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페라리 첫 SUV, 푸로산게 핵심 기술 살펴보기

페라리는 우리시간으로 2022년 9월 14일, 현지시간으로 9월 13일에 새 모델인 푸로산게를 공개했습니다. 페라리 역사상 첫 4도어 모델이면서 처음으로 SUV 개념을 담은 모델이어서 출시 전부터 관심이 집중되었죠. 저는 미디어 자격으로 페라리 본사의 공식 초청을 받아, 그보다 며칠 앞서 이탈리아 마라넬로의 페라리 본사에서 실물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공식 모델 명칭은 푸로산게(Purosangue)입니다. 이탈리아 현지에 가서 들은 현지인들의 발음으로는 ‘푸로쌍궤’에 가까왔지만, 우리말 공식 명칭은 ‘푸로산게’로 정해졌습니다. 푸로산게는 순종(純種), 종마(種馬)를 뜻하는 이탈리아말입니다.

아울러 페라리는 공식적으로 개발명을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내부 개발 코드는 F175인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다른 모델들의 개발 코드는 로마가 F169, 296이 F171, SF90 스트라달레가 F173이었습니다.

조금 부드럽고 가벼운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매체를 통해 나갈 예정이어서, 이번에는 엔진, 변속기 및 구동계, 보디, 섀시를 중심으로 조금 딱딱한 기술 중심의 얘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엔진

사전에 어느 정도 정보가 알려졌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지만, 푸로산게의 심장은 ‘새삼스럽게도’ V12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입니다. 이를 두고 미디어 공개 행사에서 한 외국 기자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개념의 차에 가장 고전적인 동력계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요. 페라리측에서 배경 설명을 자세하게 하긴 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죠. 

그럼에도 굳이 V12 엔진을 쓴 것은 푸로산게의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SF90 스트라달레나 296에서도 볼 수 있듯, 페라리는 단계적으로 전동화 솔루션을 내놓고 있고 2025년에 선보일 첫 순수 전기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SUV 성격의 이질적 차를 역사상 처음으로 내놓으면서, ‘그럼에도 푸로산게는 페라리 혈통의 스포츠카’임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라리는 푸로산게의 V12 엔진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엔진 형식명은 F140 IA로 2002년에 선보인 엔초부터 써온 F140 엔진의 최신 버전입니다. 65˚인 실린더 뱅크각, 6.496cc인 배기량이나 94mm인 보어, 78mm인 스트로크 등 수치를 보면 현행 812 슈퍼패스트/GTS/콤페티치오네 등에 쓰이는 F140 G/H 버전의 발전형인 것을 알 수 있고요. 

형식명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기본 실린더 블록 구조 말고 손댈 수 있는 부분은 거의 모두 손질했으니 페라리가 새 엔진이라고 주장할 만은 합니다. 새 엔진은 성능과 효율, 응답성 등을 개선하면서 페라리 V12 엔진 특유의 소리를 잘 살렸다는 것이 페라리의 주장입니다. 

최고출력은 7,750rpm에서 725마력, 최대토크는 6,250rpm에서 73.06kg・m(716Nm)이어서, 숫자만 놓고 보면 성능 최대치를 내는 회전 영역은 여전히 높아 보입니다. 그러나 2인승 GT들에 쓰인 F140 G/H 버전에 비하면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나오는 회전 영역은 뚜렷하게 더 낮습니다. 엔진 최대 회전수가 8,250rpm인 점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FF나 GTC4루소에 쓰인 6.3L 버전처럼 상대적으로 낮은 회전 영역에서 높은 토크를 비교적 고르게 내도록 조율했습니다. 페라리는 최대토크의 80%를 2,100rpm부터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이와 같은 엔진 성능 수치는 GTC4루소에 올라간 6.3L F140 ED 버전보다 최고출력은 35마력, 최대토크는 1.63kg・m(16Nm) 높은 것입니다. 다만 최대토크의 80%를 내기 시작하는 회전영역은 GTC4루소의 1,750rpm보다는 조금 높아졌네요.

