븐’ 다이어리 (2) – 활동의 폭이 넓어진 12월

12월에는 시승이다 행사다 해서 블랙 레이븐를 세워 놓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곳저곳 오갈 일들이 생겨, 좀 더 활동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경험과 발견을 하는 일들도 늘어났고요.

아래 사진은 일정 중 시간이 좀 애매하게 비어, 한적한 주차장에 블랙 레이븐을 세워놓고 잠깐 쉬면서 찍은 겁니다. 차가 기니까(‘크니까’라기엔 요즘 기준으로는 너비가 좀 아쉽죠) 동반석 등받이를 한껏 눕히니 상석에서 다리를 쭉 뻗고 쉴 수도 있네요. 단차가 좀 있긴 한데 많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고요.

물론 90년대를 풍미한 현대 뉴 그랜저 같은 차들에는 동반석 등받이 일부가 뒤로 젖혀져 종아리 받침 역할을 하는 이른바 ‘레그 스루(leg-through)’ 기능도 있기는 했지요. 쌍용 체어맨은 앞좌석 사이드 에어백 때문에라도 그런 기능 넣기는 좀 어려웠을 겁니다.

주로 직접 운전을 하면서 쓰다 보니 뒷좌석에 앉을 일이 별로 없긴 한데, 이런 식으로라도 20여 년 전 ’싸장님‘들 럭셔리 카 라이프를 한 조각씩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네요. 뒤 유리와 양쪽 뒤 도어 유리를 가리는 롤러 블라인드도 있으니 분위기도 차분하고요.

다만… 다리 뻗고 쉬자니 뒷좌석 등받이 각도가 좀 애매해서, 쿠션이라도 하나 갖다놔야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저보다는 아이들이 탈 일이 더 많으니 그도 좋겠다 싶습니다.

한편으로 20세기가 낳은 울트라 럭셔리 초대형 세단을 데일리 카로 쓰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타고 다니기에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느낌에 젖어 있다가도 퍼뜩 정신이 들곤 합니다. 편안함보다는 차와 함께 길과 싸우듯 달리기를 좋아하고, 작고 가벼운 차의 발랄한 몸놀림을 즐기는 제 본성이 종종 의식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기 때문이죠.

이따금 와이프 차인 쉐보레 트랙스의 운전대만 잡아도 그 본성은 입에 꿴 낚시바늘을 떨쳐버리려는 듯 발버둥을 칩니다. 초기형 트랙스는 당대 나온 국산 소형 SUV 가운데 가장 뒤뚱거리는 찬데도, 지붕 위에 늘 커다란 루프 캐리어를 얹고 있어 더 몸놀림이 커지는 데도, 짧은 몸을 비틀며 휙휙 빠르게 엉덩이가 머리를 쫓아 다니는 재미가 살아 있어요. 작은 차들만의 다루는 재미 말이죠.

반면 블랙 레이븐의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만사가 느긋합니다. 이 차는 어느 하나 빠른 게 없어요. 엔진 회전수가 3,000 rpm을 넘기면 가속에 관해서는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달리기와 관련한 거의 모든 영역의 움직임은 느립니다. 뒷좌석에 탄 분을 최대한 편하게 모신다는 본분에 충실한 거죠.

어느 하나 변화가 급하면 안 되니, 가속과 감속, 회전에 관한 모든 것의 움직임은 정확하면서도 부드럽고 깔끔하게 느립니다. 차가 그렇게 움직이니 운전도 자연스럽게 차에 길들여지고, 혼자 타고 운전하는 데도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10도만 기울어져도 반응이 시작되는 액체 폭탄을 가득 실은 것처럼 몰게 됩니다. 내가 차를 모는 건지 차가 나를 모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뒷좌석용 차로는 훌륭하지만, 운전자용 차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찬줄 모르고 사진 않았습니다. 주로 가족과 어른들 모시는 데 쓸 생각으로 샀으니 제 역할에 충실한 것 뿐이고 목적에 알맞으니 더 이상의 불평은 생략하겠습니다. 블랙 레이븐에게는 잘못도 없고 그에게 불만도 없습니다. 그냥 다루기 좋고 잠깐씩이라도 신나게 몰 수 있는 작은 차가 그리울 뿐이죠.

쉴 땐 쉬고 달릴 땐 달린 덕분에, 12월에도 두 번 주유를 했습니다. 매번 가득 채웠고요. 첫 주유 때는 63.723 L가 들어갔고, 두 번째는 60.286 L가 들어갔습니다. 달린 거리는 첫 주유 때 482.2 km, 두 번째 주유 때 437.2 km를 기록했습니다. 대충 계산하면 평균 연비는 7.4 km/L 정도 나오네요. 정체가 심한 서울 간선도로들을 달린 영향이 있어선지, 11월보다는 조금 나빠진 결과입니다.

누적 주행 거리는 19만 3,610 km를 넘겼습니다. 인수한 뒤로 달린 거리가 벌써 1,800 km가 넘네요. 차를 많이 쓰는 편은 아닌데도 한 달에 900 km 이상은 달립니다. 전에도 늘 그랬죠. 이런 식이면 2024년 상반기 중에 20만 km를 넘길 듯합니다. 노인학대(?)는 계속 됩니다.

짬나면 리뷰 비스무레한 영상이라도 좀 찍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밀린 일들 쳐내기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렇다보니 제이슨류닷넷 유튜브 채널에 올릴 것도 못 찍었는데, 12월 말에는 다른 매체 유튜브 채널에 올라갈 영상을 먼저 찍었네요. 올라오는대로 공유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구석도 많고 이야기거리도 많은 차라, 꼭 차 리뷰가 아니더라도 관련 콘텐츠를 좀 만들긴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유통되는 정보들이 부실하거나 잘못된 것, 과대포장되거나 과소평가된 것도 많아서,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싶거든요. 체어맨뿐 아니라 다른 차들도 마찬가지고요.

해야 하는 일에 쫓기기보다, 하고 싶은 일에 힘을 실을 수 있는 2024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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