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매거진 2014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1948년에 선보인 재규어 XK120은 원래 새 엔진을 알리기 위한 한정 생산 스포츠카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혁신적 기술이 담긴 XK 엔진의 성능에 힘입어 모터스포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빼어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값으로 큰 인기를 끌며 6년 동안 1만 대 이상 판매되는 인기 모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잠시 군용차를 생산했던 재규어는 전쟁이 끝나자 민수용 차 생산을 준비했다. 우선 계획한 것은 세단으로, 전쟁 전 SS 재규어 시절에 개발한 마크 IV의 뒤를 이을 마크 V를 비롯한 일련의 모델들이었다. 그 중 마크 V(Mark V)가 가장 먼저 선보일 예정이었는데, 1948년 런던 모터쇼에 내놓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만 예상보다 개발이 늦어졌다.

재규어 총수인 윌리엄 라이언즈 경(Sir William Lyons)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대안을 고심했다. 새 차도 중요했지만 새로 개발한 엔진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오래지 않아 그는 새 엔진의 성능을 과시할 수 있는 스포츠카를 한정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재빨리 작업을 시작했다.

엔지니어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라이언즈는 개발 중이던 마크 V 세단 섀시를 바탕으로 몇 주 만에 차체를 설계했고, 대형 세단 마크 VII에 쓸 예정이던 직렬 6기통 3.4리터 엔진을 얹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차의 이름은 이 엔진의 형식명인 XK와 추정 최고속도인 시속 120마일(시속 약 193km)을 결합한 XK120이 되었다. 재규어의 XK 엔진은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부터 연구와 설계가 시작된 것으로, 이미 1945년에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후 복구와 영국의 어려운 경제여건 때문에 1948년이 되어서야 시판차에 쓰일 수 있었다.

빼어난 디자인이 시선 끌기에 충분해

XK120은 마크 V의 철제 상자형 프레임 섀시 길이를 줄이고 애시우드로 만든 틀 위에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보디를 씌우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당시 영국은 전후 복구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엄격한 철 배급 제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여서, 수출용 차를 만드는 회사에 강판이 우선적으로 배정되어 소규모 회사들은 정상적인 생산이 어려웠다. 재규어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보디를 만드는 현실적 대안을 택했다. 그러나 소재와 관계없이 빼어난 디자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고전적 곡선과 스포티한 비례가 우아하게 표현된 덕분이었다. 

뼈대는 특별한 구석이 없었다. 앞 서스펜션은 토션빔으로 좌우 바퀴를 연결한 독립식이었고, 뒤 서스펜션은 리프 스프링을 사용한 라이브 액슬 방식으로 당시 스포츠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 XK120에서 가장 돋보인 부분은 XK 엔진으로, 당시 양산차에서 보기 드물었던 체인 구동식 DOHC 밸브 구조와 몇 년 뒤 크라이슬러가 V8 ‘헤미(HEMI)’ 엔진에 써서 명성을 얻은 반구형 연소실 구조 등 혁신적인 기술과 개념이 쓰였다. XK 엔진은 이후 꾸준히 개선되며 1986년까지 40여 년에 걸쳐 재규어의 여러 세단과 스포츠카에 쓰이는 핵심 엔진이 되었다. 이 엔진은 당시 유럽 차에 쓰인 양산 자연흡기 엔진 중 가장 강력한 160마력의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엔진에서 만들어진 힘은 4단 수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로 전달되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60마일(시속 약 97km)까지 10초 이내에 가속할 수 있었던 XK120은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히 빠른 차였다. XK120은 당시 몇 배는 비싼 차들과 맞먹는 성능을 내어 주목받았다. 1949년 5월에 있었던 시험 주행에서 재규어의 테스트 드라이버는 최고속도 시속 132.6마일(시속 213.4km)를 기록하며 뛰어난 성능을 과시했다. 또한 토션바 방식 독립 서스펜션은 고속 주행 때의 뛰어난 핸들링 특성과 쾌적한 승차감의 뿌리가 되었다.

모터스포츠에서 재규어의 이름 높여

합리적인 값으로 뛰어난 성능을 얻을 수 있는 XK120은 금세 인기 모델이 되어, 재규어에는 XK120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생산능력을 웃돌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자 라이언즈는 생각을 바꾸어 XK120을 대량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초기형 모델 240대가 생산된 뒤인 1950년 5월에 재규어는 도어를 제외한 나머지 차체 소재를 알루미늄에서 강판으로 바꾸었다. 전후 복구가 궤도에 오르며 강판 수급도 수월해졌고, 알루미늄보다 강판이 비용도 저렴할뿐 아니라 제작시간이 짧아지면서 수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게를 고려해 도어는 계속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었고, 매력적인 디자인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특히 모터스포츠에서 거둔 성과는 명성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XK120 데뷔 전까지 재규어의 모터스포츠 활동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이후로 재규어는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XK120이 처음 모터스포츠에 출전한 것은 1949년 8월 영국 실버스톤에서였다. 당시 레이스에는 신인이었던 필 힐과 스털링 모스가 XK120 초기형 모델을 몰고 출전했고,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하며 XK120의 모터스포츠 데뷔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1950년과 1951년에는 알프스 컵(Coupe des Alps) 랠리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950년에는 개인이 구매한 XK120 중 세 대가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재규어는 XK120을 바탕으로 특별히 제작한 XK120C를 1951년 르망 레이스에 출전시켜 처음으로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었다. XK120C는 C타입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XK120의 르망 우승은 미국인들의 영국 스포츠카에 대한 관심에 불을 붙였다. 이후 미국으로의 영국 스포츠카 수출이 급증하며 1950년대 전반에 영국 자동차 산업이 활기를 얻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XK120은 초기에는 간이형 지붕만 갖춘 2인승 로드스터만 생산되었다. 그러나 지붕이 부실한 탓에 궂은 날에는 어울리지 않았고, 이런 문제를 보완해 1951년에는 둥근 지붕이 독특한 픽스트 헤드 쿠페(FHC)와 SE 모델이 나왔다. SE 모델은 그간의 경험과 모터스포츠에서의 성과를 양산차에 반영한 것으로, 와이어 휠로 브레이크 냉각 특성을 개선했고 C타입 경주차에 쓰였던 C 타입 헤드를 선택하면 최고출력은 210마력으로 높아졌다.

1953년에는 제대로 된 옆 유리와 지붕 개폐 구조를 갖춘 컨버터블인 드롭헤드 쿠페(DHC)가 나왔다. 1954년에 더 강력한 성능과 더불어 여러 부분을 보완한 XK140에 자리를 넘길 때까지 6년 동안 XK120은 1만2,078대가 판매되었다. XK120은 재규어뿐 아니라 스포츠카 세계를 크게 바꿔 놓은 차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