812 컴페티치오네에 쓰인 것을 활용한 실린더 헤드, 완전히 새로 설계한 흡기 및 배기, 밸브 타이밍 시스템, 스트로크를 늘리기 위해 조정하고 내부 오일 통로를 재설계한 크랭크샤프트, 재설계한 냉각 및 오일 계통, 가공 정밀도를 높여 마찰을 줄인 캠샤프트, 크라운 부분을 새로 설계한 전용 피스톤 등 물리적인 부분들을 세부적으로 개선했고요.

F1 노하우를 반영한 캘리브레이션을 통해 기계 및 연소 효율도 개선했다고 합니다. 직접 연료분사 시스템은 350바 연료펌프 두 개로 인젝터에 연료를 공급하고, 연료탱크에 설치된 옥탄가를 인식해 ECU가 미리 연소를 최적화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점화 시스템은 회전 영역에 따라 단일 또는 다중 점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아울러 ECU에는 이온화 전류를 측정하는 이온 감지 시스템(ion-sensing)이 있어, 점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감지하고 점화 시기를 제어하는 데 활용합니다.


변속기 및 구동계

새차 공개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상대적으로 설명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주목한 것 중 하나는 8단 듀얼클러치 변속기(DCT)입니다. 8단 DCT는 트랜스액슬 방식으로 뒤 차축과 바로 연결되는데요. 배치 자체는 GTC4루소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기어를 한 단 늘린 것 외에도 크기를 많이 줄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어비를 포함해 주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SF90 스트라달레 및 296에 쓰이는 것과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오일배스(oil-bath)를 결합한 습식 듀얼클러치 방식으로, 드라이섬프(dry-sump) 강제 윤활 구조를 쓰고 클러치 어셈블리 크기를 줄여서 설치 높이가 15mm 낮아지는 한편 무게중심도  그만큼 더 낮아졌다고 합니다. 토크한계 성능도 35% 높아져, 변속 중 최대 1,200Nm(122.45kg・m)의 토크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변속에 쓰이는 유압 장치도 개선해 변속 시간도 FF나 GTC4루소의 7단 DCT보다 짧아졌고요. 8단 기어를 추가하면서 기어비 구성도 재조정해, 전반적인 기어비 간격을 좁히면서 윗단으로 갈수록 간격이 점진적으로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8단 기어비는 이전 7단 때보다 길어져, 고속 정속 주행 때 연비를 높이는 효과가 더 커졌습니다. 변속 속도를 높이면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시험과 조율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다만 연비 향상을 위해 엔진에 부하가 적게 걸릴 때 엔진과 변속기의 연결을 자동으로 해제하는 세일링(sailing, 다른 메이커에서는 코스팅 기능이라고도 함) 기능을 강화했다고 합니다.

앞 차축으로 동력을 전달하는 PTU(Power Take-off Unit)는 이전 시스템들과 마찬가지로 트랜스퍼 케이스 없이 엔진에서 바로 동력을 뽑아내는 방식인데, 기어 구성과 제어 로직을 개선했다고 하네요.

앞 차축 뒤쪽에 엔진을 놓은 프론트 미드십 동력계 배치와 트랜스액슬 방식 구동계로 무게 배분을 고르게 만들고, 차체 여러 곳에서 무게를 덜어내고 조정한 덕분에 앞뒤 무게배분 비율은 49:51이 되어 GTC4루소의 47:53보다 더 균형을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페라리 역대 모델 가운데 처음으로 내리막 속도 제어(Hill Descent Control, HDC) 기능이 추가된 것도 흥미롭습니다.


보디

푸로산게의 차체 크기는 길이 4,973mm, 너비 2,028mm, 높이 1,589mm에 휠베이스는 3,018mm, 앞뒤 트랙은 각각 1,737mm, 1,720mm입니다. 이전 세대 4인승 모델인 GTC4루소보다 길이는 51mm, 너비는 48mm, 높이는 206mm 크고 휠베이스는 28mm 깁니다. 트랙은 앞뒤 각각 63mm, 52mm 더 넓고요.

