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자동차가 오는 4분기 중 XM3 E-TECH 하이브리드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브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내놓는 저공해 하이브리드 동력계 모델인데요. 이미 유럽에 수출하고 있는 르노 아르카나(Arkana)를 통해 유럽 시장에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반응을 얻을 지 궁금해집니다.

특히 XM3 E-TECH 하이브리드에 올라갈 하이브리드 동력계는 기술 관점에서 보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있는데요. 두 차례에 나눠 순수 전기차가 시장에서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는 가운데 등장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의 의미와 르노 고유의 기술인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주목할 만한 기술적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4) F1 경주차 동력계와 르노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공통점
F1 경주차의 하이브리드 파워 유닛과 르노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기본적은 구성이 같습니다. 가솔린 기반 엔진에 변속기가 결합되어 있고, 두 개의 전기 모터와 한 개의 배터리 팩을 더해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갖추고 있죠.

물론 두 시스템의 구성요소와 기능은 차이가 있습니다. F1 경주차의 시스템은 엄격한 규정을 따르면서도 성능을 극대화하도록 만들어지고, 일반 승용차에 쓰이는 것을 전제로 만든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다양한 주행환경에서 배출가스를 줄이면서 효율도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는 현실성입니다. 가격 측면에서도 소비자들에게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야 하고, 그러려면 개발과 생산 비용 상승을 최대한 억제해야 하죠. 아울러 시스템을 배치했을 때 공간이나 무게 면에서 일반 내연기관 모델에 비해 손해보는 느낌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르노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그런 점을 고루 고려해 만들었다는 것은 시스템 구성을 살펴보면 좀 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5) 멀티모드 기어박스와 HSG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물리적 구성에 따라 직렬, 병렬, 직병렬로 나뉩니다.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그 중에서도 직병렬 방식에 해당합니다. 직병렬 방식 시스템을 쓰는 대표적 업체 중 하나로 토요타를 꼽을 수 있는데요. 동력을 활용하는 개념은 르노와 토요타가 비슷하지만, 그 과정은 무척 다릅니다. 토요타는 동력 분기 장치(PSD)라고 하는 플래니터리 기어 기반의 복잡한 시스템을 쓰지만, 르노는 멀티모드 기어박스라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변속기를 씁니다.

멀티모드 기어박스는 자동차 업계에서 전용 하이브리드 변속기(Dedicated Hybrid Transmission, DHT)라고 부르는 변속기의 일종인데요. 르노는 2014년에 선보인 이오랩(EOLAB) 콘셉트 카를 통해 독자적인 고효율 변속기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쓰인 멀티모드 기어박스는 그 개념을 이어받았고요.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멀티모드 기어박스는 1.6L 가솔린 엔진과 구동용 주 전기 모터 사이에 자리를 잡습니다. 변속기 내부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해 엔진과 전기 모터의 동력 연결과 해제가 이루어지면서 바퀴로 전달되는 동력을 제어하죠.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인 HSG(고전압 스타터 제너레이터)도 설치되는데, HSG에 관해서는 뒤에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멀티모드 기어박스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직병렬 방식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기어박스의 구성요소를 조절해 때로는 엔진만 이용해서 바퀴를 굴리고, 때로는 전기 모터만 이용해서 바퀴를 굴리는가 하면 두 동력원이 힘을 합쳐 바퀴를 굴리기도 하기 때문이죠. 즉 전기 모터만으로 달리는 경우에는 직렬식, 두 동력원이 힘을 합치는 경우에는 병렬식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특성이 나타납니다.
기술적으로는 F1 경주차에 쓰이는 도그 클러치 기어박스와 비슷합니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동력 전달을 제어하는 마찰식 클러치가 없고요. 기어는 엔진용으로 4단, 전기 모터용으로 2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단수의 기어가 항상 물려 있는 상태에서 필요에 따라 각 단에 해당하는 기어를 포크와 도그 클러치를 통해 연결하고 해제합니다. 그래서 기어 조합에 따라 엔진과 전기 모터의 동력을 선택해 바퀴로 전달할 수도 있고 함께 전달할 수도 있는 겁니다.

