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카 한국판 2012년 2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현대가 최근 i40 세단(현대의 표현으로는 ‘살룬’)을 국내에 출시했다. 지난해 i40 왜건을 내놓은 데 이은 또 하나의 파격행보다. i40 왜건은 그간 사막이나 다름없던 중형 왜건 시장에 현대가 모험적인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i40 세단까지 내수 시장에 내놓는 것은 i40 왜건과는 조금 다른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크기와 값이 거의 비슷한 쏘나타가 있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시장이 겹치는 두 종류의 4도어 세단을 내수 시장에 함께 나오는 것은 서로의 시장을 잠식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현대의 노림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현대에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지금의 쏘나타(물론 전에도 그랬다)는 사실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둔 차다. 반면 이번에 나온 i40 세단은 ‘유러피안 프리미엄 신중형’이라는 현대의 표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 지향의 차다. 스타일에서도 쏘나타는 크고 쭉 뻗은 선으로 대담한 느낌을 주는 반면, i40는 상대적으로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엔진에 있어서도 쏘나타는 휘발유와 하이브리드에 치중하고 있지만, i40은 쏘나타에는 없는 디젤 엔진을 갖추고 있다. 실내공간이나 승차감도 쏘나타는 편안하고 넉넉한 느낌을, i40은 탄탄하면서 알찬 느낌을 내세우고 있다. 4도어 중형 세단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두 차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제품을 구성해 내수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메이커는 현대뿐이다. 새삼 현대의 제품력에 놀라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의 내수 시장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를 읽을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오랫동안 내수 판매 1위를 지켜왔던 쏘나타는 지난해 한 등급 아래 모델인 아반떼에게 왕좌를 내어주었다. 게다가 중형차 시장에서도 형제 브랜드인 기아의 K5에게 밀렸다. 판매대수 자체만 놓고 보면 결코 적지 않지만 현대로서는 내수 중형차 시장 1위를 내어준 것이 무척 자존심 상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입차의 공세는 나날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0만 대 넘게 팔린 수입차 가운데 상당수는 엔진 크기와 값이 국산 중형차와 비슷한 것들이 많았다. 특히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연비가 뛰어난 유럽 브랜드 중저가 디젤차들이 수입차 시장의 대세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힘을 잃었던 유럽과 미국 브랜드들이 다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i40 세단 출시에 즈음해 도요타는 미국에서 쏘나타와 직접 경쟁하는 신형 캠리를 들여와 팔기 시작했다. 상품성을 강화하면서도 이전 모델보다 저렴한 값에 들여와 경쟁력을 높였다는 것이 도요타의 주장이다. 내년쯤 되면 쏘나타를 위협할 동급 일본차와 미국차들이 다시금 쏟아져 들어온다. 이런 차들은 유럽 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으로 국산차를 위협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대는 알짜배기인 중형차 시장에서 내부의 적(기아 K5), 동네의 적(기타 국산 중형차), 경제성과 성능을 무기로 내세운 적(유럽산 중저가 디젤차), 값 차이가 크지 않으면서 상품성이 비슷한 적(일본 및 미국 브랜드 중형차)까지 네 무리의 적군을 둔 꼴이 되었다. 어느새 수입차까지도 의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i40는 내부의 적이나 유럽산 차들을 상대할 수 있는 쏘나타의 응원군으로 내수 시장에 투입된 셈이다. 내수 시장 넘버원을 자신하던 현대가 이런 식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모습은 그동안 보기 힘들었다. 점입가경이 되어가고 있는 중형차 전쟁이 낳은 재미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