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GM대우 사내보 ‘고객사랑’에 실린 글입니다]

지금은 형편이 많이 달라졌지만, 1990년대만 해도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의 현지 정세를 보여주는 TV 뉴스 자료화면에는 라디에이터 그릴에 ‘TOYOTA’라고 쓰여진 SUV 또는 픽업 트럭이 자주 눈에 띄곤 했다. 얼핏 앞모습이 지프와 비슷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가벼운 느낌의 디자인에서 일본차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차는 토요타의 간판 4륜구동차 랜드 크루저(Land Cruiser)다.

랜드 크루저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차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랜드 크루저는 지프, 랜드로버와 함께 지프, 랜드로버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팔리고 알려진 SUV 중 하나다. 일본이 낳은 대표적인 SUV로 미쓰비시 파제로를 꼽는 사람도 있지만, 파제로의 30년 역사는 랜드 크루저의 55년 역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랜드 크루저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차다.

1951-Toyota_BJ-1

랜드 크루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토요타가 만들었던 BJ 지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토요타는 4륜구동차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일본 경찰예비대가 지프와 비슷한 형태의 차를 구입하기 위해 토요타에 입찰제안을 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4륜구동차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는 토요타는 오래지 않아 지프와 비슷한 구조와 크기의 차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경찰예비대가 토요타의 차를 구입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자, 토요타는 BJ 지프를 해외 시장에 팔 계획으로 개발을 계속했다. 1951년에 이르러 실험용 차가 완성되었고, 일본에서 가장 높은 후지산에서 테스트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테스트를 통해 성능과 내구성이 입증되자 일본 경찰예비대는 급히 BJ 지프를 순찰차로 구입하기로 결정했고, 뒤이어 농림성이 산림감시용 차로, 전력회사들이 시설관리용 차로 구입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58 Toyota FJ Cruiser

토요타는 국내에서의 여세를 몰아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 BJ 지프를 수출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토요타는 지프라는 이름이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사실에 당혹했다. 지프를 비슷한 형태의 차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처럼 생각했는데, 이것이 원조 지프 메이커인 미국 윌리스가 상표로 등록해 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토요타는 부랴부랴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 했는데, BJ 지프의 개발 책임자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토요타의 지프형 차가 해외에서 주로 경쟁할 차 가운데에는 영국의 랜드로버가 있었다. 개발 책임자는 랜드로버라는 이름에 쓰인 로버(Rover)라는 단어에 해적, 또는 해적선 등의 뜻도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여기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상징적인 단어를 궁리하다가 ‘순양함’을 뜻하는 크루저(Cruiser)를 떠올렸다. 그래서 ‘지상의 해적선’을 이기는 ‘지상의 순양함’이라는 뜻의 랜드 크루저를 이름으로 정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54년에 새 엔진과 함께 개선된 새 모델부터 토요타의 4륜구동차는 랜드 크루저라는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1960 Toyota FJ 40 Land Cruiser

랜드 크루저는 이후 수십 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모델이 늘어나고 새 모델로 변신을 거듭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만들어지며 인기를 얻었던 모델은 1960년부터 84년까지 생산된 40 시리즈였다. 랜드 크루저 40 시리즈는 처음부터 수출을 염두에 두어 개발되었고, 험한 지형을 달릴 수 있도록 차체전문 제작업체에서 튼튼하고 꼼꼼하게 조립되었다. 랜드 크루저의 품질과 내구성은 이후 토요타 승용차의 품질과 내구성을 높이는 기준이 되었다.

40 시리즈의 여러 변형 모델들 중에서도 1966년부터 생산된 2도어 하드톱 모델은 차체 뒤쪽 모서리에 곡면 유리창이 있었다. 이 곡면 유리창은 1963년부터 쓰인 플라스틱 재질의 흰색 지붕과 함께 40 시리즈의 특징으로 소비자들의 인기를 모으는 데 한몫 했다. 일본에서는 여러 세대의 랜드 크루저 가운데에서도 이 곡면 유리창을 가진 40시리즈 모델이 진짜 랜드 크루저 대접을 받고 ‘랑크루’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특히 사랑받고 있다.

랜드 크루저의 내구성은 토요타의 미국 시장 진출 과정에서도 입증되었다. 토요타는 1958년에 승용차 크라운을 가지고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크라운은 미국 고속도로에서 오랜 시간 고속으로 달릴 수 있을 만큼 엔진의 내구성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당시의 미국차와 비교해 편의성과 완성도 모두 보잘 것 없었다. 충분한 승용차 기술을 갖출 때까지 미국에서 승용차를 파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토요타는 곧 랜드 크루저를 미국에 소개했다.

1980-Toyota_Land_Cruiser-1

지프와 비슷한 성능과 함께 충분한 내구성을 갖춘 랜드 크루저는 이내 미국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한동안 일본 차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기까지 했다. 랜드 크루저는 이후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험로가 많은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랜드 크루저의 선배 격인 지프와 랜드로버의 판매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도쿄 올림픽을 전후해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서 덩달아 인기를 얻었다.

1965년까지 전 세계에 5만 대가 팔린 랜드 크루저는 불과 3년 뒤인 1968년까지 10만 대가 팔렸다. 1973년에 세계 120개국에서 볼 수 있는 월드카가 된 랜드 크루저는 1981년 총 생산 100만 대를 넘어섰고, 그 중에서도 40 시리즈는 일본에서 1983년까지 무려 24년 동안 110만 대 이상 생산되었다. 랜드 크루저 최고 인기 모델인 40 시리즈는 1961년부터 브라질에서도 생산되었는데, 반데이란테(Bandeirante)라는 이름과 함께 ‘사나이’라는 뜻의 엘 마초(El Macho)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2001년까지 큰 인기를 끌며 생산되었다.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 랜드 크루저는 지금까지 전 세계 10여개 국에서 450만 대가 넘게 생산되었고, 그 숫자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toyarch toyhist

지금도 아프리카와 동남아, 호주 등에서는 초원과 밀림을 누비는 랜드 크루저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랜드 크루저의 발자취는 우리나라도 피해가지 않았는데, 1968년에 신진자동차에서 40 시리즈 픽업 모델을 조립생산한 적이 있었다. 이 차는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국내에서 생산된 첫 4륜구동 화물차로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