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메르세데스-벤츠 ML 300 CDI 그랜드 에디션

[ 모터매거진 2011년 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2005년에 데뷔한 메르세데스-벤츠의 2세대 M 클래스(W164)는 많은 면에서 이전 세대와 뚜렷하게 구분될 정도로 발전했다. 무엇보다 프레임 위에 보디를 얹었던 구형의 틀을 벗어버리고 모노코크 차체를 쓰면서 성격 변화가 뚜렷해졌다. 차체를 키우기도 했지만 실내 공간 활용도가 높아졌고, 핸들링은 한층 탄탄해졌다. 오프로더의 성격을 희석시키는 대신 안정감 있는 주행특성을 갖추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경쟁차인 BMW X5와의 특성 차이를 많이 좁힐 수 있었다. 온로드 특성에 주안점을 주는 SUV 만들기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같은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뿐 아니라 전반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지향하고 있는 흐름이기도 하다. 소비자 성향을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모델에 변화를 주고 있는 BMW에 비해 아직 메르세데스-벤츠의 모델 체인지 주기는 긴 편이다. 현행 M 클래스 역시 데뷔 4년차인 2009년에야 페이스리프트를 했고, 2012년이 되어야 후속 모델의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국내에 출시된 ML 300 CDI 4매틱 블루이피션시 그랜드 에디션은 점차 모델 수명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2세대 M 클래스가 마지막으로 빛을 볼 수 있도록 상품성을 높인 모델이다. 2009년 10월부터 국내 판매를 시작한 ML 300 CDI 블루이피션시는 8,890만 원에 팔렸지만, 그랜드 에디션이 나오면서 값이 9,150만 원으로 올랐다.

사실 260만 원의 오른 값은 추가된 그랜드 에디션 패키지에 들어간 요소들을 생각하면 그리 크게 오른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는 AMG 스타일 라디에이터 그릴 및 전용 범퍼, 블랙 베젤 헤드램프, LED 주간 주행등, 19인치 경량 알로이 휠, 알루미늄 색 루프 레일로 일반 버전과 차별화 했다. 실내도 AMG 스포츠 스티어링 휠과 변속 패들, 전용 우드 그레인, 실내등 패키지, 베이지 파이핑이 들어간 시트와 흰색 스티치로 강조된 가죽 내장재 등으로 꾸몄다. 센터 페시아 하단의 ‘그랜드 에디션’ 엠블럼도 작지만 특별한 모델임을 강조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사실 M 클래스 일반 모델의 내장재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움이 부족했다. 전체는 아니지만 넓은 면적을 가죽으로 덮은 것은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운전 공간은 높은 좌석과 천장이 아니라면 SUV의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원형 공기배출구를 포함해 둔해 보이지 않게 디자인된 대시보드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담겨 있다. 다만 최근에 나오고 있는 차들과 비교하면 장비의 신선함은 적다. 계기판 중앙의 정보표시 화면은 해상도가 낮은 단색 LCD이고, 센터 페시아의 코맨드 APS도 조그 셔틀 컨트롤러를 쓰지 않는 한 세대 전 방식이다. 국내에서 추가한 리모컨 조절방식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조악함도 전체적인 구성의 신선함을 떨어뜨린다. 물론 주요 조절장치가 직관적이고 단순해 쉽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때로는 최신 기술보다 옛 기술이 편리할 때도 있다. 굵은 A 필러에 가리는 부분만 빼면 시야도 매우 좋은 편이다.

차체 자체가 작지 않기 때문에 실내 공간은 비교적 넉넉하다. 기어 레버가 스티어링 칼럼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팔을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운전 중에 필요한 모든 조작을 할 수 있다. 도어 트림과 글로브 박스, 센터 콘솔 박스 등 수납공간도 큼직하고 넉넉하다. 다만 콘솔 박스 앞쪽의 비교적 큰 공간에 컵 홀더 두 개를 일렬로 배치한 것은 공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베이지색 파이핑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시트는 비교적 넉넉한 크기에 쿠션이 탄탄한 편이다. 장거리 주행에도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시트 설계는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장기다.

