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푸로산게 – 공기역학과 디자인, 실내외 특징

지난 9월 14일에 있었던 글로벌 공개에 이어, 페라리가 10월 21일에 우리나라에서 첫 4도어 4인승 4륜구동 모델인 푸로산게의 아시아 최초 공개 행사를 합니다. 글로벌 공개 전 페라리 본사를 방문해 들었던 설명과 자료를 바탕으로 기술적 특징을 살펴본 바 있는데요. 이번에는 다른 부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페라리는 푸로산게 공개와 함께 있었던 프레젠테이션에서 디자인과 공기역학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사실 요즘 페라리는 공기역학에 대한 고려와 디자인이 거의 합쳐져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공기역학에 신경을 씁니다. 특히 겉으로 드러난 차체의 요소들을 조절하는 식으로 액티브 에어로다이나믹스를 구현하기보다, 외부 요소들을 고정한 상태에서 최대한 공기흐름을 다운포스를 만드는 데 활용하는 방향으로 차체를 디자인하고 만들고 있죠. 물론 모델에 따라서는 차체 안으로 공기를 지나게 하면서 드러나지 않게 액티브 에어로다이내믹스 기술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엔초 페라리가 생전에 ‘공기역학은 엔진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다루는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합니다만, 페라리가 자체 풍동 시설을 갖춘 지 꽤 오래됐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푸로산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차체 요소 가운데 속도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설계(=디자인)는 서 있거나 달릴 때 모두 차의 고유한 디자인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죠. 대신 전에 없이 차체의 지상고가 높은 성격을 고려해, 고속 주행 때에도 충분한 주행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다운포스를 높일 수 있는 공기역학적 해법을 폭넓게 반영했습니다. 가장 성격이 비슷했던 전작인 GTC4루소의 최저지상고가 145mm였던데 비해, 푸로산게의 최저지상고는 185mm에 이르는 만큼, 차체 아래로 통과하는 공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 거죠. 페라리는 수백 시간의 풍동실험과 수천 회에 걸친 전산유체역학(CFD) 시뮬레이션을 통해 차체 디자인을 다듬었다고 합니다.

우선 클램셸 형태의 보닛 모서리에는 f12베를리네타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에어로브리지(aero-bridge)가 있습니다. 원래 f12베를리네타에서 에어로브리지는 보닛 위를 흐르는 공기 일부를 차체 옆으로 보내면서 앞차축 다운포스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도록 만들어졌는데요. 푸로산게에서는 항력을 줄이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높은 차체 앞부분 때문에 생기는 공기저항을 줄이는 방법으로 택했다는 거죠.

차체 앞쪽 공기 흐름을 처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음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앞바퀴 주변입니다. 상당히 많은 공기역학 요소가 디자인과 어우러져 있고, 차체가 공기를 잘 가르는 한편 차체가 떠오르지 않도록 공기흐름을 유도합니다.

우선 가로로 뻗은 주간주행등(DRL) 위아래로 모두 공기흡입구가 나 있는데요. 위쪽으로 흘러 들어간 공기(청록색 화살표)는 에어로브리지쪽으로 빠져나가고, 아래쪽으로 흘러 들어간 공기는 휠 하우스로 넘어가 브레이크를 식히는 데 쓰입니다. 범퍼 모서리에는 앞바퀴 주변 공기 흐름(빨간색 화살표)을 유도하는 에어 커튼을 위한 구멍이 나 있고, 휠 하우스 뒤쪽 아래에도 공기 통로가 있어 앞 펜더 아래쪽으로 공기(녹색 화살표)를 빼냅니다. 참고로 헤드램프는 DRL 아래쪽 범퍼 모서리에 있는 공기흡입구 위에 달려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은 바퀴 옆을 지나는 공기 흐름(파란색 화살표)을 유도하는 요소인데요. 이 요소들은 휠 때문에 생기는 불규칙한 공기 흐름을 정리하는 한편 휠 하우스 내부의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또 하나의 에어 커튼을 만드는 요소는 차체 앞쪽 모서리를 지난 공기를 처리해야 하는 앞쪽이 더 강조되어, 휠 아치 앞쪽과 뒤쪽에 모두 구멍이 뚫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부분이 그것입니다.

같은 요소가 뒷바퀴 주변에도 있는데요. 뒷바퀴 쪽에는 휠 아치 뒤에만 설치되어 있습니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기능은 같고요. 아울러 앞바퀴 주변처럼 뒤쪽 휠 하우스 뒤쪽 즉 뒤 범퍼 안쪽에도 휠 하우스 안의 공기를 빼내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는데요. 공기가 빠지는 구멍은 바깥쪽 테일램프 아래에 있는 움푹 파인 부분에 있습니다.

