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간 CEO 2010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흔히 럭셔리 또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승용차라고 하면 큰 차체와 넉넉한 실내 공간, 크롬 도금 장식이 곳곳을 수놓은 보디와 가죽과 나무의 향연이 펼쳐지는 실내를 떠올리게 된다. 흔히 메르세데스 벤츠 S 클래스나 BMW 7 시리즈, 재규어 XJ와 렉서스 LS 등 대형 세단이 이런 장르의 차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점점 다양해지는 소비자들의 취향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요구한다. 고급스러운 것은 좋지만 큰 덩치는 부담스러운 사람들, 굳이 기사에게 운전을 맡기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브랜드의 차가 갖는 느낌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단 한 명의 소비자도 놓치기 싫은 자동차 메이커들은 최근 이러한 틈새시장을 노린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자동차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프리미엄 컴팩트카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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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컴팩트카라는 새로운 유행을 이끌기 시작한 것은 BMW로, 1994년에 로버를 인수했다가 2000년에 재매각하면서 미니만 남겨두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BMW는 낡은 초소형차에 불과했던 미니를 BMW의 기술력을 접목시켜 달리기 성능을 높이고 다양한 맞춤형 선택장비들을 마련한 새로운 개념의 차로 탈바꿈시켰다. 찻값은 과거 미니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올랐지만, 젊은 소비자들은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미니에 열광했다. 이렇게 해서 미니는 21세기에 걸맞은 패션 아이콘으로 프리미엄 컴팩트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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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컴팩트카 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오래 전의 일이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스위스 시계 브랜드인 스와치와 손잡고 2인승 초소형차인 스마트 브랜드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스마트가 발을 빼고 메르세데스-벤츠가 독자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에 들어가면서 스마트는 개념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게 된다. 결국 지속적인 적자로 확장정책을 포기한 스마트는 현재 한 가지 모델만 만들어지고 있는 실패한 브랜드 취급을 받고 있다. 

스마트의 이런 시행착오는 여러 프리미엄 브랜드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미니의 성공 역시 스마트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미니는 철저하게 목표로 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잘 반영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입지를 다졌고, 해치백 모델의 성공에 힘입어 컨버터블이 뒤를 이었고, 실내와 짐 공간이 부족한 미니 해치백의 단점을 보완한 클럽맨과 네바퀴굴림 SUV의 특성을 접목한 컨트리맨 등 가지치기 모델을 출시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앞으로도 미니는 지금보다 가지치기 모델을 확대하여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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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레트로 디자인과 함께 소비자의 개성을 다양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폭넓은 선택장비 구성으로 미니가 성공을 거두자 다른 브랜드들도 비슷한 성격의 차들을 구상했고, 피아트가 500으로 주목받는 등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미니의 뒤를 이을 성격의 차를 내놓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올해 아우디가 선보인 A1이 그 대표적인 예다. A1은 처음부터 미니를 경쟁 대상에 올려놓고 개발이 시작되어, 목표 고객이나 상품 구성에서 미니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다만 미니가 고전적인 스타일을 내세운 것과 달리 아우디 A1은 아우디 특유의 현대적인 스타일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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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A1이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앞서, 조금 더 충격적인 새 모델이 등장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럭셔리 스포츠 브랜드로 이름난 애스턴 마틴이 도시형 소형차인 시그넷을 내놓은 것이다. 시그넷은 처음부터 애스턴 마틴이 개발한 차가 아니고, 도요타가 유럽 시장을 위한 전략 모델로 선보인 아이큐(iQ)를 애스턴 마틴 스타일로 꾸민 차다. 시그넷은 애스턴 마틴 브랜드 역사상 가장 작은 차이면서 다른 메이커가 생산해 애스턴 마틴 브랜드로 파는 첫 차이기도 하다. 

시그넷의 내용물은 도요타 아이큐와 다를 바 없지만 차체의 디자인 요소들과 함께 실내의 고급스러운 꾸밈새는 애스턴 마틴 스타일 그대로다. 또한 이미 애스턴 마틴 차를 갖고 있는 고객들에게 우선 판매하고, 개별 판매는 차후에 고려하겠다는 아이디어도 흥미롭다. 애스턴 마틴의 이런 시도에 자극을 받은 다른 소량 생산 럭셔리 브랜드들 가운데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모델을 추가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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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럭셔리 브랜드들 가운데 비교적 신생 축에 끼는 렉서스도 모델 소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BMW나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와 애스턴 마틴처럼 도시형차 수준까지 스펙트럼을 넓히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유럽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기울이고 있다. 최근 렉서스가 선보여 올해 말부터 유럽 판매를 시작하는 CT 200h는 렉서스가 처음 시도하는 해치백 모델이다. 그동안 다양한 정통 세단과 SUV로 북미 시장에서 입지를 다진 렉서스이지만, 유럽 시장에서는 판매가 그리 신통치 않은데다가 일본 출신의 경쟁자인 인피니티가 같은 유럽 시장에서 비교적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렉서스 CT 200h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역시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C 세그먼트 시장에 렉서스의 모태인 도요타가 자랑하는 하이브리드 구동 시스템을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해치백에 얹어 내놓는다는 점이다. 유럽에서는 효율이 높아 경제적인 디젤 엔진 차의 인기가 높은데, 소형 승용차용 디젤 엔진의 경쟁력이 뛰어나지 않은 도요타와 렉서스는 자신들의 장기인 하이브리드를 이 차에 얹어 디젤 엔진 못지않은 경제성과 첨단 기술 이미지를 유럽 소비자들에게 심어줄 계획이다. 유럽에 기반을 갖고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 가운데에는 해치백 모델이 없거나 적극적으로 하이브리드 기술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하지 않는 곳들도 있기 때문에 렉서스 CT 200h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