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1월 26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10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서울 청담동에 메르세데스-AMG 라운지가 문을 열었다. 국내 판매가 늘고 있는 메르세데스-AMG 모델을 매장이 아닌 곳에서 좀 더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였다. 행사장에는 한 눈에 보아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빨간색 올드 메르세데스-벤츠 경주차도 함께 전시되었다. 메르세데스-AMG(이하 AMG)가 처음 모터스포츠를 통해 이름을 알린 300 SEL 6.8 모델로, 오랜 역사와 고성능에 대한 집념을 상징하는 차로서 세계 주요 AMG 관련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이번 AMG 라운지 행사가 AMG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어 독일에서 특별히 가져온 덕분에 국내에서도 볼 수 있었다.
AMG가 소규모 튜닝업체로 문을 연 것은 1967년의 일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만들기를 시작한 회사도 있었다. 바로 현대자동차다. 물론 AMG와 현대차는 직접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차이가 크다. AMG는 고성능과 특별함이라는 성격이 뚜렷한 브랜드로 메르세데스-벤츠를 거느리고 있는 다임러의 자회사이고, 완성차보다 메르세데스-벤츠 고성능 모델 개발과 모터스포츠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러나 현대차는 전체 매출에서 완성차 판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50퍼센트가 넘고, 세 개의 핵심 브랜드를 중심으로 소형 승용차에서 대형 상용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만들어 파는 종합 자동차 회사다. 규모 면에서도 AMG 모델 판매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2016년이 되어서야 연간 10만 대 수준에 이르렀다. 반면 현대차그룹이 같은 기간 판매한 차는 788만 대(현대+기아)에 이른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두 회사의 단순 비교가 아니라 창립 50주년에 두 회사가 부여하는 의미와 태도다. AMG는 지금까지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바탕으로 소비자와 팬들에게 자신들의 강점과 앞으로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이미 창립 45주년을 맞은 2012년에 ‘AMG 퍼포먼스 50’이라는 전략을 발표하면서 50주년이 되는 올해까지 전개할 제품 확장과 재정비 계획을 알리고 실천해 왔다. 아울러 독자 개발 완성차인 AMG GT 시리즈를 선보이는 한편 올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는 기념 모델인 프로젝트 원(ONE)을 발표했다. 프로젝트 원은 포뮬러 원(F1) 출전을 통해 쌓은 경험과 기술을 일반 도로 주행이 가능한 차에 옮겨놓는다는 아이디어를 구현한 것이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AMG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상징성을 고루 가진 차로서 의미가 크다. 이처럼 AMG는 창립 50주년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하고 소비자 충성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았다.
그런데 현대차가 50주년을 맞는 모습은 어떤가. 올해 초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회장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을 통해 미래 50년을 향한 재도약의 원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로 창립 50주년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국내에서의 여론 악화, 해외에서의 실적 부진 등 악재들이 수두룩한 탓에 축하하고 기념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창립 50주년이 지닌 상징성은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크다. 현대차는 국내는 물론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도 후발주자에 속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역사가 50년이나 되었다는 것은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부침이 심한 시기에 살아남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회사임을 보여준다. 게다가 생산규모 면에서도 훨씬 더 긴 역사를 지닌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었다. 충분히 50년 된 회사임을 내세울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뜻이다.
물론 국내 시장에서 오랫동안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은 현대차가 분명히 새겨두어야 할 점이다. 비난 여론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들은 현대차에게 있어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창립 50주년은 그와 같은 흑역사를 과거로 지나 보내고 다시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좋은 기회가 아닌가. 그와 같은 선언의 바탕으로 처음 차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기울였던 노력과 초심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제품과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에게 알리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나마 현대차가 올해가 갖는 상징성을 완전히 잊고 있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모습도 있기는 하다. 11월 18일에 있었던 현대 헤리티지 라이브는 현대차의 과거 그리고 현대차 창립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과 문화를 돌아보는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국내 자동차 산업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국내 1위, 글로벌 상위권 자동차 업체로 성장하는 과정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미가 크고 기억해둘 일이다. 자화자찬으로 끝나지만 않는다면, 현대차 뿐 아니라 우리나라 자동차 발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이어져도 좋을 행사다. 또한, 국내에 새로운 고성능 브랜드인 N을 처음 소개할 신형 벨로스터의 출시도 머지않다.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N 브랜드 출범이 창립 50주년과 때를 같이 한다면 의미는 더욱 클 것이다.
회계에서는 부채도 자산에 포함한다. 한편으로는 갚아야할 빚이지만, 외부로부터 가져온 자금은 이익추구 즉 회사의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기도 하다. 기업의 역사나 전통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내세울 것 없어도,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흑역사라도 미래를 위해 끌어안고 가야할 부채나 다름없다. 부채는 갚으면 된다. 이제 현대차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쌓아온 것들을 돌아보고, 소비자들이 현대라는 브랜드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자기반성과 앞으로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목소리를 크게 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