별도의 공기조절장치와 좌우 열선 기능이 마련되어 있는 뒷좌석도 무릎과 어깨, 머리 위 모두 공간 여유가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실내 바닥이 높지만 그만큼 천장도 충분히 높아, 차에 오르내릴 때를 빼면 실내에서 불편함은 거의 느낄 수 없다. 뒤 해치는 열리는 부분이 넓고 크기 때문에 무겁지만, 열고 닫는 것이 모두 전동화 되어있기 때문에 무게를 느낄 일은 거의 없다. 해치는 차가 정지해 있을 때에는 도어에 있는 스위치로 운전석에 앉은 상태에서도 여닫을 수 있다. 짐 공간은 마무리가 깔끔하고 벽면도 평평해하다. 바닥이 그리 높지 않아 짐을 싣고 내리기 편리하다. 다만 리어 오버행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만큼 6:4 비율로 나뉘어 접히는 뒷좌석을 접지 않으면 긴 짐을 싣는 것은 무리다.

시동을 걸면 디젤 엔진 특유의 ‘갈갈’거리는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다. 엔진 회전의 질감도 거친 느낌이 거의 없고 배기음도 차분하다. 진동과 소음이 적은 것은 단순히 엔진 실린더 배치가 V6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만큼 메르세데스-벤츠가 디젤 엔진의 NVH 저감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7G트로닉 자동변속기의 기어비는 정지가속 때 토크를 고려한 1단을 제외하고 2, 3단 간격이 좁다가 4, 5, 6단 사이가 넓어지고 다시 6단과 7단 사이가 좁아지는 구성이다. 수동 변속은 스티어링 휠 뒤의 변속 패들로만 할 수 있는데, 변속의 매끄러움을 중시한 세팅 때문에 수동 모드 변속 때에 약간의 지체가 느껴진다. 가속은 초반에 부드럽게 시작되다가 중고속으로 가면서 빠르게 힘이 붙는다. 분명 힘에 여유가 있지만 날아갈 듯 시원하지는 않다. 속도상승이 눈에 띄게 둔해지는 시속 180km까지 꾸준하고 매끄럽게 가속이 이어지는 것은 넉넉한 토크와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의 차체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 정도 덩치에 0.34의 공기저항계수는 상당히 뛰어난 수치다.

끈끈한 스티어링 감각과 더불어 핸들링은 전반적으로 부드러움이 가미된 정교함이 돋보인다. 중심에서 약간 느슨해지는 스티어링 경향 때문에 민첩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전후 차체 움직임은 대단히 균형이 잘 잡혀있다. 차체가 높아 어느 정도 롤링은 있지만 든든한 접지력이 뒷받침해 안정감이 크다. 바퀴의 상하 움직임은 SUV에서 일반적인 수준이지만 서스펜션이 진동을 빠르게 잡으면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것도 듬직하게 느껴진다. 4매틱 4륜구동 시스템을 제어하는 4ETS/ESP는 개입 시점이 빠른 편이다. 겨울철의 미끄러운 노면에서 조금만 과격하게 운전하면 쉽게 4ETS/ESP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ESP 스위치를 눌러 끄더라도 운전자가 ‘아차’하기 전에 미리 되살아나 작동된다. 제동특성은 고르고 정확하다. 제동 중에도 차체는 거의 흐트러지지 않지만 무게가 실리는 느낌은 뚜렷하다.

정부공인연비는 9.3km/L이지만, 263km를 시승하며 트립 컴퓨터로 측정한 평균 연비는 8.6km/L였다. 주행조건을 고려하면 그리 나쁜 수치는 아니지만, 최근의 고연비 지향 추세와 함께 7단 7G 트로닉 변속기를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가 자랑하는 블루이피션시 기술이 담겨 있는 모델임을 고려한다면 대단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쾌적한 주행감각이 경제성에 대한 불만이 상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조만간 현재 판매되고 있는 모델은 유로 4 기준에 맞춰 엔진이 세팅되어 있으나, 조만간 유로 5 기준에 맞춘 모델이 국내에 시판될 예정이라고 하니 연비 개선도 기대해볼만 하다.

새 모델만큼 신선하지는 않아도, 지금의 ML 300 CDI 4매틱 블루이피션시는 SUV에 필요한 모든 능력들을 고루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그랜드 에디션 패키지를 통해 M 클래스가 갖고 있던 약점들도 어느 정도 상쇄되었다. 이 정도면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메르세데스-벤츠 세단과 같은 수준의 실내 꾸밈새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나 최신, 첨단장비를 중요시하는 얼리 어답터들은 다음 세대 모델이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 속이 편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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