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차세대 연료전지차의 명암

[ 2017년 8월 20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현대자동차는 8월 17일 ‘차세대 수소전기차 미디어 설명회’에서 차세대 수소전기차(FCEV)를 공개하고 내년 초에 출시한다고 밝혔다. 차세대 FCEV는 올해 서울모터쇼에서 공개한 FE 연료전지 콘셉트카를 바탕으로 양산화한 모델이다. 자료에 따르면, 차세대 FCEV는 이전보다 향상된 시스템 효율, 동급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향상된 성능, 핵심부품 일관 생산체계 구축으로 확보한 가격 경쟁력, 개선된 저온 시동성 및 내구성 등이 특징이다. 이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현대가 개발한 FCEV 관련 기술이 한층 더 발전한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에 좀처럼 손대지 않는 현대가 당장 시장에서의 파급력이 적은 FCEV에 꾸준히 투자하고 개발하는 것은 세계랠리선수권(WRC) 등 국제 모터스포츠에 투자하는 것과 더불어 무척 이례적이다.

현대는 친환경차 시장과 기술 흐름의 중심이 빠르게 전기차(EV)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FCEV를 포기하지 않는 업체들 중 하나다. 형식적으로나마 ‘세계 최초’ 타이틀을 내걸 수 있는 FCEV 양산을 한 것을 비롯해, 2세대 투싼을 바탕으로 내연기관 양산차에 준하는 특성을 갖춘 차를 내놓는 것도 FCEV 전용 모델을 판매하는 토요타와 혼다와는 다른 현대만의 독특한 점이다. 이번에 선보인 현대의 차세대 FCEV 역시 차세대 싼타페와 많은 부분을 공유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다른 친환경차 라인업에서도 알 수 있듯, 내연기관 양산차와 공유하는 부분을 늘리면 규모의 경제를 갖춰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FCEV를 좀 더 현실적인 차로 만들겠다는 계산을 읽을 수 있다.

HYUNDAI MOTOR’S NEXT-GEN FUEL CELL SUV PROMISES RANGE AND STYLE

최소한 자동차 주행 관련 기술 중심의 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FCEV는 이상적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FCEV는 내연기관처럼 연료를 태우지 않고, 연료의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일으켜 자동차가 달리는 에너지로 쓴다. 간단히 말하면 자가발전 전기차인 셈이다. 주행 중 유해 배기가스를 내놓지 않는 것은 물론, EV처럼 오랜 시간 충전하지 않고도 장거리를 달릴 수 있으며 배터리가 크지 않아도 되므로 시스템이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가 줄어 실내 공간과 에너지를 EV보다 좀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연료라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넓은 범위의 FCEV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이론적 장점들이다. FCEV의 장점이 제 역할을 하려면 연료를 저렴한 값에 소비자가 접근하기 편한 곳에서 공급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먼저 성립해야 한다.

그러나 FCEV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점차 시장에 경쟁력 높은 EV가 다양해지고 생산량이 늘면서 시장에서 차지하는 몫이 늘어났고, 그 사이에 착실하게 준비한 업체들이 앞으로 몇 년 안에 상품성과 가격경쟁력을 모두 갖춘 차들을 쏟아낼 예정이다. EV보다 일찍 주목을 받았지만 여러 문제가 발목을 잡았던 FCEV에 대한 관심도 그에 비례해 빠르게 줄고 있다. 특히 현재 FCEV용 연료의 주류이면서 가장 이상적인 연료로 여겨지는 수소는 기술적 한계가 장점을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생산과 공급, 충전 인프라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번에 현대가 차세대 FCEV를 공개한 것은 쫓기듯 서두른 인상을 준다. 세계적 규모의 모터쇼나 자동차 관련 국제회의를 활용해 알리는 대신 국내에서 독립된 행사를 통해 공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도자료 내용을 보면 한 번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로 국내 기준 580km 이상이라는 수치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를 목표치라고 한 데에서 아직 적절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차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반 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공식 출시될 무렵에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집어 차세대 FCEV만 이야기하면, 굳이 이번 행사를 통해 미리 공개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현대차 차세대 FCEV 발표에 앞서, 현대모비스는 FCEV 파워트레인 연료전지 통합모듈 양산을 위한 공장을 신설하고 시험가동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 공장에서 생산할 통합모듈은 연간 3,000대 규모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모듈이 전량 현대차로 공급된다고 가정하면, 현대차의 연간 FCEV 생산량도 그와 같은 수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수요에 따라 증설이 가능하다고는 해도, 당분간 양산 규모가 빠르게 커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핵심 서플라이어까지 양산 체제를 갖춘 이상, 현대는 당분간 FCEV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2017 Tucson Fuel Cell

외국에서는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치료 가능한 의술이 발달할 때까지 몸을 냉동보관하기를 원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례가 있다. 그들이 냉동한 몸을 무사히 해동하고 불치병까지 치료할 수 있는 시기가 언제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그만큼 의술이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자신을 맡길 뿐이다.

이상적이지만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쳐 있는 수소 FCEV도 언젠가 충분한 기술과 환경이 뒷받침되면 경쟁력을 갖춰 널리 보급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정말 지금 당면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래 기술과 시장을 선점한다는 의미로 현대가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수소 FCEV가 막연한 미래를 위한 투자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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