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쌍용 코란도 투리스모

[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8년 3월호 ‘New Comer’ 꼭지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코란도 투리스모의 생존비법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구성에 있다. 미니밴이라기보다 다인승 SUV에 가까운 성격으로 나름의 틈새시장을 꽉 잡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틈새가 좁아도 아주 좁고, 여기저기 계속 손을 보더라도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근본적인 특성은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말로 체어맨 W 생산이 끝나면서 쌍용자동차 제품 라인업은 SUV와 MPV로 정리되었다. 20년 동안 쌍용의 이미지 리더로 상징적 의미가 컸던 대형 세단의 명맥이 끊어진 것은 아쉽지만, 그 덕분에 쌍용이 SUV 전문 브랜드로 정체성이 뚜렷해진 것은 한편으로 잘 된 일이다. 쌍용은 기왕 이렇게 된 것, 앞으로 티볼리, 코란도, 렉스턴의 세 개 서브 브랜드를 축으로 라인업을 이끌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SUV가 대세인 요즘, SUV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된 쌍용이 좀 더 알찬 제품 구성과 더불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간절한 기대는 그렇다 치자. 자동차 회사가 잘 되려면 차가 잘 팔려야 하고, 차가 잘 팔리려면 소비자가 지갑을 선뜻 열고 싶을 만큼 매력이 있어야 한다. 잘 팔리는 차의 공통점을 보면 종합적인 값 대비 가치 또는 상품성이 뛰어나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살아남는 차들은 있다. 다른 차에는 없는 특징이 설득력을 갖는 차들은 틈새시장을 차지하고 입지를 다진다. 쌍용 라인업에서는 티볼리가 전자, 렉스턴 스포츠가 후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쌍용이 틈새시장을 노리고 만든 또 하나의 모델, 코란도 투리스모는 어떤 생존비법을 갖고 있는 걸까?

일단 누가 뭐래도 특이한 개념의 차라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코란도 투리스모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는 차다. 쌍용에게는 불편한 이야기겠지만, 코란도 투리스모는 이미 잘 알려져 있듯 2004년 로디우스라는 이름으로 생을 시작해 여러 차례의 개선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13년에 새 이름을 얻고 새 삶은 시작한 지도 어느덧 5년. 다시금 페이스리프트하며 끈질기게 쌍용 유일의 MPV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덕분에 뒷바퀴 굴림 플랫폼을 바탕으로 네 개의 스윙도어를 갖춘 차체, 9인승과 11인승이 있는 4열 좌석구성이라는 독특한 조합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거기에 11인승 기본 모델을 빼면 저속기어까지 포함된 파트타임 4륜구동 시스템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틈새차종 중에도 독보적인 구성이다.

근본적인 틀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지만,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겉모습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앞모습만큼은 계보를 통틀어 가장 완성도가 높다. 좀 더 입체적으로 다듬었다면 새차 느낌이 더 뚜렷했겠지만,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을 정돈한 것만으로도 이전만큼 어색해 보이지 않는 효과를 얻었다. 새로 들어간 18인치 휠도 하체가 빈약해 보이는 느낌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

실내는 상대적으로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유행이 지난 센터 클러스터 방식 계기판을 비롯해 일관성이 떨어지고 투박해 보이는 장비 배치도 그대로다. 다만 스마트폰 미러링 기능이 추가되어 편의성이 높아진 것을 비롯해 기본적인 편의장비는 잘 갖추고 있다. 실내등도 모두 LED 램프를 써서 분위기가 환하다. 페이스리프트 직전에 새로 적용되기 시작한 1열과 2열의 듀얼 플렉스 시트는 앉았을 때의 느낌이 확실히 편안하고 공간도 비교적 여유가 있다. 단, 3열과 4열 좌석을 쓰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9인승인 시승차도 3열과 4열 좌석은 여전히 비좁고, 덩치와 무게가 상당해서 밀고 당기거나 접기가 부담스럽다. 평평한 실내 바닥은 미니밴의 특징적 요소이지만 높이는 프레임 구조를 쓴 SUV에 육박하기 때문에 승하차 편의성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큰 덩치와 무게를 고려하면, 2.2리터 디젤 엔진은 의외로 비교적 무난한 성능을 낸다. 비교적 낮은 회전영역에서 고르게 최대토크를 내도록 조율한 덕분이다. 실내에 있는 아홉 개의 좌석을 사람으로 가득 채우지 않는다면 느긋하긴 해도 속이 터질 정도로 가속감이 답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티볼리를 제외한 쌍용 모든 라인업에 쓰이는 엔진인 만큼 유지관리 부담이 적은 것도 나름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7단 자동변속기의 변속감은 부드러운 편이고, 고속도로에서 정속주행 때 비교적 낮은 회전수가 유지되도록 기어비가 구성되어 썩 실망스럽지 않은 수준의 연비를 보여준다. 주행감각을 간단히 말하면 간단히 말하면 키 크고 무거운 체어맨을 모는 느낌이다. 스티어링은 반응이 약간 더디기는 해도 회전감각이 고르고, 승차감도 거친 구석 없이 부드러운 가운데 비교적 중심을 잘 잡는 편이다.

시승 당일 갑자기 쏟아진 눈이 아니었다면, 코란도 투리스모의 백미라 할 수 있는 4륜구동 시스템의 진가를 잊고 넘어갈 뻔했다. 반쯤 교통이 마비된 서울 시내를 벗어나는 동안은 물론이고, 4륜 저속 모드의 도움을 받아 짧게나마 서울 근교의 눈 덮인 비포장 산길도 달릴 수 있었다. 아주 드문 경우겠지만, 사람을 9명 이상 태우고 겨울 오프로드를 달릴 일이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11명을 태울 수 있는 현대 그랜드 스타렉스 4WD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실제 사용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험로 탈출에 도움을 주는 저속 기어는 코란도 투리스모에만 있고, 승차감의 편안함과 실내의 조용함 차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뭐든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

이렇게 보면 코란도 투리스모는 미니밴이라기보다는 다인승 SUV 개념에 더 가까운 차다. 로디우스 시절에는 두드러지지 않던 특성이 시간이 흐르고 코란도 투리스모가 되면서 뚜렷해진 셈이다. 판매량이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팔리는 이유는 그런 특성을 가진 차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런 사람이 소수라는 것이 코란도 투리스모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가져가야할 숙명이고 한계다. 쌍용은 그랜드 카니발에 4륜구동 모델을 더하지 않고 있는 기아자동차에게 감사해야 한다.

코란도라는 이름은 쌍용의 지금이 있게 만든 쌍용의 간판 브랜드다. 그만큼 의미와 가치가 크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쌍용에게 ‘지금 코란도 투리스모에게 주어진 역할은 코란도라는 브랜드에 합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답변이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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