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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카 한국판 2009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사람들이 차를 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디자인이다. 특히 겉모습이 어떻게 생겼느냐는 차를 사려는 사람이 무척 중요하게 생각할 부분이다. 국내 모 차종의 CF에도 나오듯, 생의(CF 속의 ‘생에’는 틀린 말이다) 80%는 서 있어야 하는 것이 차의 운명이다. 그러니 안에서 보이는 차보다 밖에서 보이는 차의 모습이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차를 직접 타고 모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평소 운전할 때를 생각해 보라. 자신이 주변 교통상황은 살피지 않고 타고 있는 차의 실내를 둘러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생각하는가? 편의장치의 기능이나 공간, 시트의 쾌적함이나 승차감 같은 것들에 뿌듯해 하면 하지, 단순히 내장재의 생김새만 가지고 ‘므흣’해 할 사람은 운전석에 앉은 당신이 아니라 주변 다른 자리에 앉은 이들이어야 맞다.

그래서 생의 80%는 서 있어야 하는 자동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다. 그렇다면 차의 겉모습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자동차 메이커 경영진의 입김도 무시하기 힘들 것이고, 디자인 책임자의 철학이나 디자인 팀원 개개인의 성향 및 역량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이 차를 어떤 사람들이 살 것인가’에 대한 자동차 메이커 구성원들의 고민일 것이다. 즉, 디자인의 초점은 목표 소비자들의 성향에 맞춰진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성향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구체적인 이론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회가 자유롭고 경제가 성장하는 환경 속의 소비자들이라면 더 신선하고 즐거운 개념과 디자인의 차를, 여러 면에서 침체기를 겪고 있는 환경 속의 소비자들이라면 무난하고 안전한 디자인의 차를 선호할 것이라고 말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을 생각해 보면 필자의 생각은 얼추 맞아 떨어진다. 경제와 사회 분위기의 부침에 신선한 디자인과 장르의 차들의 명멸도 좌우되었다. 환경변화에도 모질게 살아남는 것은 시대 분위기에 맞춰 조금씩 달라지기는 해도 으레 무미건조한 구성과 튀지 않는 디자인의 3박스 스타일 4도어 세단뿐이었다. 간단히 말해, 세상이 칙칙할수록 소비자들의 성향은 보수적이 되었고, 이에 따라 보수적인 디자인의 차들의 생명력이 더 크게 빛을 발했다.

그런데 그런 공식도 딱 들어맞는 시대는 지났나보다. 요즘 들어 나오는 국산차들의 디자인을 보면, 그동안 국내 메이커들의 제품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신선한 시도들이 많이 엿보인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경기침체가 바닥을 쳤느니 아니니 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도 기아 소울과 포르테 쿱 같은 틈새차종들은 물론이고, 최근의 현대 에쿠스나 곧 나올 YF 쏘나타 같은 최신 차종들은 4도어 세단이면서도 그저 그런 무난함을 탈피하고 진보적인 디자인을 입고 태어났거나 나올 예정이다. 내수 시장만 놓고 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려던 필자의 시선은 나라 밖을 향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예를 들어 보자. 요즘 유럽 메이커들이 내놓는 차들의 디자인은 우리네 시선으로 보면 황당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적지 않다. 다른 세상의 차처럼 느껴진 지 오래인 프랑스와 이태리 차들은 그렇다 치고, 유럽 포드와 오펠 같은 대중차 브랜드나 폭스바겐 계열의 저가 브랜드들이 내놓는 차들은 도무지 우리나라에 들여다 놓으면 눈이 적응하기 힘들 디자인을 가진 것들이 적지 않다.

비교적 보수적인 디자인 노선을 걸어온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차들의 디자인도 막나간다 싶을 정도로 자유분방해졌다(BMW의 최근 모델들이 특히 심하다). 언제나 우리와는 미적 기준이 달랐던 일본차들의 디자인도 점점 자신들만의 스타일 표현이 화끈해져 가고(닛산 GT-R이 ‘아름답다’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이제는 힘을 잃었지만 미국 빅3 차들의 디자인에서도 좀처럼 절제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극한의 박력 만을 보여주는 짚 코맨더 같은 차들을 보라). 이런 차들과 국내 브랜드 차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그나마 국내 브랜드 차들이 보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필자가 지나치게 해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기아 소울이 독창적이기는 해도 닛산 큐브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 파격적이지는 않다. 포르테 쿱?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장르의 차이지만 장르 자체는 이미 해외에서는 90년대 말 이후로 인기를 잃었고, 디자인에 있어서도 기본기에 충실해 멋있기는 해도(사실 필자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부분이다) 신선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곤충꼴’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하는 최근 현대차 디자인은 ‘자유분방한 표현’이라는 해외 디자인 흐름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장르나 디자인 표현 모두 비슷한 차급의 일본 브랜드 차들(특히 일본 내수용)과 견주어 보면 여전히 모험은 피하고 있는 느낌이다. 어렵긴 마찬가지인 해외 시장에서 유독 현대와 기아가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처럼 세계적인 흐름을 따르면서도 보수적 성향을 잃지 않은 것이 움츠러든 해외 소비자들의 심리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라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신선하고 재미있는 차들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이념보다 이익이 중요한 가치가 된 21세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이 만만치 않다. 지난날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마음은 시위 현장에 있었고, 파격적이지는 못해도 진보 성향의 인물이 대통령에 오른 것을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요구요 ‘절반의 승리’라 생각했던 필자는 보수를 무조건 나쁜 것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고인 물은 썩고,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도 그대로다. 하지만 보수는 제거되어야 할 ‘적’이 아니라, 진보와 함께 공존하며 발전의 그루터기가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진보가 보수에게서 배우고, 보수가 진보에게서 배워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이 가장 뜻 있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리라고 믿는다. 허상 같은 이상일 뿐이라고? 천만의 말씀. 지금껏 이야기했던 것처럼, 진보와 보수의 공존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요즘 국내 메이커 자동차 디자인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