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스쿠프의 부활을 꿈꾸며

[ 월간 ‘자동차생활’ 2007년 9월호 ‘자동차 만담’에 실린 글입니다 ]

현대 스쿠프는 뛰어난 스포츠카는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적당히 스피드를 즐길 수 있어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스쿠프가 단종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매니아들이 만족할 만한 국산차는 찾기가 힘들다. 스쿠프의 개념을 이어받은 값싸고 유지비 저렴한 소형 스포츠 모델이 다시 나오면 좋겠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지만, 종종 만나 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차와 관련된 취미를 함께 하는 지인들이 있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이들은 필자와 마찬가지로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 10년 이상 운전을 했고 최소한 한두번씩은 차를 바꾼 사람들이다보니 자신만의 차를 고르는 기준도 있고, 차를 살 때에도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가며 신중을 기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차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여러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당연히 갖고 싶은 차, 사고 싶은 차에 대한 이야기가 수시로 오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유는 달라도 이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요즘 나오는 차들은 마땅히 사고 싶은 차가 없다”는 쪽으로 귀결된다. 아직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수입차를 사기에는 재력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점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곧 “국산 새차 중에는 매력적인 차가 없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옛 차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하고,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긴다면 세컨드카 또는 서드카로 옛 중고 국산차를 갖고 싶다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나아가 실제로 십수년 전에 자신이 타던 차를 다시 중고로 구입해 손보며 즐기는 사람도 있다. 디자인, 성능, 꾸밈새, 품질 등 모든 면에서 국산차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왜 필자를 포함한 차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만한 차는 없는 것일까.

차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국산차가 없다 

필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이른바 수능제도가 생기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학력고사 제도를 통해 대학에 들어간 세대다. 건강문제로 수시로 학교를 쉬어야 했던 필자는 3년의 고등학교 생활 내내 수도권 대학진학 가능성을 점치기 힘든 모의고사 점수가 큰 압박거리였다. 게다가 곧 바뀔 새로운 입시제도는 재수조차도 망설이게 만들었다. 결국 학력고사가 다가올 무렵에는 ‘대학진학을 포기할까’, ‘눈높이를 낮춰 전문대 자동차학과에 들어가 정비공부를 할까’의 기로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부모님이 필자에게 던진 당근은 꽤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국내 유일의 스포츠카(당시에는 이렇게 얘기해도 토를 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현대 스쿠프를 대학입학 선물로 내건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공짜로 차가 생긴다는 데 가슴이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대학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른 데에 있었지만, 일종의 포상이라 할 수 있는 스쿠프도 포기상태에 있었던 입시공부에 불을 붙이는 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는 했다.

걸림돌은 많았지만 어처구니 없이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당연히 스쿠프가 수중에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부모님은 필자의 결정적인 약점을 들어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면허도 없는데 차를 사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운전전문학원에서 면허를 딸 수 있는 제도도 없었고, 면허시험 대기자도 워낙 많았던 때라 대학입학 후에도 면허를 따기까지는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방학 때 반짝 한 번밖에 없었던 시험 기회가 한 번은 필기시험 낙방, 한 번은 코스시험 낙방으로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2종 보통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게 된 것이 1994년 8월의 일이다. 그 즈음부터 집안은 슬슬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 시작해 ‘차 사달라’는 얘기는 꺼낼 수도 없게 되었다. 대학생들에게 흔했던 과외 아르바이트도 쉽지 않은 여건 때문에 마이카는 그저 꿈같은 얘기로 흘려보내야 했다. 그러나 차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기에 앞서 이야기한 지인들과 가까와질 수 있었다. 지인들 중에는 그 시절에 경제난을 호소하면서도 당당히 자기 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우 티코를 위시해 중고로 사거나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국산 소형차나 중형차가 그들의 주된 발이었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스쿠프도 있었다. 자동차에 가장 관심을 많이 갖던 시절에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차들을 접하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차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나름대로의 방법과 기준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이후로 꾸준히 머리속에 차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쌓아나가고 있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식 데이터베이스의 시작점은 1990년대의 국산차가 되었다. 그리고 매니아라면 늘 마음에 품고 있을 스포티한 차, 재미있는 차에 대한 정보의 가장 아래쪽에는 지금도 스쿠프가 자리잡고 있다.

운전경험이 많지 않던 그 시절에 몰아보았던 스쿠프는 다른 것은 몰라도 달리는 느낌만큼은 가벼웠다. 실제로 스쿠프의 차체는 꽤나 가벼웠다. 무게가 1톤이 채 되지 않는 차체에 102마력(요즘의 NET마력이라면 80마력대 후반이겠지만)을 내는 1.5L 엔진을 얹은 차가 가볍게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스쿠프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 시절의 차는 거의 다 가벼웠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빈약한 충돌안전규정은 형편없는 차체 강성과 성긴 설계로도 차를 만들 수 있었다. 빈약한 차체는 주행안정성과 핸들링의 정확성을 떨어뜨렸지만, 가속감만큼은 시원했다. 감속비를 높게 세팅해 초반가속이 한층 뛰어나게 느껴졌던 현대차의 특성이 스쿠프라고 다를 바 없었다. 어찌 보면 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어쩔 수 없는 경량화(?)가 스쿠프의 날랜 달리기를 가능하게 해 준 셈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현대판 스쿠프 나왔으면

게다가 엑셀 플랫폼으로 만든 스쿠프는 1.5L급 준중형차와 비슷한 700만∼800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 시절 휘발유 값은 600원 대, 경유 값은 200원 대였다. 터보를 달지 않은 스쿠프 수동 모델의 당시 공인연비는 16.4km/L였으니 요즘 기준으로도 약 14km/L 정도는 나올 것이다. 작은 차체, 작은 엔진, 그리 비싸지 않은 값에 유지비도 썩 부담스럽지 않아 부담없이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적당히 스피드를 즐길 수 있었으니 젊은이들이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스쿠프는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드림카였던 포드 머스탱의 개념이 199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서 구현된 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그 시절에 4인 가족이 번듯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준중형차를 살 수 있었던 돈이 이제는 경차를 사기에도 빠듯하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휘발유 값은 2.5배, 경유 값은 6배 정도 올랐다. 물가 상승률을 계산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가볍게 차를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차를 끌고 다닐 때의 부담은 그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졌다.

현대는 지금도 투스카니라는 스포츠 모델을 내놓고 있지만 스쿠프처럼 젊은이들이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차는 아니다. 투스카니 후속 모델로 개발되고 있는 GH는 뒷바퀴굴림 플랫폼과 커진 차체로 지금의 투스카니보다 더 윗급 차가 될 것이 분명하다. 값 역시 투스카니보다 훨씬 비싸질 테니 어느 정도 생활에 여유가 있는 일반인들도 선뜻 ‘살까’하는 생각을 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 국산차인데, 젊은이들이 심적, 금전적 부담을 덜 느끼면서 갖고 모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차를 갈수록 찾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매니아들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이유가 아닐까. 

최근 토요타가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소형 뒷바퀴굴림 해치백 스프린터 트레노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물론 스프린터 트레노가 주역으로 등장해 대 히트한 만화 ‘이니셜 D’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대형화, 고급화되고 있는 일본 스포츠카가 판매감소라는 역효과를 낳는 것을 보고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값에 맛깔나는 달리기 실력을 갖춘 소형 스포츠 모델이 틈새차종으로 소비자들에게 먹혀들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인터넷과 게임에 익숙해진 신세대가 차에서 어떤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기는 하지만, 요즘의 기준에 맞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현대판 스쿠프가 나온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차의 재미를 일찍부터 느낄 수 있는 젊은이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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