건조중량은 2,033kg으로 GTC4루소보다 243kg 무거운데, 페라리는 이전 세대 4인승 모델보다 섀시 자체는 더 가볍다고 합니다. 아마도 보닛과 해치, 도어 등을 제외한 차체 구조 자체 무게를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도어가 두 개 늘어났으니 그것만 떼어내도 무게가 상당히 줄어들겠죠.

공식 발표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중 하나는 페라리 역사상 처음으로 ‘자살문(suicide door)’이라고도 불리는 코치 도어(coach door)를 달았다는 점입니다. 앞 도어 경첩은 앞쪽에, 뒤 도어 경첩은 뒤쪽에 달려 앞뒤 도어가 서로 마주보고 열리는 구조죠. 승하차 편의성을 고려한 선택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보니 뒤 도어가 열리는 각도가 상당히 큽니다. 보도자료에는 79˚라고 나와 있습니다. 앞 도어도 다른 모델들보다 5˚ 큰 63˚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뒤 도어에서 주목할 또 한 가지 사실은 전동 개폐 기능이 있다는 점입니다. 외부 개폐 스위치는 B 필러  아래쪽에 살짝 솟아 있는데요. 한 번 살짝 당기면 조금만 열리고, 조금 길게 당기면 크게 열립니다. 완전히 다 열려면 손으로 당겨야 하고요. 전동식으로 작동하는 만큼 고스트 도어 클로징 기능(도어가 살짝 덜 닫힌 상태에서 자동으로 완전히 닫는 기능)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편 경량화하긴 했지만 덩치와 무게가 제법 있는 뒤 도어를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도록, 한 개뿐인 뒤 도어 경첩은 고정부를 주조 알루미늄 부품으로, 가동부를 열간성형(핫 스탬핑) 강재를 써서 만들었습니다.

코치 도어를 쓴 차들 가운데에는 B 필러가 없는 것들도 있는데, 푸로산게는 B 필러가 있습니다. 이는 구조강성을 높이기 위한, 어찌보면 스포츠카에서는 당연한 설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프레임 구조의 하체 전체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반면, 상체는 다양한 소재를 적재적소에 썼는데요. B 필러 보강재와 충격 보호용 바 등에는 고강도 강재를 썼고, 섀시 구조에는 폐단면 압출 성형, 중공 주조, 주조, 판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든 알루미늄 합금 소재를 두루 썼습니다. 

참고로 최저지상고는 185mm, 적재공간 크기와 연료탱크 용량은 GTC4루소보다 각각 23L, 9L 커진 473L, 100L입니다.


섀시

푸로산게의 서스펜션에는 세계 최초 기술이 들어갔습니다. 캐나다 멀티매틱(Multimatic)이 개발한 TASV(True Active Spool Valve) 시스템을 활용한 페라리 액티브 서스펜션 테크놀로지(Ferrari Active Suspension Technology)가 그것인데요. 서스펜션 기술의 머리글자인 ‘FAST’에서도 알 수 있듯 액티브 서스펜션의 반응 및 제어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입니다.

