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포르쉐 911 카레라 S

[ 모터 매거진 2012년 4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많다. 특히 얼어붙은 유럽 시장에 뿌리내린 일부 메이커들은 빠른 수요 감소로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난국에서도 꾸준히 성장을 지속하는 곳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같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다. 순위에서만 엎치락뒤치락할 뿐, 이들이 최근 몇 년 동안 계속해서 갈아치운 연간 판매기록은 작년에도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여기에 GM을 누르고 세계 제1의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한 폭스바겐까지 함께 생각해 보면 ‘요즘 대세는 독일차’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세 브랜드와는 별개로 놓아야 하겠지만, 포르쉐 역시 성장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카이엔이나 파나메라처럼 스포츠카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평을 듣는 모델들이 판매를 이끌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차들에서 ‘포르쉐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없다면 그처럼 인기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것이 ‘포르쉐다움’, 그리고 포르쉐 차 만들기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신형 911이다. 모름지기 잘 나가는 요즘 독일차, 그리고 독일을 대표하는 스포츠카 양산 메이커의 대표적 모델인 셈. 뒤집어 말하자면 최신 911은 독일 스포츠카의 현주소, 그리고 지향점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금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최신 911인 911 카레라 S을 통해 지금 독일 스포츠카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짚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올해로 데뷔 49년을 맞는 911은 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차였고, 지금의 911도 마찬가지다. 현대적인 요소로 치장되었을지언정, 오리지널의 이미지가 살아있는 겉모습이 그런 차임을 대변한다. 차체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곡면의 매끄러움은 993 이후 계속 숙성되어, 이제는 거의 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형태가 되었다. 다만 이전 세대에 비해 수치상 크기 변화가 크지 않은데도 한층 낮고 넓어진 느낌이 들어, 이제는 본격적인 GT에 가까운 분위기를 낸다. 사이가 벌어진 헤드램프와 얇고 날카로워진 테일램프는 그런 분위기를 더욱 강조한다. 물론 그 속에는 구조적인 변화도 담겨 있다. 가동식 리어 스포일러가 훨씬 넓어지면서 엔진룸 커버와 분리된 탓에 이제는 뒤 커버를 벗겨도 엔진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제는 911의 엔진이 오너가 신경써야할 대상이 아님을 뜻하는 듯하다.

실내에서 클래식한 느낌이 남아있는 것은 5개의 원이 겹쳐진 계기판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앞서 등장한 파나메라와 카이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디자인 흐름이 911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다른 포르쉐 모델들에 비하면 대시보드에서 곧게 뻗어 나와 좌우 좌석 사이를 가르는 부분은 2004년에 나온 카레라 GT의 느낌이 더 진하다. 물론 포르쉐 라인업의 최신 모델이라는 점은 디테일에서 은근하게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엔진 회전계 왼쪽에 놓인 멀티 디스플레이다. 화면 디자인은 다른 차들과 같지만 해상도는 훨씬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실내의 품질감은 확연히 고급차의 영역에 들어섰다. 몇 세대 전만 해도 포르쉐는 비싼 차였지 고급차는 아니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꾸밈새다. 폭넓게 자리를 잡고 알루미늄 느낌의 장식도 차지하는 면적에 비하면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다만 기어 레버 뒤쪽에 모여 있는 버튼 가운데 선루프 작동 버튼만 알루미늄 테두리를 둘러놓은 것은 차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글러브박스 위에 감춰 놓은 컵홀더는 여전히 쓰기 불편하고, 다른 수납공간에 대한 배려도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달리기가 중요한 차에서 그리 흠이 될 부분은 아니다.

