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2년 4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내용이 길어 10년 단위로 다섯 개 포스트로 나누어 올립니다. ]

렉서스 LF-A, 도요타 86과 스바루 BRZ가 새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동안 일본 메이커들은 가장 재미있는 자동차 장르인 스포츠카와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본 메이커들이 만들고 세계인들이 즐긴 걸작 스포츠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작정만 하고 여건만 갖춰지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재미있는 차를 만들 수 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 196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붕괴위기에 놓였던 일본 자동차 산업은 625 동란에 따른 특수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고, 1950년대 후반의 내수 호황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스포츠카는커녕 자가용조차 쉽게 구입할 수 없어 정부가 ‘국민차 구상’을 내놓아야 했던 상황은 1960년에 출범한 이케다 하야토 내각이 10년 내에 일본 국민소득을 두 배로 올려놓겠다는 소득배증계획을 추진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쿄 올림픽 개최 이후 1960년대 후반기에 전후 가장 오랜 기간의 경기호황이 이어지며 일본은 본격적으로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런 풍요와 더불어 고속도로 개통을 중심으로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이 갖춰지기 시작하면서 승용차 보급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1960년대의 10년 사이에 일본 자동차 시장의 규모는 10배 넘게 성장했고, 자동차 생산대수도 빠르게 늘어나 1967년에는 독일(당시 서독)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다. 나아가 1963년에 완공된 스즈카 서킷에서 제1회 일본 그랑프리가 열리고, 혼다가 F1에 출전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자동차는 본격적으로 세계무대를 향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품질과 성능을 높이기 위해 여러 메이커들이 분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스포츠카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 시기의 한가운데였던 1967년은 일본 스포츠카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되어 있다. 마쓰다가 세계 최초로 트윈 로터 로터리 엔진을 단 코스모 스포츠, 도요타가 2000 GT로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스포츠카를 선보인 것이다. 10여년 사이에 일본 스포츠카들은 메이커들이 기술과 성능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에서 점차 소비자가 풍요를 즐기는 수단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닛산 페어레이디 1500/1600/2000 (1962년)

1950년대부터 소형 컨버터블을 소량생산했던 닛산이 내놓은 본격적인 스포츠 컨버터블. 1962년에 나온 페어레이디 1500은 이듬해 열린 제1회 일본 그랑프리 클래스 우승을 시작으로 모터스포츠에서 활약했다. 1967년에 나온 페어레이디 2000은 일본 양산차 최초로 시속 200km의 벽을 깼다.

혼다 S500/S600/S800 (1963년)

모터사이클 메이커였던 혼다의 첫 자동차. 혼다의 스포츠카 라인업인 S 시리즈 첫 모델이기도 하다. S500의 구동계는 모터사이클 설계의 특징이 남아 있었다. 2인승 컨버터블을 기본으로 1964년 출시된 S600부터 쿠페가 추가되었다. 1960년대 일본 투어링카 레이스에서 강자로 군림했다.

도요타 스포츠 800 (1965년)

대중형 초소형차인 퍼블리카를 바탕으로 만든 도요타의 첫 스포츠 모델. 수평대향 2기통 800cc 45마력 엔진을 얹었지만 차체가 가벼워 민첩한 움직임이 호평을 얻었다. 항공기 설계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공기역학적 디자인은 이후 2000GT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도요타 2000GT (1967년)

일본 최초의 정통 GT카. 야마하에서 튜닝한 직렬 6기통 2.0L DOHC 엔진, 4륜 디스크 브레이크 및 독립 서스펜션, 백본 프레임 등 당시 일본차에서 보기 드문 다양한 기술이 집약된 차였다. 재규어 E 타입을 닮은 스타일과 더불어 영화 ‘007 두 번 죽다’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마쓰다 코스모 스포츠 (1967년)

독일 NSU의 승인을 받아 만든 로터리 엔진을 얹은 본격 스포츠카. 수제작한 빼어난 스타일의 차체가 눈길을 끌었고, 2로터 582cc 로터리 엔진의 높은 성능으로 2,000cc급 차의 성능을 냈다. 로터리 엔진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했던 마쓰다가 해외 내구 레이스에 출전시키는 등 마쓰다의 상징 역할을 했다. 

이스즈 117 쿠페 (1968년)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 전시되어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매력적인 스타일을 뽐낸 이스즈의 스포츠 쿠페.  이스즈 승용차 중 처음으로 DOHC 엔진을 쓴 것은 물론, 일본 양산차 중 처음으로 엔진에 전자제어 연료분사기술을 도입했다. 한 차례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1981년까지 장수했다.

닛산 스카이라인 2000GT-R (1969년)

일본 고성능 스포츠카의 대명사가 된 전설적인 차. 닛산 R380 경주차용으로 개발된 엔진을 손질해, 개조한 스카이라인에 얹은 고성능 모델이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일본 투어링카 레이스에서 49연승, 통산 50승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4도어 세단만 나왔지만 이후 2도어 쿠페가 추가되었다.

닛산 페어레이디 Z/240Z (1969년)

미국 시장을 노리고 전략적으로 개발된 닛산의 대표적 스포츠카 중 하나. 당대 유럽 GT카와 비슷한 스타일과 성능을 내면서 값은 저렴해 높은 인기를 끌었다. 미국에서는 Z카라는 별명을 얻으며 10년 동안 닛산의 이미지 리더 역할을 했다. 1971년 사파리 랠리 우승을 시작으로 모터스포츠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 스포츠카, 이렇게 달려왔다 (2) 1970년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