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프’급 가속을 이끌어내는 테슬라 전기차의 루디크러스 모드

[ 2016년 9월 15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지난 8월 23일에 테슬라는 4도어 세단인 모델 S와 SUV인 모델 X의 배터리팩 업그레이드 버전인 P100D를 발표했다. 이전까지는 90kWh 배터리팩이 쓰인 P90D가 최상위 모델이었지만, 새로 나온 P100D에는 용량이 100kWh인 배터리팩이 쓰인다. 테슬라는 첫 출시 이후 지금까지 단계적으로 배터리 용량을 키우는 식으로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고 있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번 P100D 출시와 더불어 관심을 끄는 부분은 한층 더 발전한 가속력이다. 테슬라는 발표에 즈음해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루디크러스 모드가 적용된 모델 S P100D가 지금까지 생산된 양산차 중 세 번째로 가속이 빠른 차라고 밝혔다. 최상위 모델에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루디크러스 모드는 일반 주행 모드보다 가속이 한층 더 빨라지는 기능을 더하는 것이다.

새 P100D에서 루디크러스 모드를 작동시키면 정지 상태에서 시속 60마일(시속 약 97km)까지 가속하는 데 겨우 2.5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테슬라가 보도자료에서 비교를 위해 예를 든 페라리 라페라리와 포르쉐 918 스파이더가 무색할 정도의 성능이다. 사실 루디크러스 모드는 이전까지 최상위 모델이던 P85D를 대신해 2015년 7월에 발표된 P90D 모델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으니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그러나 P90D에서 시속 60마일 정지가속 시간이 2.8초였던 것을 P100D에서는 2.5초로 한층 더 단축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세단 대신 수퍼 스포츠카와 비교할 정도로 엄청난 가속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루디크러스 모드란 과연 어떤 것일까? 우선 조금 생소할 수 있는 루디크러스라는 단어부터 살펴보자. 루디크러스(ludicrous)라는 단어는 ‘터무니없는’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다. 비슷한 표현인 리디큘러스(ridiculous)가 ‘피식’ 정도의 가벼운 웃음이라면, 루디크러스는 어처구니가 없어 ‘빵’ 터지는 웃음에 비교할 수 있다. 그 정도로 가속이 기가 막히다는 뜻이다.

이는 일종의 미국식 개그다. 영화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영화 ‘스페이스볼(Spaceball)’에서 악당 캐릭터인 다크 헬멧(다스 베이더의 패러디다)이 우주선을 워프시킬 때 미친듯한 속도를 표현하기 위해 적절하게(?) 쓰였던 단어가 바로 루디크러스였다. 테슬라가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썼음은 테슬라 모델 S에 숨겨놓은 재미거리(이스터 에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것인지는 유튜브에서 ‘tesla ludicrous easter egg’로 검색해서 나오는 동영상을 한 번 보기 바란다. ‘워프’급 가속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능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과연 루디크러스 모드는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보통 자동차라면 가속력을 높이기 위해 흔히 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엔진 출력을 높이거나, 차를 가볍게 하거나, 공기저항을 줄이거나, 그런 방법들을 섞어 쓰는 것이다. 그러나 테슬라의 루디크러스 모드는 그런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더 강력한 모터나 배터리를 쓰는 것도 아니다. 전기차 전문 업체인 만큼, 전기적인 해법을 찾은 것이다.

전기차는 배터리팩에서 전기 모터로 전달되는 전기의 흐름, 즉 전류를 키우면 전기 모터의 회전력이 커져 가속이 빨라진다. 그런데 전류의 양이 전기 모터나 배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장치를 보호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전류가 흐르면 전류가 자동으로 차단되는 안전장치를 해놓는다. 테슬라 전기차에는 이전까지는 과전류가 흐르면 녹아서 끊어지는 금속제 퓨즈를 달았다. 문제는 언제 지나치게 많은 전류가 흘러 퓨즈가 끊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테슬라는 일종의 안전장치로서, 최대 전류를 퓨즈가 끊어지는 한계보다 훨씬 낮은 약 1,300암페어로 제한했다.

그런데 실제 배터리팩에서 내보낼 수 있는 전류는 그보다 많기 때문에, 쓸 수 있어도 쓰지 못하는 영역이 생긴다. 테슬라가 이 부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더 빠른 가속이 가능해지는 루디크러스 모드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테슬라는 일반 퓨즈를 대신할 일종의 스마트 퓨즈를 만들었다. 전기 흐름을 1,000분의 1초 수준의 짧은 주기로 계속 감지하는 장치를 퓨즈에 결합해서, 퓨즈가 끊어지기 전까지 이전에 쓸 수 없었던 많은 전류도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와 더불어, 많은 전류가 흐를 때 생기는 열에 견딜 수 있도록 니켈과 크롬을 주 성분으로 만든 초합금인 인코넬(Inconel)을 썼다. 인코넬은 철보다 높은 열에 견딜 수 있고 산화나 부식에 강해 극한 조건에 주로 쓰이는 합금이다. 그 결과로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최대 전류가 1,500암페어로 높아졌고, 그만큼 더 빠른 가속이 가능해졌다.

테슬라는 루디크러스 모드 이전에도 가속력을 키우는 기능에 ‘인세인(insane, 미친)’ 모드라는 이름을 썼다. 여러모로 테슬라의 이름 짓기에는 담긴 개그 센스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재미있다고 해서 가볍게만 생각할 기능은 아니다. 이번에 발표된 P100D 모델에는 루디크러스 모드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전에 출고된 P90D 모델에 루디크러스 모드를 추가하려면 미국 기준으로 1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117만 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비용을 더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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