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ream Garage

[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6년 10월호 ‘Dream Garage’ 특집 피처 기사에 실린 제 글입니다. ]

내가 꿈꾸는 차고는 일종의 놀이터다. 차를 주제로 개인적인 취미와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면서, 차를 매개로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쪽에는 차와 관련된 책이 꽂힌 책장이, 그 옆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모형을 만드는 책상이 있고, 빈 벽면에는 차가 담긴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그동안 수집하거나 만든 자동차 모형들이 모여 있다. 다른 한 쪽에는 자동차용 공구함과 관리용품, 각종 부품들이 정리되어 있고, 벽과 벽 사이에는 사람들이 앉아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를 잡는다. 자동차 게임을 할 수 있는 스크린과 기기들이 있으면 더 좋겠다.

그런 차고라면 집을 따로 두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도 좋겠다. 차의 기운이 가득한 공기가 흐르는 공간. 차쟁이의 아르카디아가 내가 꿈꾸는 차고다.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직접 몰 수 있게 된 20대 초반 이후로, ‘어떤 차를 살 것인가’라는 고민은 한시도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그리고 경험한 차들이 늘어나면서, 나쁜 차는 없고 취향에 맞지 않는 차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내 기준에서 드림카의 범위는 내가 가져보지 못한 모든 차로 넓어졌다. 다만 그 중에서도 이것만큼은 꼭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차들은 늘 있었다. 수시로 변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드림카 세 대를 고르라는 주문에 한참을 고민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어제 생각했던 드림카가 오늘은 아닐 수도 있고,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차가 드림카가 될 수도 있어서다. 

물론 페라리 250 GT SWB, 테스타로사나 288 GTO, 재규어 E-타입, 애스턴 마틴 DB5, 블로워 벤틀리나 부가티 타입 35 등 정말 꿈속에서라도 내 것이면 좋겠다 싶은 차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림의 떡일 뿐인 그런 차들은 내 성격에 꿈조차 꾸기 어렵다. 그렇다. 나는 꿈조차 자유롭게 꾸지 못할 만큼 한없이 소심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지금 내 멱살을 쥐고 흔들며 “당장 세 대를 꼽으란 말이야!”라고 윽박지른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메르세데스-벤츠 R129 SL 500, 랜드로버 디펜더 90, 푸조 205 GTi 1.9요…….” 

핑계 없는 무덤 없듯, 다들 드림카로 꼽을만한 이유는 있다. 우선 요즘 차들은 썩 내키지 않는 내게는 모두 아주 현실적인 드림카다. 1980~90년대 차들인 만큼, 아직 웬만한 부품들은 구할 수 있고 몰고 쓰기에도 아주 불편하지는 않을 차들이다. 물론 요즘 차들보다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야겠지만, 진짜 클래식카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그리고 이른바 ‘퓨처 클래식’ 반열에 오를 만큼 팬 층이 두터워,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질 차들이다.

각각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차들이기도 하다. R129 SL 500은 메르세데스-벤츠의 리즈 시절에 대미를 장식한 차라서 골랐다. R129 SL 클래스는 비용절감과 전자장비가 휩쓸기 전, 메르세데스-벤츠가 기계적 완성도를 한계까지 추구하던 시절의 끝자락에 태어난 차다. 요즘 차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SL 클래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을 가장 잘 표현한 존재였다. 게다가 디자인도 내 입맛에 딱 맞는다. 그러면 왜 가장 호사스러운 V12 엔진의 SL 600이나 SL 73 AMG를 고르지 않았을까? 이유는 엔진에 있다. 전후 지금까지 메르세데스-벤츠의 색깔은 V8 엔진 모델에서 가장 잘 표현되기 때문이다. 

디펜더 90은 세 차 중 유일하게 직접 몰아본 차다. 그때 몬 것은 2.5리터 Td5 디젤 엔진 차였지만, 차고에 들여놓을 것은 로버 V8 3.5리터 엔진 차여도 상관없다. 숏보디 디펜더는 가장 원초적이고 개인적인 오프로더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 물을 먹은 티가 난 랭글러에 비하면, 디펜더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퉁명스럽고 뻣뻣한 게 매력이었다. 그러면서도 정말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듬직했다. 이따금 조용한 산 속에서 쉬고 싶은 나에게는 휴식의 동반자 역할을 할 차로 디펜더 90이 제격이다.

앞서 이야기한 두 차가 가끔씩 타고 나갈 것들이라면, 205 GTi 1.9는 매일 타고 싶은 차다. 작고 경쾌하게 달리며 재미를 주는 차. 늘 꿈꾸는 이상적인 내 차의 기준이다. 요즘 나오는 소형차들은 아무리 핫해치라고 해도 경쾌한 맛이 적다. 고성능에 비례해 차체를 노면에 꽁꽁 묶어놓은 듯한 답답함도 커서, 오로지 가속과 속도만 중시한 느낌이다. 적어도 205 시절의 소형차들은 그런 느낌은 없을 것이고, 205라면 요즘 푸조 차들보다 훨씬 더 경쾌할 것이다. 폭스바겐 골프 GTI는 어떻냐고? 좋기는 하겠지만 손맛은 전통적으로 폭스바겐보다 푸조가 더 짜릿했다. 그래서 205 GTi 1.9는 꼭 가지고 몰아보고 싶은 차로 꼽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구성은 철저하게 의도된 것이다. 국적은 독일-영국-프랑스. 장르는 2인승 컨버터블-정통 오프로더-핫 해치. 구동계는 FR-4WD-FF. 크기는 대-중-소. 소심하게 영타이머들만으로 꼽았지만, 세 대라는 한계 안에서 자동차 세계를 최대한 만끽하려는 욕심은 감출 수 없었다. 어쩌면 드림카로서 이들을 갖고 싶다기보다 이런 차들과 함께 꾸려나가는 생활을 더 절실하게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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