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2년 4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내용이 길어 10년 단위로 다섯 개 포스트로 나누어 올립니다. ]

* 일본 스포츠카, 이렇게 달려왔다(4) 1990년대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2000년대~현재

버블 경기 붕괴의 여파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장기 불황에 힘을 잃은 일본 자동차 산업은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해외 생산과 판매를 크게 늘려나가며 자리를 잡았지만, 자동차 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지역에서의 성장은 일본 스포츠카의 변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일본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높였던 많은 차들이 후속 모델 없이 1990년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극소수의 모델들만이 명맥을 이어나갔다. 일본 내수 시장에서도 스포츠카의 주 수요층인 청년계층의 고용불안이 지속되고 소득이 줄어 스포츠카뿐 아니라 전체적인 자동차 판매도 하락세로 돌아서기에 이르렀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1990년대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경쟁력이 높은 스포츠카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 또한 중동의 정세불안으로 인한 고유가의 지속과 2000년대가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스포츠카 수요를 더욱 묶어놓는 역할을 했다. 스포츠카 시장도 값비싸고 희소가치 높은 차, 특히 브랜드 가치가 높은 차는 잘 팔리고 그렇지 않은 차는 덜 팔리는 양극화가 점차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다만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을 통해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일본 내에서만 팔리고 인기를 얻었던 스포츠카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일본 메이커들은 새로운 전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일본 내에서도 청년층이 자동차가 주는 즐거움을 체감할 수 있는 저렴하고 재미있는 스포츠카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과거 일본 스포츠카의 전성기를 추억하게 하는 특징과 하이브리드 등 최신 기술을 한데 아우르는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카들이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닛산 페어레이디 Z/350Z/370Z(2002년)

2000년 단종된 4세대와 2년여의 간격을 두고 나온 5세대 모델. 초대 페어레이디 Z의 스타일 특징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디자인과 더불어 스포츠카다운 주행특성 구현을 위해 차체 크기를 줄였다. 앞 차축 뒤에 놓여 뒷바퀴를 굴리는 자연흡기 V6 3.5L 엔진은 2008년 370Z로 모델 체인지되며 배기량이 커졌다.

닛산 스카이라인 쿠페/인피니티 G35/G37 쿠페(2002년)

인피니티 브랜드의 강화를 위해 일본보다 미국에서 먼저 발표된 모델. 스카이라인 세단과 더불어 스포티한 주행감각을 가졌으면서도, 같은 플랫폼과 요소를 사용한 페어레이디 Z보다 고급스러운 꾸밈새를 중시했다. 2007년에 풀 모델체인지되며 인피니티 버전은 배기량 증가에 따라 G37로 이름이 바뀌었다.

마쓰다 RX-8(2003년)

마쓰다 로터리 엔진 스포츠카의 최종 발전형. 좌석구성이 2인승 및 2+2였던 RX-7과 달리 충분한 뒷좌석 공간을 갖춘 4인승으로 탈바꿈하고 캐비닛 도어를 달아 실용성까지 고려한 접근이 돋보였다. 성능은 좋아졌지만 어색한 생김새와 쓰임새, 희미해진 개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좋은 평을 듣지 못하고 단종되었다.

닛산 스카이라인 GT-R(2007년)

르노와의 제휴 이후 닛산 CEO에 취임한 카를로스 곤이 부활을 추진해 완성된 모델이다. 전자제어 기술을 섀시에 폭넓게 활용하고 터보차저 및 AWD 시스템을 사용하는 등 선대 모델과 공통점이 있지만 직렬 6기통 엔진이 V6 3.8L로 대체되는 등 변화도 적지 않았다. 유럽 슈퍼카들을 노골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렉서스 IS-F(2007년)

BMW M3, 메르세데스-벤츠 C 클래스 AMG, 아우디 RS4 등 독일 프리미엄 고성능 세단과 경쟁할 수 있도록 렉서스 IS를 고성능화한 모델. 4도어 세단에 V8 5.0L 423마력 엔진을 얹기 위해 섀시를 대대적으로 손보고 전용  8단 자동변속기를 쓰는 등 구석구석을 스포티하게 튜닝했다. 

렉서스 LF-A(2010년)

도요타가 렉서스 브랜드 이미지 강화를 위해 500대 한정생산하고 있는 일본식 슈퍼카. V10 4.8L  560마력 엔진과 6단 시퀀셜 트랜스액슬을 갖춘 앞 엔진 뒷바퀴 굴림 2도어 쿠페다. 카본파이버 강화 섀시, 미래적인 디지털 클러스터 등 고가의 구조 및 장비와 독특한 디자인을 갖추었다. 시판용 양산 일본차로는 가장 비싸다.

혼다 CR-Z(2010년)

1980년대를 풍미했던 발라드 스포츠 CR-X의 분위기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앞바퀴 굴림 스포츠 해치백. 디자인, 2인승 또는 2+2 좌석 실내 구성도 옛 CR-X와 비슷하다. 하이브리드 구동계로 높은 연비를 실현하면서도 가볍고 경쾌한 핸들링에 6단 수동변속기를 갖추는 등 운전재미를 살리는 요소들을 담았다. 

도요타 GT 86/스바루 BRZ(2012년)

도요다 아키오 사장 취임 후 꾸준하게 추진된 ‘운전의 즐거움을 주는 차’ 만들기가 현실화된 차다. 작고 가벼운 차체의 2도어 쿠페에 롱 노즈 숏 데크라는 전형적인 스포츠카 스타일, 스바루의 수평대향 엔진 기술에 도요타의 직접분사 시스템을 결합한 2.0L 엔진이 뒷바퀴를 굴려 높은 운전재미를 추구했다.

혼다 NSX(2013년 예정)

2013년에 나올 새 NSX는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컨셉트카로 가시화되었다. 새 NSX는 미드십 엔진배치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AWD 구동계를 갖춘다. 앞바퀴 좌우에 하나씩 모터를 달아 토크 벡터링을 구현하는 독특한 하이브리드 스포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