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카 한국판 2011년 10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끝난 직후인 10월 20일에는 자동차와 모터스포츠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영화 한 편이 개봉한다. 지난 1994년, 바람처럼 달리다 바람처럼 세상을 떠난 F1 드라이버 아일턴 세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나: F1의 전설’이다. 그는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미하엘 슈마허 이전까지 최고의 드라이버로 손꼽혔다. 물론 세계적인 레이서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은 역사상 최고의 드라이버로 그를 꼽는다. 

솔직히 이 영화가 뒤늦게라도 국내에서 개봉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지 16년도 넘은 인물이고, 그가 활약했던 F1이라는 스포츠 자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아직 크지 않아서다. 지극히 마이너한 관심사인 역사 속 F1 영웅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은 역시 F1 그랑프리가 국내에서 열린 덕분이 아닐까 싶다. 필자에게도 영웅으로 남아 있는 그의 모습을 화면을 통해서라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대된다.

한편 가까운 일본에서는 하루모토 쇼헤이(東本昌平) 원작의 만화 ‘기린’이 영화로 제작되어 곧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작 만화는 모터사이클과 마니아들의 정서를 잘 살려내어 ‘모터사이클 만화의 최고봉’으로 칭송되고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만화의 실사 영화 제작소식을 듣고 자연스럽게 같은 작가의 자동차 만화 ‘SS’가 떠올랐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SS’는 필자를 포함해 소수의 극성팬을 낳았고, 일본에서는 기린보다 앞서 지난 2008년에 실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기린’도 마찬가지이지만, ‘SS’는 필자 또래, 혹은 중년이라 부를만한 나이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정서가 느껴진다. 이상을 좇는 젊은 세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중년층이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을 받아들이고, 겪고, 느끼는 모습이 그려진 만화는 자동차를 좋아하거나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쉽게 동화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작가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에 대한 시대적, 정서적 바탕이 뚜렷하지 않다면 이런 작품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또한 국내에서는 극소수일지언정 독자들이 이런 작품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자동차를 좋아해서 자동차와 관련된 일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영화나 만화 같은 문화적인 상품을 통해 자동차나 자동차와 관련된 인물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런 것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의 이야기로 만화나 영화를 만나기에는 아직 자동차가 우리 문화나 정서에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루할 정도로 구구절절이 배경설명을 하지 않은 이상, 이런 문화상품들은 마니아가 아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자동차가 주는 즐거움을 깊이 있게 누리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그만큼 크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자동차와 관련된 문화상품이 보편화될 수 없고, 그래서 국내의 마니아들은 점점 더 우리가 만든 그런 것들을 접할 기회를 잃게 된다. 

지금의 마니아들이 더 나이가 들어 과거를 추억하려고 해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자동차와 관련된 무언가를 공유하기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에게 자동차와 관련해 추억할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후손들에게 어떤 자동차 문화의 유산을 남겨줄 것인가. 이제는 마니아들이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더 어른스러운 생각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