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월간 ‘자동차생활’ 2007년 10월호 ‘자동차 만담’에 실린 글입니다 ]
IMF 경제위기 전 국내 중형차 시장의 맹주인 현대 쏘나타에 도전장을 내민 대표적인 차로 기아 크레도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크레도스는 ‘타도 쏘나타’에만 집중한 나머지 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기아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 ‘절대강자’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면 경쟁에서 이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1990년대 이후 내수 시장에서 국산차 시장흐름을 대변해온 차급은 역시 중형이다. IMF 경제위기 시절이나 실물경기가 썩 좋지 않은 요즘같은 때에 준중형차에 조금 밀리기는 해도, 중형차 판매는 자동차 메이커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그 양과 영향력이 크다. 사실 중형차라고 해서 개발비나 생산비, 기타 제반비용이 한급 아래인 준중형차와 두드러질 정도로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메이커는 준중형차보다 중형차가 한 대 더 팔리는 것이 반갑다.
중형차가 경차를 대신하는 ‘국민차’가 되어버린 데에는 이런 메이커의 의도가 바탕에 깔린 마케팅의 영향이 크다. 특히 보수적 성향의 소비자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변형차종 없이 4도어 세단 한 종류만 내놓아도 충분히 팔리기 때문에 메이커에게 있어서 중형차는 핏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형차는 SUV나 RV가 아니라도 비교적 생산비용 대비 수익이 높다. 그래서 쌍용을 제외한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은 중형차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피튀기는 전쟁을 벌여왔다.
쏘나타의 진정한 경쟁자였던 크레도스
국내 대표 중형차로 손꼽히는 것은 단연 현대 쏘나타다. 대우 로얄 시리즈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1980년대 후반 이후 국내 중형차 시장의 맹주로 떠오른 쏘나타는 다양한 소비자들의 기호를 고루 만족시키는 무난한 차라는 전통을 이어왔다. 지금도 쏘나타는 국내 모든 메이커의 중형차들이 따라잡아야 하고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국산 중형차의 기준 역할을 하고 있다.
쏘나타가 국내 중형차 시장의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초반. 쏘나타의 경쟁차는 기아 콩코드와 대우 프린스였지만, 1982년형 마쓰다 카펠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콩코드와 1970년대 오펠 세나토르의 설계를 가져온 프린스가 쏘나타를 위협할 정도의 뛰어난 상품성을 갖지 못한 것은 쏘나타의 입지를 굳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기아는 1980년대 초반 정부의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로 승용차 생산을 할 수 없었고, 대우는 GM과의 제휴관계가 발목을 잡아 쏘나타 대항마 개발을 뒤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결국 기아와 대우가 중형차 시장 회복을 위한 새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에 가까워서였다. GM과의 관계를 1992년에야 청산할 수 있었던 대우보다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기아였다. 이미 콩코드의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한 기아는 마쓰다와의 협상을 통해 비교적 새로운 모델인 크로노스/626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크레도스를 개발하기 시작해 1995년에 출시했다. 대우의 반격이라 할 수 있는 레간자가 나온 것은 훨씬 뒤인 1998년의 일이고, 레간자는 국산 중형차로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갔기 때문에 별격으로 놓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기아의 몰락 이전까지 중형차 시장에서 제대로 된 경쟁을 위해 만들어진 차는 크레도스뿐이라 할 수 있다.
크레도스는 기아가 ‘타도 쏘나타’를 목표로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든 차였다. 국산 중형차 처음으로 독자개발한 엔진을 얹었고, 핸들링과 안전성을 위해 서스펜션 튜닝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윗급 모델인 포텐샤를 능가하는 뒷좌석 공간을 갖추는 등 거주성에도 신경을 썼고, BMW 분위기의 반자동 공기조절장치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로터스가 튜닝한 서스펜션은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국산 중형차 가운데 가장 민첩한 움직임을 이끌어냈다. 처음 나왔을 무렵 시승해보고 국내 유일의 스포츠성 모델인 현대 스쿠프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깔끔한 핸들링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크레도스는 쏘나타를 넘어서지 못했다. 실패라고까지 하기는 어렵지만, 크레도스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 1등을 목표로 온 힘을 기울여 만든 차가 1등을 하지 못한 것은 투입한 개발비를 판매수익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아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여러 안팎의 악재가 겹쳐 마침내 1997년 부도 사태를 맞기에 이른다. 그 즈음 나온 크레도스Ⅱ 역시 제 힘을 내지 못했고, 회사회생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헐값에 새차를 팔아 차의 가치가 뚝 떨어졌다. 현대에 인수되어 EF 쏘나타의 형제차인 옵티마가 나올 때까지 크레도스Ⅱ는 중형차 시장에서 야인(野人) 신세를 면치 못했다. 여러 면에서 크레도스는 기아가 낳은 ‘실패한 성공작’이었다.
‘타도 쏘나타’에만 집중한 것이 패인
크레도스가 가진 한계는 목표를 현대 쏘나타로 잡았던 것이었다. 모든 부분에서 ‘쏘나타를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차의 전체적인 조화를 깨뜨렸다. 부분적으로는 쏘나타를 넘어서는 부분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딱히 사야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또한 쏘나타의 강점이 ‘무난함’이라는 점을 파악한 것은 좋았지만, 무난함에 무난함으로 대응해 차의 강점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한정된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의 한계와 병폐를 미처 깨닫지 못한 기아의 실수였다. 지금처럼 국산차 수출이 활발해지기 전, 국내 메이커들의 시야가 내수 시장으로 한정된 상황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평화는 힘의 균형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슷한 힘을 가진 나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면 서로를 견제하면서 쉽게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만약 전쟁을 일으켜 승리하고 싶다면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전력이나 전술이 있어야 한다. 자동차 세계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로 크기를 들 수 있다. 크기는 차의 상품성을 결정하는 요소의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대중적인 성격의 차에서는 거주공간과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마케팅 면에서 크게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모델들이 세대가 바뀌면서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크기변화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BMW는 지금의 3시리즈(개발명 E90)를 내놓으면서 구형(개발명 E46)보다 차체를 76mm 키워 동급 경쟁차종 사이의 눈치 보이는 교묘한 수치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를 단숨에 구세대의 차로 만들어버릴 만큼 멀리 도망간 것이다. 현대도 신형 아반떼(개발명 HD)에서 비슷한 행보로 다른 준중형차들을 크기에서 제쳐버렸다. 단순한 동급 모델 사이의 경쟁차원을 넘어서 ‘절대강자’를 지향한 것이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무언가는 남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절대강자’의 면모를 갖춘 차를 내놓아야 한다. 물론 소비자들이 수긍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품특성의 틀 안에서 말이다. 그것이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잘 만들고도, 나아가 어느 정도 팔리고도 성공적이지 못한 차로 남을 차 때문에 메이커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