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4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A110은 프랑스 디에프 지역 르노 딜러였던 장 리델리가 창업한 알피느의 세 번째 모델이다. 빼어난 디자인과 더불어 가벼운 차체에서 비롯된 뛰어난 성능으로 호평을 얻은 이 차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주요 랠리 무대를 석권하며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 스포츠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중 하나가 알피느(Alpine)다. 알피느는 아버지로부터 프랑스 디에프(Dieppe) 지역 르노 딜러를 물려받은 장 리델리(Jean Rédélé)가 세운 회사다. 모터스포츠 광이었던 그는 딜러에 속한 정비소를 기반으로 르노 차를 개조해 랠리에 출전하다가 직접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회사 이름을 알피느로 지은 것은 프랑스 알프스 지역 랠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기념한 것이었다. 그는 1955년에 르노 4CV를 바탕으로 첫 독자 모델인 A106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1958년에는 도핀(Dauphine)을 이용한 A108을 내놓으며 자리를 잡고 르노와도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갔다.

독자 설계 섀시에 르노 R8 엔진 올려

이전 모델들이 점차 신선함과 경쟁력을 잃기 시작할 무렵인 1962년에 르노가 R8을 내놓자, 알피느는 르노의 도움으로 엔진, 스윙 액슬 방식 뒤 서스펜션 등 R8의 주요 기계적 구성요소를 활용하는 새 모델 A110을 개발했다. 1962년 파리 모터쇼에서 데뷔한 A110은 2도어 2인승 쿠페인 베를리네트 투르 드 프랑스(Berlinette Tour de France)가 먼저 출시되었고, 나중에 2인승 컨버터블과 GT4라는 이름의 4인승 쿠페가 추가되었다.

A110 베를리네트의 겉모습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조반니 미켈로티(Giovanni Michelotti)가 디자인한 A108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A108의 것을 바탕으로 만든 백본 프레임에 얹은 R8의 기계적 요소가 더 큰 공간을 차지하면서 뒷모습이 달라졌다. 당시까지 르노의 대중형 승용차는 4CV의 영향을 받아 폭스바겐 비틀과 비슷하게 뒤 차축 뒤에 공랭식 엔진을 얹은 뒤 엔진 뒷바퀴 굴림 방식을 쓰고 있었다. 르노 차의 구조를 활용해 만든 알피느 차들도 마찬가지였고, A110도 예외가 아니었다. 엔진 냉각을 위한 공기 흡입구는 좌우 뒷바퀴를 덮는 펜더 위쪽에 있었고, 엔진룸을 식히고 더워진 공기는 차체 아래쪽으로 빠져나가도록 만들었다.  

데뷔 당시에는 R8에 쓰인 1.0L 52마력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가 올라갔다. 스포츠카로는 빈약한 힘이었지만 성능은 나쁘지 않았다. 간결한 백본 프레임 구조에 가벼운 유리섬유 보디를 얹은 덕분에 차체가 무척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초기 A110은 길이 3.85m, 너비 1.5m, 높이 1.16m의 크기에 무게가 600kg에도 미치지 않았다.

알피느는 가벼운 차체라는 장점을 바탕으로 엔진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며 점차 성능을 높여 나갔다. 물론 업그레이드된 엔진은 모두 르노 것으로, 주로 고디니(Gordini)와 미뇨테(Mignotet)가 손질한 버전이 올라갔다. 엔진 배기량도 차츰 커져, 1.1L, 1.3L, 1.5L를 거쳐 최종 버전에서는 1.6L에 이르렀다. 변속기도 초기 일부 모델을 제외하면 모두 5단 수동을 썼다.

엔진과 더불어 실내외도 꾸준히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가장 큰 변화는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진 1968년에 있었다. 이전까지는 헤드램프가 A108과 마찬가지로 좌우 하나씩 두 개가 있었는데, 이 때부터 차체 가운데 가까이에 두 개가 더해졌다. 또한 대형 광폭 타이어를 끼울 수 있도록 펜더 형태를 바꾸면서 더욱 스포티한 분위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지고 클래식카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것이 페이스리프트 이후에 생산된 것이다. 이는 뒤에 설명할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으로 얻은 후광효과 덕분이다.

WRC 창설 첫 해 챔피언 차지해

A110은 뒤 엔진 뒷바퀴 굴림 방식이어서 포르쉐 911과 주행 특성이 비슷했지만, 뒤 액슬의 네거티브 캠버를 크게 주어 코너링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한 기어비 간격이 좁아 가속이 매우 빨랐다. 이런 특성은 리델리가 랠리 경험을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었고, 그 결과 프랑스 국내는 물론 여러 국제 랠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알피느 브랜드의 고성능 및 모터스포츠 강자 이미지가 두드러진 것이 바로 A110이 랠리에서 거둔 성과 덕분이다. A110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유럽에서 열린 여러 랠리 경기에서 우승했고, 여세를 몰아 1967년에 르노의 워크스 팀인 알피느 르노 팀이 만들어졌다. 주요 랠리 대회 출전을 위해 만들어진 이 팀은 장 뤽 테리에, 베르나르 다니시, 장 피에르 니콜라를 주전 드라이버로 기용해 주요 대회를 휩쓸었다.

A110이 모터스포츠에서 전성기를 누린 것은 1970년대 초반이었다. 알피느 르노 팀은 세계 랠리 선수권(WRC)의 전신으로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열린 자동차 제조업체 국제 선수권(IMC)을 중심으로 유럽 내 주요 랠리 이벤트를 석권했다. IMC에서는 포르쉐 911, 포드 에스코트 TC, 란치아 풀비아 HF 등과 맞서 우승을 다투었는데, 첫 해인 1970년에는 랠리 명장 중 하나로 꼽히는 비외른 발데가르가 몬 포르쉐 911에 밀렸지만 장 뤽 테리에가 시즌 7경기 중 2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인 1971년에는 스웨덴 출신의 명 드라이버 오베 안데르손을 기용해, 개막전인 몬테 카를로 랠리를 포함해 전체 8경기 중 4경기에 우승해 챔피언에 올랐다. 1972년에는 란치아와 피아트, 포드의 공세에 숨을 죽였지만, IMC가 WRC로 재편된 1973년에는 개막전인 몬테 카를로 랠리에서 1위부터 3위까지 자리를 모두 A110이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총 13회 경주에서 6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WRC 첫 챔피언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1974년이 되어 랠리 무대에 페라리 V6 엔진으로 무장한 란치아 스트라토스가 등장하자 A110의 랠리 성적은 내리막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데뷔 후 10년이 흐른만큼 성능 향상이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A110의 뒤를 잇기 위한 새 모델인 A310도 이미 1971년부터 생산되고 있었다. A110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1973년부터 서스펜션을 비롯해 부분적으로 A310의 부품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빼어난 디자인과 랠리에서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어 프랑스에서의 생산은 1977년, 스페인에서의 생산은 1978년까지 계속되었다. 정확한 생산대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자료에는 브라질, 멕시코, 불가리아 등 해외에서 생산된 것을 포함해 약 8,200대가 생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절대적으로 많은 수치는 아니지만, 나중에 알피느를 흡수 합병한 르노의 모터스포츠 활동과 이미지 향상에 도움을 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 차라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