FAST는 GTC4 루쏘 등 이전 모델에 썼던 전자기식(electromagnetic) 댐퍼 대신 일반적인 유압 댐퍼를 쓰면서, 댐퍼 작동 제어에 TASV의 48V 모터 액추에이터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시스템은 일반적인 스프링과 유압 댐퍼 구조를 활용하면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댐핑 작동 제어가 가능하고, 제어장치가 작고 가볍기 때문에 무게중심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구조를 자세히 보면, 댐퍼 피스톤 로드를 리서큘레이팅 볼 타입 스크류(나사)로 만들고, 댐퍼 옆에 달린 48V 3상 브러시리스 모터와 댐퍼의 나사를 기어박스로 연결했습니다. 네 바퀴에 연결된 서스펜션은 모두 개별 제어가 가능하고, 주행 제어 시스템이 댐핑 특성을 조절해야겠다고 판단하면 필요한 만큼 48V 모터가 회전해 빠르게 댐핑 특성을 조절합니다. 특히 제어용 모터는 작은 크기로 큰 힘을 낼 수 있는 슬롯리스 고정자 권선 기술(slotless stator winding technology, 모터 고정자의 권선을 빈틈없이 감아 회전자가 끊임없이 회전하게 만드는 기술. 회전속도 변화도 일반 모터보다 빠르다)을 써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페라리 고유의 전자식 주행 제어 시스템인 SSC(Side Slip Control)은 296과 마찬가지로 최신 버전인 8.0이 쓰입니다. SSC 8.0은 6방향 섀시 다이내믹 센서(6w-CDS), 각 서스펜션에 설치된 가속도계와 위치 센서의 정보들을 취합해 차의 움직임을 예측 및 파악해서 서스펜션을 능동적으로 개별제어해 코너링과 핸들링 특성을 최적화합니다.

아울러 서스펜션 구조도 지상고가 높아진 것을 고려해 조정했습니다. 이른바 세미버추얼(semi-virtual) 하이 위시본 서스펜션인데요. 이 서스펜션은 아래쪽 위시본과 허브 캐리어의 부착점이 두 개입니다. 두 개의 서스펜션 암에 의해 생기는 가상의 아래쪽 킹핀 부착점이 휠 센터와 아주 가깝기 때문에, 스크럽 반경 즉 킹핀 축의 연장선과 지면의 타이어 접지면 중심이 교차하는 지점 사이의 거리가 크게 줄어듭니다. 이는 비포장 도로 등 불규칙한 노면이 스티어링에 영향을 주는 것을 줄여준다고 하네요.

그밖에 주행 관련 제어 소프트웨어는 페라리의 다른 스포츠카에 쓰인 것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브레이크에 적용된 ABS 에보(ABS evo)와 전자식 브레이크(브레이크 바이 와이어), EPS 기반 접지력 추정 시스템은 296 GTB의 것을 활용하면서 눈길이나 비포장 도로 등 접지력이 낮은 노면에 알맞게 조율했다고 합니다. 네바퀴 구동 및 조향 시스템은 4RM-S 에보(4RM-S evo)로 한층 더 발전했는데요. 제어 로직에는 SF90 스트라달레의 4WD 시스템의 것을, 4WS 시스템은 812 콤페티치오네의 독립 조향 기능을 반영했다고 합니다.


성능

공식 발표 기준으로 최고속도는 시속 310km 이상, 시속 100km 정지가속 시간은 3.3초, 시속 200km 정지가속 시간은 10.6초입니다. 최고속도는 GTC4루소보다 시속 25km 이상 낮지만, 시속 100km 정지가속 시간은 0.1초 짧고 시속 200km 정지가속 시간은 0.1초 깁니다. 한편 시속 100km 정지제동 거리는 32.8m, 시속 200km 정지제동 거리는 129m로 GTC4루소보다 각각 1.2m, 9m 짧고요.


가격, 인도 시기 등

새차 공개 행사에서 엔리코 갈리에라 페라리 CCMO는 푸로산게의 가격이 이탈리아 기준으로 39만 유로(우리돈으로 약 5억 4,290만 원)부터 시작하고, 구매자에게 처음 인도되는 시기는 2023년 2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행사 시점까지 푸로산게의 사전 주문량이 2,000대가 넘는데, 차에 관한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그와 같은 주문이 들어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한편, 페라리는 푸로산게를 전체 생산량의 20%가 넘지 않도록 관리할 예정이라고도 밝혔습니다. 페라리의 연간 판매량은 2018년 9,251대, 2019년 1만 131대, 2020년 9,119대, 2021년 1만 1,115대를 기록하며 꾸준히 늘고 있는데요, 계산대로라면 페라리는 푸로산게 1년치 주문을 이미 받아놓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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