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5년 6월 5일자에 ‘Made in USA?… 영국의 자존심 롤스로이스의 ‘외출”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산업도 새 공장을 지을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 중 하나가 수요다. 소비 거점에서 가까운 곳에 공장을 지어야 물류비용을 줄일 수 있고 상품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 공장을 세울 때에도 마찬가지다. 관세장벽이나 무역마찰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국 현지 공장을 세우기도 하지만,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원칙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자동차 공장은 초기 투자에 부담이 큰만큼, 대량 생산과 판매가 가능한 대중차 회사들이 외국 현지 공장을 세우곤 한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가 미국에 공장을 세운 것은 이례적인 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브랜드 이미지와 품질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좀처럼 외국에 공장을 세우는 일이 드물다. 그런 관점에서 세계 최고의 고급차 브랜드로 이름난 롤스로이스의 과거 행보 중 하나는 흥미를 자아낼만하다. 롤스로이스는 이미 1920년대에 미국에 현지 공장을 세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을 누리던 미국은 롤스로이스뿐 아니라 모든 고급차 브랜드에게 가장 큰 시장이었다. 특히 유럽 고급차의 인기가 높았는데, 주문을 받아 생산해 배에 싣고 대서양을 건너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롤스로이스는 1921년에 메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한 공장을 사서 직접 미국에서 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스프링필드는 미국 동부 정계와 재계의 중심 도시인 보스턴, 뉴욕, 워싱턴 등이 가까웠다. 

스프링필드 공장은 롤스로이스의 두 번째 공장이면서 첫 해외 생산시설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생산된 차는 프레임 등 핵심 설계는 영국에서 생산되던 주력 모델 실버 고스트의 것이었지만, 차체를 비롯한 많은 부품은 미국 현지 부품업체로부터 공급받았다. 차체와 실내도 미국의 코치빌더(차체 제작 전문업체)들이 꾸몄다.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롤스로이스는 큰 인기를 누렸다. 롤스로이스의 믿을 수 있는 기술과 미국 소비자 취향에 맞춘 꾸밈새를 겸비했고, 소비자는 주문한 차를 빨리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0여 년동안 3,000대 가까운 롤스로이스가 미국에서 만들어져 주인을 찾아갔다. 

그러나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의 여파는 피할 수 없었다. 심각한 경제난에 수요가 줄자 롤스로이스는 1931년에 스프링필드 공장의 문을 닫았다. 이후 롤스로이스는 지금까지 해외 공장을 세우지 않고 영국에서만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