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3’을 향하여 – 재규어 XE

[ 모터 트렌드 한국판 2016년 8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수입 중형 세단 시장에서 3위 자리를 노리는 여러 모델을 놓고 여러 저널리스트가 각자 한 모델씩 맡아 강점과 약점, 3위에 오르기 위해 알맞은 제품 전략에 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저는 재규어 XE를 맡아 썼습니다. ]

모터 트렌드 2015년 12월호 ‘누구나 탐내는 스포츠 세단’ 기사를 위해 BMW 3 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C 클래스와 함께 시승하면서 XE를 살펴본 적이 있다. 스포츠 세단이라는 구분이 조금 모호하기는 하지만, XE는 충분히 그 카테고리에서 나머지 차들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는 성격의 차라는 것은 확인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3 시리즈와 C 클래스가 국내 동급 수입차 중 판매에서 1위와 2위를 나눠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보면, 동급에서 스포츠 세단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소비자에게 어느 정도 먹혀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점쳐보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고, 뛰어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요소들도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급 시장에서 XE가 차지할 자리는 일단 그들 뒤로부터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정말 궁금한 것은 포디엄에 설 곳은 세 자리뿐인데, 그 중 한 자리를 XE가 차지할 수 있을지 여부다. 해답은 XE의 강점과 약점을 짚어보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XE는 비교적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모델로서는 선택의 폭이 제법 넓은 편이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만한 2.0리터 디젤 모델에 다양한 트림을 마련했고, 대안으로 2.0리터 가솔린 모델도 있다. V6 3.0리터 수퍼차저 엔진을 얹은 고성능 S 모델도 있다. 경제성에서 성능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킬 여러 대안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동급 독일 브랜드차 못지 않은 포트폴리오다. 가격대도 경쟁을 의식한 흔적이 보인다. 착한 가격은 아니어도, 경쟁 모델들보다 조금 더 풍부한 편의장비와 딜러 할인을 감안하면 납득할 만한 수준이다. 4도어 쿠페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날렵한 외부 디자인, 고급스러운 내장재와 실내 디자인, 직관적인 장비 등 실내 구성도 좋은 편이다.

모든 강점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재규어의 색깔이 살아 있는 주행감각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차라면 대부분 주행감각에 안정감과 정교함이 각자의 색깔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재규어처럼 여러 특성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차를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핸들링은 안정적이면서도 무겁지 않고 움직임이 가벼우면서도 세련미가 느껴진다. 스티어링은 정확하면서도 날이 서 있지 않아 부드럽다. 여기에 더해 승차감은 침착하고 나긋나긋하다. 누가 몰아도 부담스럽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급스러운 스포츠 드라이빙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재규어 혈통의 XE가 타고난 장점이다. 운전자 관점에서 본다면 XE는 재규어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사람에게 ‘재규어의 색깔은 이런 것’임을 제대로 가르쳐 준다.

XE의 문제는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시장에서 많이 팔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데에서 시작한다. XE는 낮고 날렵한 스타일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뼈대부터 운전자 중심의 스포츠 세단을 지향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실내 공간을 앞좌석 중심으로 구성해, 뒷좌석이 상대적으로 답답하다. 뒷좌석은 시트가 낮게 자리를 잡았지만 천장도 낮고, 등받이를 기울였지만 부드럽게 떨어지는 지붕선과 뒤 유리 때문에 머리 공간 여유도 적다. 편의장비나 기능은 아쉽지 않게 갖췄지만 전반적인 거주성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 두드러지는 약점이다. 

재규어다운 주행감각도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탁월한 세련미와 감각적인 움직임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자극적인 면이 없다. 차를 좋아하고 운전에 몰입하며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데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아닌 이상, XE의 장점은 묻힐 수밖에 없다. 하드웨어에서도 그런 성격이 드러난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주력이라 할 인지니엄 2.0리터 디젤 엔진은 좋기는 하지만 딱히 비교우위를 내세울만한 특성은 없다. 승차감도 전반적으로는 훌륭하지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하체에서 올라오는 잔 진동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디젤 모델과 가솔린 모델 모두 완전히 걸러지지 않는다.

그 밖의 약점들도 무시할 수는 없다. 반응이 더딘 터치스크린이나 어느 순간 먹통이 되는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 신뢰성이 떨어지는 전자장비는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다. 차 이외의 요소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딜러와 서비스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모델은 물론 재규어라는 브랜드도 이미지와 인지도 면에서는 열세다. 어느 쪽이든 개선될 여지는 얼마든지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판매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요소들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사실 XE는 선전하고 있는 면도 있다.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던 X-타입과 비교하면, 그동안 접근하지 못한 시장에 뿌리를 내린다는 최소한의 임무는 잘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내 시장은 XE가 무척 험난한 전쟁터다. XE의 약점 대부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고, 차 이외의 요소들은 더욱 그렇다. 쟁쟁한 경쟁자의 뒤를 이어 넘버 3 자리에 올라서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넘버 3 자리를 넘볼 수 있으려면 다른 노선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XE에 어떤 캐릭터를 부여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XE는 강자들과 직접 경쟁하기보다 강한 개성으로 매니아를 확보할 수 있는 틈새 캐릭터가 어울린다. 예를 들어 영국식 우아함을 지닌 운전자 중심 스포츠 세단이라는 성격을 강렬하게 내세우고, 그런 특성을 설득력 있게 알릴 수 있는 전문가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강 펀치 한 방에 뭔가 큰 성과를 거두기 기대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 잽을 날리며 기회를 엿보는 것이 XE에게 알맞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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