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6월 Carmily에 기고한 글에서 발췌한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

스포츠카와 모터스포츠는 불가분의 관계다. 자동차의 성능을 한계점까지 몰아붙이는 모터스포츠에서의 경험은 일반 도로에서 빼어난 성능을 발휘하는 스포츠카의 개발에 필수적인 밑거름이다. 이런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온 여러 독일 스포츠카들의 탁월한 성능 뒤에는 아우토반뿐 아니라 뿌리 깊은 모터스포츠에의 도전이 있다.

1930년대 독일의 정권을 잡은 나치당은 독일 국민, 특히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나치가 선전활동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했던 스포츠 가운데에는 당시로는 첨단 스포츠였던 모터스포츠도 있었다. 모터스포츠를 국가 대항전의 성격으로 만들어, 일종의 대리전을 수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른 유럽 국가 메이커 차들과의 경쟁도 팽팽했지만, 독일 내 메이커들 사이에서도 불꽃 튀기는 성능 경쟁이 벌어졌다.

경주에서 이길 수 있는 더 빠르고 더 잘 달리는 경주차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기술개발은 독일의 자동차 기술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물론 오래지 않아 터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모터스포츠는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날 때까지 긴 암흑기에 들어갔지만, 전쟁 전에 쌓인 기술력이 한 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패전 이후에 닥친 경제난과 동서독 분단을 경험한 독일인들에게 모터스포츠는 몇 되지 않는 즐거움이자 삶의 원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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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발전했던 모터스포츠로 기술축적의 수혜를 입은 독일 메이커 가운데에는 다임러-벤츠(이하 벤츠)도 있었다. 벤츠 역시 전후의 모터스포츠 중흥기를 놓칠 수 없어, 전쟁 중 피해를 복구해 나가면서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다만 아직까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전쟁 전에 완성한 엔진과 설계기술을 바탕으로 경주차를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이즈음의 벤츠 엔진이 대단히 뛰어난 성능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벤츠의 섀시 설계자인 루돌프 울렌하우트는 차의 무게를 줄이는 해법을 찾아, 가는 파이프를 입체적으로 용접해 만드는 ‘스페이스 프레임’ 구조를 쓰기로 결정했다. 이태리에서 ‘수퍼레제라(초경량이라는 뜻)’라고 부르는 이런 형태는 튼튼하면서도 가볍게 만들 수 있어 20세기 중반 경주차에 많이 쓰였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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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메르세데스-벤츠 300 SL이었다. 1952년 처음 만들어진 이 차는 유럽 곳곳에서 펼쳐진 장거리 경주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었다. 데뷔 첫 해 스위스에서 열린 베른 그랑프리에서 1, 2, 3위를 독식한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의 르망 24시간에서 1, 2위를 차지했고, 독일 뉘르부르크링 경주에서도 시상대를 모두 차지했다. 300 SL의 승전보는 대서양을 넘어서도 이어져, 멕시코의 카레라 파나메리카 경주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메르세데스-벤츠의 명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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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SL로 벤츠의 입지가 든든해지자, 미국의 벤츠 수입상이었던 맥시밀리언 호프만은 벤츠에게 300 SL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카의 양산을 제안했다. 원래 경주차로 만들어진 300 SL을 양산할 생각이 없었던 벤츠는 그의 제안을 받고 주저했지만, 그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300 SL의 설계를 바탕으로 한 일반 도로용 스포츠카를 만들게 되었다. 양산 모델이 첫 선을 보인 것은 1954년 2월, 미국에서 열린 뉴욕 모터쇼였다. 벤츠 이사회가 양산을 승인한 뒤 채 6개월도 흐르지 않았을 때였다. 모터쇼에 등장한 300 SL 쿠페는 여러 면에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은 프리들리히 가이거가 빚어낸 독특하고 멋진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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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위로 들어 올려 여는 방식의 도어는 양쪽 도어를 모두 열었을 때 마치 갈매기 날개와 같은 독특한 형상을 만들어, ‘걸 윙 도어(gull-wing door)’라는 별명을 얻었다. 300 SL을 바탕으로 만든 300 SLR 경주차에서도 쓰였던 이 도어는 원래 구조적 한계가 만들어낸 궁여지책이었다. 스페이스 프레임 섀시는 특성상 섀시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차체 옆쪽을 크게 보강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형태의 도어를 달 수 없었다. 처음 경주차로 설계했을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일반인들이 타는 스포츠카에서는 차에 오르내리는 데 방해가 되는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했다. 큰 비용을 들여 섀시를 바꾸지 않고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도어가 300 SL을 자동차 디자인의 걸작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300 SL에 처음 쓰인 걸 윙 도어는 이후 자동차 디자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선구적인 디자인에 힘입어 1999년 ‘세기의 자동차’ 선정 때 300 SL을 ‘세기의 스포츠카’ 자리에 오르게 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