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2010년 5월호 BMW 5 시리즈 경쟁 모델 비교 특집 기사에 포함된 글입니다. ]

이번 시승의 벤치마크가 BMW 528i라는 이야기를 듣고, 언뜻 볼보 S80 T6을 ‘약자’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입견이다. BMW 5시리즈를 사려는 사람이 비교대상에 올려놓는 차라면 응당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 아우디 A6 정도를 꼽지 않겠냐는 지레짐작 말이다. BMW 5시리즈를 비롯한 독일 럭셔리 브랜드의 중형 세단의 대안으로 대뜸 볼보 S80을 떠올리는 이는 정말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동안 볼보 S80의 판매대수는 이들 가운데 어느 한 모델과도 비교하기 어려웠다. 늘 그랬기 때문에 필자의 선입견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전 세대 5시리즈의 전력을 생각하면 528i는 새 5시리즈 라인업에서 가장 대중적인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T6에 한정하지 않고 볼보 S80이라는 모델 자체를 ‘약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예상대로 528i가 새 5시리즈 가운데, 나아가 수입차 가운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이유는 국내 수입차 소비자들의 보편적인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특징들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일까? 볼보 S80 T6이 ‘약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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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볼보가 ‘안전’ 빼놓으면 내세울 것이 별로 없었던 것과 달리, 지금의 볼보는 일반적 기준의 능동적 및 수동적 안전개념은 기본으로 깔아 놓았다. 예를 들어 여러 충돌 테스트에서 별 5개 최고등급 점수를 얻은 탄탄한 뼈대, 실내 곳곳에 빈틈없이 숨겨져 있는 에어백, 브레이크에 엔진 출력까지 조절해 주행안정성을 높이는 전자제어 주행안정장치(DSTC), 흐트러짐 없는 핸들링 같은 것들이 좋은 예다. 유해가스 배출이 적은 친환경 내장재, 감각적 피로를 덜어주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계기와 장비배치 등은 볼보가 좋은 선례를 만든 영역이기도 하다.

여기에 볼보는 남들과는 다른 안전설계와 장비들을 덤으로 넣어 주는데, S80 라인업 최상위 모델이나 다름없는(V8 AWD는 상징적인 최상위 모델로 보는 것이 좋다) S80 T6도 예외는 아니다. 덤이라는 표현이 혹자에게는 ‘별 볼일 없으니 뭐라도 하나 더 끼워 주는 것 아니냐’며 볼보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단초를 만들어 주겠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볼보가 주는 덤은 넉넉한 인심의 표현이고,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스칸디나비아식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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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T6 정도가 되면 S80의 값도 만만치 않다. 벤치마크가 된 BMW 528i보다도 100만 원 더 높은(6,890만 원) 가격표가 붙어 있다. 따져 보면 528i에는 있으면서 S80 T6에는 없는 장비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S80 T6을 흠잡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S80 T6에는 있지만 528i, 나아가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수입차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비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운전자의 주의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돕는 DAC, 차선이탈 경고장치(LDWS), 레이더 방식 지능형 크루즈 컨트롤(ACC) 같은 장비들이 그렇다. 성능 이외의 부분들만 놓고 보면 1,000만 원 이상 비싼 가격표가 붙은 독일산 럭셔리 세단들이 부럽지 않은 면모도 엿보인다.

볼보의 덤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앞바퀴굴림 바탕의 AWD 구동계를 갖추고 있어 뒷좌석 공간의 답답함은 뒷바퀴굴림 구동계를 고집하는 동급 독일차보다 훨씬 덜하다. 특히 뒷좌석 머리 위 공간은 절묘한 등받이 각도에 힘입어 아우디 A6을 민망하게 만든다. 부담스럽지 않은 쿠션과 편안한 곡선의 시트는 메르세데스-벤츠를 무색케 하고, 독일 차에 S80 T6처럼 뒷좌석을 위한 오디오 조절장치와 3단 조절 열선 기능을 갖추려면 수천 만 원은 더 지출해야 한다. V8 AWD 모델에 달리는 다인오디오 스피커 시스템에 비하면 T6의 ‘하이 퍼포먼스’ 오디오는 조금 밋밋한 소리를 내지만, 그렇다고 비교할 만한 다른 차들이 대단한 오디오를 갖춘 것은 아니다. S80 T6가 물리적으로 ‘절대적 열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의외로 작은 트렁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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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T6는 S80 라인업 가운데 동적인 일관성과 균형감각이 가장 뛰어나다. 물론 그것은 뒷바퀴굴림 구동계를 갖춘 차들과는 다른, 볼보 방식의 스포티함이다. S80 T6의 가로배치 직렬 6기통 엔진은 보어에 비해 스트로크가 꽤 긴 롱 스트로크형. 여기에 저회전 토크와 응답성을 고려해 트윈 스크롤 터보를 더했다. 이렇게 해서 무거워진 머리와 약간 높게 느껴지는 무게중심이 자칫 핸들링을 둔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전자식 클러치를 이용한 AWD에 세 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포-씨(Four-C) 전자제어 서스펜션까지 가세해 핸들링이 둔해지려는 기색을 빠르게 상쇄한다.

40.8kgm의 최대토크도 상당히 넓은 범위(1,500~4,800rpm)에서 고르게 발휘되어 스트레스 없이 가속할 수 있고, 액셀러레이터 조작으로 충분히 차체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다. 그 결과로 가속감은 폭발적이지 않은 범위 내에서 상당히 빠르고, 핸들링은 자극적이지 않은 범위 내에서 충분히 날카룝다. 스티어링은 지나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고속 주행 때에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다. 심리적인 가속감과 핸들링 밸런스는 넉넉한 배기량에 비해 가속반응이 끈끈하게 느껴지는 S80 V8 AWD보다 더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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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속 패들도 없고, 별도의 스포트 모드도 없고, 스포티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 6단 기어트로닉 자동변속기도 애정을 갖고 받아들이면 장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끊김 없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변속 – 아마도 이것을 위해 변속타이밍을 늘어지듯 세팅한 듯 – 이 매력적이고, 수동 모드에 놓았을 때 기어 레버의 움직임도 나름 절도가 있다. 이런 것이 볼보 스타일에 더 잘 어울린다. 알찬 변속감이 일품인 독일 차, 특히 BMW처럼 변속기를 세팅했다면 오히려 ‘볼보답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제 오늘의 결론이다. 당신이 BMW 환자, 즉 ‘B당‘ 사람이 아니라면 꼭 528i를 사야만 하는 이유를 먼저 꼽아보라. 그리고 그 이유의 반대되는 항목들이 S80 T6를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인지 생각해 보라. 그러다 보면, S80 T6이 직접적인 비교열위에 놓이는 것이 별로 없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S80 T6은 다소 밋밋할 수 있는 S80에 요즘 볼보 차의 매력을 가장 맛깔스럽게 구현해 놓은 차다. 볼보의 캐릭터가 ‘저먼 럭셔리’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관념의 영역이 비좁아서 벌어지는 일이다.

독일산 럭셔리 카들이 그들만의 개성을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면, 볼보 S80 T6 역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볼보만의 개성을 차의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에 모두 일관되게 구현하고 있다. 오히려 보편성은 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개성은 보편적이지 않은 차들보다 현실적인 가치는 더 높다. 간단히 말해, S80 T6는 BMW 528i와의 비교에 있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브랜드와 모델이 가진 개성으로 당당하게 선택받을 수 있는 ‘강자’의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