지붕 위를 지난 공기를 처리하는 데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테일게이트에 달린 뒤 유리 위에는 스포일러가 달려 있는데, 겉보기에는 매끈하지만, 안쪽에는 양쪽 끝에 와류를 만들어내는 와류 생성 요소(vortex generator)가 있습니다. 한쪽에 두 개씩 모두 네 개가 있는 와류 생성 요소는 스포일러를 지난 공기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어 스포일러의 효과를 높이는 한편 C 필러를 지난 공기가 뒤 유리 가운데 쪽으로 말려들어 오지 않게 뒷유리를 지나는 공기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도 합니다.

아울러 뒷유리에도 지붕 굴곡과 이어지는 굴곡(빨간색 화살표)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역시 공기 흐름을 유도하기 위한 해법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공기역학 요소가 어우러져 뒷유리 주변 공기 흐름을 조절하는 덕분에, 뒷유리에 와이퍼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네요. 물론 빨리 달릴 때 물이나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는 얘기지, 서 있거나 느린 속도로 달릴 때는 얘기가 다르겠죠. 참고로 뒤 유리는 굴곡이 있기는 해도 플렉시글라스 같은 플라스틱 소재가 아니라 자동차용 유리라고 합니다.

디퓨저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언뜻 보면 형태가 단순해서 무늬만 디퓨저가 아닌가싶기도 한데, 보기와는 다르게 복잡한 공기 통로가 있어 차체 아래쪽 공기를 뒤로 빼냅니다. 디퓨저 아래쪽으로도 공기가 흐르지만, 차체 색으로 칠한 범퍼 윗부분과 검은색으로 처리한 디퓨저 사이에 틈새가 있어, 그곳으로도 공기가 흘러 나오는 구조입니다. 아울러 머플러와 배기구 주변에도 공간이 있어 공기 흐름을 안정시키는 한편 뒤쪽에 설치된 트랜스액슬과 머플러 냉각에도 도움을 줍니다.

페라리 디자인을 책임지는 센트로 스틸레(Centro Stile) 책임자인 플라비오 만조니(Flavio Manzoni)와 팀원들도 공개행사 현장에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그들의 이야기에서 한편으로는 페라리 디자인의 특징을 새로운 장르와 결합한다는 과제를 해결하는 어려움과 고민을 느낄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르가 어떻든 페라리는 페라리’라는 생각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디자이너들이 푸로산게를 디자인하며 많이 고민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와 같은 고민 끝에 찾은 해법이 푸로산게인 셈이죠.

위 이미지는 차체 위쪽과 아래쪽을 분리해 편집한 건데요. 디자이너들이 푸로산게를 디자인하며 중요하게 생각한 ‘미적 영역과 기계적 영역의 분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단순 간결한 면을 매끈하고 풍부한 양감으로 표현하고 날카로운 속도감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배치한 차체 위쪽이 미적인 영역이라면,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많은 요소가 들어 있는 차체 아래쪽은 기계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의 차체에 대조적인 영역을 결합함으로써 차가 가진 특징을 나타내려고 했다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설명이었습니다. 특히 기계적 영역이 많이 드러나도록 디자인함으로써 일반적인 SUV들처럼 차가 껑충해 보이지 않는 효과를 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차체 길이가 5,000mm에 육박하고(4,973mm) 휠베이스가 3,000mm가 넘는데도 차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차체에서 기계적 영역을 넓힘으로써 미적 영역을 여전히 날렵한 모습으로 만든 것입니다. 아울러 앞 22인치, 뒤 23인치 크기의 휠도 차체가 높고 길다는 느낌을 상쇄하며 전체적인 비례에 영향을 주었죠. 그 덕분에 다른 럭셔리 및 스포츠 브랜드들의 SUV와는 다른 푸로산게만의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다른 요소들은 요즘 페라리가 만들고 있는 다른 모델들과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장르가 어떻든 페라리는 페라리’라는 생각으로 디자인했음을 느낄 수 있는 특징이죠. 앞모습은 가는 주간주행등을 비롯해 최신 모델인 296 GTB/GTS나 한정 모델인 데이토나 SP3와의 연관성을 느낄 수 있고요.