도그 클러치는 변속 속도가 빠르고 동력 손실이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대신 입력축과 기어의 회전수가 맞지 않으면 큰 충격과 소음이 나고 기어에도 무리가 갈 수 있는데요.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조금 독특합니다.
우선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에는 무조건 전기 모터의 힘만으로 차가 움직이고, 특정 출력 영역에 이를 때까지 그 상태가 유지됩니다. 저속 영역에서 배출가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변속 부담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을 주죠. 멀티모드 기어박스가 엔진용 4단, 전기 모터용 2단으로 구성되어 있어 모두 16가지 기어 조합이 가능하지만, 이런 작동 특성 때문에 실제 쓰이는 기어 조합은 15가지입니다.
그리고 주행 중 변속할 때에는 충격과 소음을 줄이기 위해 HSG를 사용하는 것이 특이합니다. 시스템은 엔진 회전수와 기어 작동 상태를 감지하고 변속할 시기가 되면 HSG를 전기 모터로 작동시켜서 기어의 회전수를 맞춰줍니다.
이런 기능은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스타터 제너레이터에는 없는 것인데요. 이런 작동이 가능한 것은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HSG가 230V라는 고전압으로 작동해 큰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 모터 특성상 빠르게 회전수를 맞출 수 있고, 부하가 걸리는 변속기의 기어 회전을 조절할 수 있을 만큼 힘도 세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물론 HSG는 엔진 시동을 걸 때 스타터 모터의 역할도 하고, 주행 상태에 따라서 주 동력원에 힘을 보태거나 감속 에너지를 회수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제너레이터 본연의 기능도 합니다. 그래서 기능적 관점에서 보면 F1 경주차 파워 유닛에서 두 가지 MGU가 하는 기능을 HSG가 모두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죠.
6) 시스템 최적화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쓰이는 엔진은 르노-닛산-미츠비시 얼라이언스 차들에 널리 쓰이는 4기통 1.6L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하이브리드 시스템 특성에 맞춰 손질한 것입니다. 최고출력은 94마력으로 같은 배기량의 다른 엔진들보다 낮은데요. 이는 연료소비를 최소화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든 결과입니다. 즉 전기 모터가 주 동력원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해 조율한 것이죠.

시스템 구성 요소로서 엔진과 관련한 또하나의 특이한 점은 가솔린 분진 필터(GPF)가 기본으로 설치된다는 점입니다. GPF는 질소산화물 배출이 많은 가솔린 직접분사 엔진에 다는 경우가 많은데요. 다중 간접분사(MPI) 방식을 쓰면서도 GPF를 단 이유는 엔진 작동 시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각종 배출가스 정화 기능은 엔진이 적정 온도에 올라야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마련인데요. E-TECH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전기 모터 사용 비율이 높은 만큼 엔진 작동 시간이 짧고, 그만큼 엔진이 정상 온도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배출가스 정화 기능 역시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수 있죠. 그런 상황에 대비해 GPF를 추가로 단 것입니다.

한편 르노가 e-엔진(e-engine)이라고 부르는 주 전기 모터는 최고출력이 36kW(약 49마력)이고요. HSG는 최대 15kW(약 20마력)의 출력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스템 총 출력은 최대 142마력에 이릅니다. 아울러 전기 모터는 1단 기어로 시속 75km, 2단 기어로 시속 160km의 속도 영역까지 커버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주행 상황에서 작동합니다. 주로 저속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비하면 전기 모터 작동 범위가 아주 넓죠.
고전압 리튬이온 배터리는 충전 전력량이 230V 1.2kWh(약 5.2Ah)로, 적재공간 아래에 설치됩니다. 용량 자체는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차들에 쓰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데요. 소형화한 덕분에 실내공간이나 적재공간을 희생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소형 배터리의 또다른 장점은 무게가 가볍다는 점인데요. 최적화된 설계의 하이브리드 동력계와 더불어 시스템 전반의 무게 증가를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사실 멀티모드 기어박스를 포함한 하이브리드 동력계 자체가 단순한 구조 덕분에 크기도 작고 가볍습니다. 그래서 내연기관에 전기 모터와 배터리를 비롯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추가되었는데도 동급 디젤 엔진 모델보다 무게가 50kg 정도밖에는 더 나가지 않습니다. 이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차의 승차감과 핸들링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죠.

이처럼 르노 E-TECH 하이브리드 기술은 르노의 F1 경험과 노하우가 양산차 개발 노하우에 어우러진 결과물입니다. 무엇보다도 합리적인 구성과 접근 가능한 가격대에 효율적인 시스템을 얹은 제품이라는 점이 가장 돋보입니다. XM3 E-TECH 하이브리드를 통해 우리나라 도로 환경을 처음 접하게 되는 이 기술이 실제로 어떤 성능과 효율을 낼 수 있을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