시트는 완전 전동조절식이다. 낮게 깔린 좌석은 앉은키가 큰 필자에게도 충분한 머리 공간을 만들어준다. 쿠션은 스포츠카로는 적당히 너그럽지만 몸을 잡아주는 느낌은 충분히 스포티하다. 차체 크기에 비하면 실내 폭이 좁은 편이지만 공간적으로는 썩 답답하지 않다. 물론 뒷좌석은 무릎공간이 약간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정도가 미미해서 여전히 다 큰 어른이 앉는 것은 무리다. 헤드레스트 없이 위쪽 절반만 앞으로 접히는 뒷좌석 등받이는 초대 911로부터 이어받은 유전자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배기량 3.8L의 수평대향 6기통 자연흡기 엔진은 무려 400마력을 뽑아낸다. 새 엔진이 던지는 놀라움은 엔진 회전을 레드존까지 끌어올리는 내내 무뎌지지 않는다. 아무리 고성능 엔진이라도 최대토크가 나오는 회전수를 넘어서면 가속감이 다소 둔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991의 엔진은 다르다. 수치상으로 최대토크가 나오는 5,600rpm을 넘어 자동 모드에서는 윗단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7,500rpm까지도 뿜어져 나오는 힘은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속도가 빨라져도 스티어링 휠의 차분함이 고스란히 유지되는 것은 역시 길어진 휠베이스 덕택이라 할 수 있다. 

스포트나 스포트 플러스 버튼을 누르면 한층 우렁차게 바뀌는 배기음은 고회전 보다는 뚜렷하게 토크가 차를 밀어붙이기 시작하는 2,000rpm에서 3,500rpm 사이에서 가장 매력적인 톤으로 실내를 울린다. 그런데 차 밖에서 듣는 것과 실내에서 듣는 배기음의 차이가 꽤 크다. 차 밖에 서 있으면 시동이 걸릴 때 배기구로 튀어나오는 대단히 우렁차고 박력 있는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러나 운전석에 앉으면 음색만 고스란히 전달될 뿐, 실내로 들어오는 소리의 양은 그리 크지 않다. 배기음을 증폭시켜 실내로 전달하는 사운드 심포저 기술을 쓸 만큼 방음처리에 많은 신경을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한된 시승여건상 코너링에서 보여주는 움직임을 제대로 느껴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차선변경에서 느껴지는 섀시의 감각은 무척 절묘했다. 부드러운 슬라럼이든 재빠른 차선변경이든 차체의 움직임은 지극히 안정적이다. 996에서 997로 이어지는 이전 세대 모델에서는 고속에서 차체 앞쪽이 어느 정도 가볍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991에서는 그런 느낌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전동 파워 스티어링도 이질감 없이 매끄러운 반응만 전달한다.  움직임에서 자극적인 점을 느끼기 힘들다는 것은 991의 대단한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누구나 편하게 높은 수준의 성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과거의 911이 주었던 까다로운 움직임을 다스릴 때의 쾌감은 이제 웬만해서는 느끼기 어려워졌다. 

고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차의 속도를 줄이는 브레이크까지 가세하면 하체에서 불안함을 느낄 일은 없다. 스포트 플러스 모드에서 서스펜션은 더 탄탄해지지만, 스티어링 휠을 통해 손으로 전달되는 노면의 진동도 편안한 수준으로 유지된다. 일상적으로 쓰기에  부담 없는 승차감이다. 시속 100km에서도 1,600rpm 남짓한 회전수를 유지하는 7단 자동변속기, 스톱-스타트 기능과 주행 중 액셀러에이터에서 발을 떼면 클러치를 분리시키는 세일링 기능처럼 연비를 높여주는 기술들도 빼놓지 않고 있다. 가볍게 몰면 스포티한 승용차 느낌으로, 열심히 몰면 한계가 높은 진짜 스포츠카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재다능함이 번득인다.

911만을 놓고 보면 새 911 카레라 S는 지금까지 911이 갖고 있던 단점 중에서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단연 지금까지 나온 911 중 가장 편안하고 든든하게 고성능을 맛볼 수 있는 모델임에 틀림없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고성능을 발휘하는 911에서 오히려 배신감을 느낄 정도다. 이제 911은 점점 더 고급스럽고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정통 GT의 영역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계적인 신뢰성과 철저하게 짜 맞춘 하체가 만들어내는 든든함을 통해 독일 스포츠카가 지향하는 바를 이끌어내고 있는 새 911은 정말로 놀라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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