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Country skin – 피아트 500X 크로스 플러스

[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8년 2월호 동계올림픽 특집 ‘Cross-Country skin_Are You Ready?’ 피처 기사에 포함된 글의 원본입니다. 소형 크로스오버 AWD 세 모델 – 메르세데스-AMG GLA 45 4매틱, 미니 컨트리맨 쿠퍼 S 올4, 피아트 500X 크로스 플러스 – 을 몰고 강원도 태기산 오프로드에 도전한 이야기입니다. ]

피아트 500X는 도시형 CUV를 표방하지만, 막상 도시에서 쓰려면 포기해야할 것이 많다. 특히 디젤 모델은 더 그렇다. 스티어링 휠을 돌릴 때 팔에 힘이 제법 들어가고, 둔한 가속감은 정지선에 서 있다가 출발할 때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통통 튀는 승차감은 500에 없는 묵직함까지 더해져, 차가 그리 크지도 않은데 다루기는 영 부담스럽다. 500X의 의외성은 도시에서 다가오는 그런 불편함이 도시를 벗어나면 별로 신경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울을 벗어나 긴 시간을 달려 도착한 태기산 초입부터 500X는 불편한 차에서 쓸 만한 차로 변신했다. 가장 높은 최저지상고, 높은 좌석이 만들어내는 넓은 시야, 거친 노면에서 차를 다루기에 적당한 승차감과 스티어링 반응. 마치 타고난 오프로드용 차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18인치 휠에 끼워진 타이어는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3. 그렇다. 사계절용도 아닌 여름용, 그것도 적당히 달궈져야 접지력을 살아나는 고성능 타이어다. 아주 춥지는 않아도 눈이 제법 쌓인 산길에 들어선 것부터가 도박이다. 크로스컨트리 전용 노르딕 스키를 신어도 모자랄 판에, 활강용 알파인 스키를 신고 나온 격이니 달리 할 말이 없다. 제대로 된 윈터 타이어를 끼운 미니 컨트리맨과 비교하면 엄청난 핸디캡이지만, 지상고도 낮고 험로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쓴 메르세데스-AMG GLA 45보다는 형편이 낫다. 어쨌든 원래 목표로 했던 ‘누가누가 잘하나’ 개념은 일찌감치 접었다. 이런 길, 이런 상황에서는 빨리 달리려고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풍력발전기 사이로 난 길은 눈이 제법 쌓여 있다. 윈터 타이어를 끼운 미니 컨트리맨을 앞세우고 500X와 GLA 45 순서로 뒤를 따랐다. 눈길에 들어서기 전, 기어 레버 뒤쪽에 있는 무드 셀렉터 다이얼을 돌려 주행 모드를 트랙션으로 바꾼다. 트랙션 모드를 고르면 액셀러레이터 반응이 무뎌지고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2단 기어부터 시작한다. 간단히 말해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모드다. 나머지 두 개 모드(스포츠, 오토) 중에서 스포츠 모드는 이런 곳에서는 쓸 일이 없다.

자동변속기는 기어 단수를 아홉 개로 잘게 쪼개 놓았고, 1단 기어비가 꽤 크다. 유난히 초반 가속이 더딘 이유다. 오프로드 주행을 고려해 만들었지만 값 때문에 저속 기어를 따로 두지 않는 차들에서 쓴히 쓰는 방식이다. 엔진이 느리게 돌 때에도 큰 토크를 내는 디젤 엔진에 큰 초반 기어비, 트랙션 모드까지 합세를 한 덕분에 500X는 슬금슬금 미끄러운 언덕을 잘 올라간다. 변화무쌍한 노면 상태에 간간이 차체 앞뒤가 좌우로 흐느적거리기는 해도, 정신 바짝 차리고 액셀러레이터로 바퀴 회전을 유지하면서 스티어링 휠로 움직임을 바로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평소에 앞바퀴를 굴리다가 필요할 때 뒷바퀴로 구동력을 최대 50퍼센트까지 보낸다. 실제로 겪어보니 오르막보다 내리막에서 차체 움직임을 바로잡을 때 더 유용하다. 

날이 아주 춥지 않아 약간 슬러시처럼 변한 언덕에서 GLA 45가 룸미러에서 사라지며 가장 먼저 리타이어했다. 조건상 핸디캡이 가장 큰 만큼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500X의 핸디캡도 만만찮지만, 의외의 선전에 좀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몇 백 미터쯤 완만한 오르막을 기어갔을까. 계기판 가운데에 표시되는 앞뒤 바퀴 구동력 배분 상황에 신경을 쓰다가 속도를 잃었다. 아뿔싸. 미끄러운 오르막에서는 멈추면 끝장인데, 잃은 속도를 회복하려 액셀러레이터를 조금 깊게 밟았다가 바퀴가 헛돌며 500X가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보려고 애를 썼지만 오히려 올라온 쪽으로 거꾸로 미끄러지기 일쑤다. 금세 언덕길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미니 컨트리맨이 야속하게 느껴진 순간. 500X의 도전은 거기까지였다. 

비록 완주는 실패했지만, 500X가 꽤 실력 있는 크로스컨트리 선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프 레니게이드에서 지프 유전자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같은 뼈대로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500X가 가진 능력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운전대를 잡은 내 실수 탓에 가진 능력이 제대로 펼쳐 보이지 못한 것이 차에게 미안하고 아쉬웠다.

종합적으로 상품성을 따지면 500X에게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형편없는 차는 아니다. 이번 크로스컨트리 도전에서 보여준 모습만 봐도 그렇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새차를 다시 만날 일이 거의 없으리라는 사실이 유난히 아쉬운 이유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