뒷모습에서 테일램프를 중심으로 296 GTB/GTS나 로마와의 연관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외부 디자인 책임자에게 ‘페라리 전통의 원형 램프 대신 사각형에 가까운 램프를 쓴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원형 램프는 페라리의 중요한 디자인 자산이고,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다. 그러나 최신 모델에서는 새로운 스타일의 테일램프를 일관되게 쓰기로 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다음 세대 모델에서는 그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주관적으로는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 더 멋져 보였습니다. 덩치가 크면서도 둔해 보이지 않고, 차체 위쪽에 스포츠카의 날렵함이 살아 있다면 아래쪽은 무게중심이 낮아 보이고 당당한 느낌을 줘서 상반된 분위기가 묘한 균형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외부도 외부지만 내부 디자인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스포츠카의 역동적 분위기보다는 차분한 분위기에 초점을 맞췄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교보다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간의 비중에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의 전반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대시보드는 이른바 ‘듀얼 콕핏(dual cockpit)’ 개념으로 디자인했습니다. 계기판을 중심으로 공기 배출구를 좌우에 배치한 구성을 운전석과 동반석에 똑같이 반영했죠. 물론 주행과 관련된 정보를 표시하는 계기판은 운전석 쪽이 더 큰 만큼, 대시보드도 완전한 좌우 대칭이 아니라 운전석 쪽이 조금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페라리의 다른 최신 모델들처럼 모든 인터페이스는 터치식이고, 기능 활성화 여부에 따라 조명을 켜고 끄는 것으로 각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기능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도어 트림이 매끈한데요. 파워 윈도 스위치는 센터 콘솔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센터 콘솔은 주요 장비가 전자화된 덕분에 플로팅 타입으로 되어 있어, 아래쪽에도 수납공간이 있습니다. 대시보드 아래에는 스마트폰 무선 충전장치도 있고요. 아울러 앞좌석 사이의 콘솔 박스도 크기가 예상보다 컸습니다.

실내 공간에서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앞좌석과 뒷좌석의 공간 비중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푸로산게에서 가장 중요하고 주목할 부분이기도 하죠.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좌석 크기와 디자인이 앞뒤가 거의 같죠. 디자인에서도 통일성 있게 표현한 덕분에, 푸로산게에서는 뒷좌석에 앉는다고 해서 홀대받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물론 뒷좌석 구조는 앞좌석과 살짝 다릅니다. 뒷좌석 등받이는 조절되는 부분 길이가 앞좌석보다 짧은 대신, 앉는 부분을 아래로 푹 파 놓아 거주성을 높였습니다. 앞좌석만큼은 아니지만, 뒷좌석 머리 공간도 충분하고, 살짝 답답하기는 해도 앞좌석 아래에 여유 공간이 있어 뒷좌석에 탄 사람이 발을 밀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공개된 사진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뒷좌석 공간 바닥에 차 길이 방향으로 솟아 있는 센터 터널도 아주 높지는 않습니다.

뒷좌석 사이에 있는 센터 콘솔은 앞좌석 사이에 있는 것보다 조금 작지만, 디자인은 거의 같습니다. 덮개 아래에 있는 수납공간도 마찬가지고요. 센터 콘솔 앞에 터치식 공기조절 패널과 파워 윈도우 스위치를 모아 놓은 것도 그렇습니다. 공기조절 기능과 열선 스위치를 모아 놓은 원형 터치패널도 대시보드 가운데에 있는 앞좌석용 터치패널과 통일감을 주는 요소입니다. 한편 좌석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전동 조절 스위치는 앉는 부분 바깥쪽 옆에 있습니다. 그것도 앞좌석과 비슷하죠.

종합적으로 보면 좌석별 공간 비중은 앞좌석과 뒷좌석이 6:4 정도 됩니다. FF나 GTC4루소가 7:3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많이 발전한 거죠. 게다가 추가된 뒤 도어가 코치 도어라는 점, 앞좌석보다 뒷좌석을 살짝 더 높게 설치한 이른바 극장식 좌석 배치를 택한 점, 뒷좌석을 위한 편의 기능을 대폭 늘린 점 등을 고려하면 푸로산게가 지금까지 페라리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뒷좌석 편의성을 담았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다만 플라비오 만조니 디자인 책임자에게 럭셔리 SUV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뒷좌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추가할 계획은 없느냐고 물어봤더니 단칼에 ‘없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페라리에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는 드라이빙이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한편, 천장은 탄소섬유 소재가 기본이고, 페라리 처음으로 투명도 조절이 가능한 일렉트로크로믹(electrochromic) 글라스 루프를 선택 사항으로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편의 기능이나 장비 중에는 ‘페라리 최초’인 것들이 더 있는데요. 기본 사항인 부메스터(Burmester®) 3D 하이엔드 서라운드 오디오 시스템,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이드 오토 연동 기능, 공기조절 시스템에 추가된 공기질 센서 등이 대표적입니다. 부메스터 오디오 시스템에 포함된 리본 트위터도 양산 차에는 처음 쓰인다고 하고요.

마지막으로, 페라리가 공개한 사진에는 트렁크에 관한 것이 없었는데요. 실제로 살펴보니 트렁크는 FF나 GTC4루소보다 수치상으로 더 크긴 하지만 차이를 뚜렷하게 느낄 정도로 크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뒷좌석 등받이를 앞으로 접어 넘길 수 있고 바닥 판 아래에 여유 공간이 있어, 최소한의 실용성은 고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요.

이제 막 데뷔했고,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해 구매자에게 인도되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 주문해도 2년 안에 받기는 어려운 차죠. 우리나라에 몇 대가 팔릴지 모르겠지만, 몇 년 뒤에 거리에서 볼 수 있다면 그날은 로또를 사도 좋겠습니다. 직접 소유하는 분들은 더 운이 좋은 분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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