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터트렌드 한국판 2018년 4월호 ‘나의 다음 가족 차는?’ 피처 기사에 포함된 글의 원본입니다. 두 자녀가 있는 부부가 쓰는 차를 고려해, 충분한 여력이 있다면 고를만한 차를 꼽아 봤습니다. ]

아내와 나의 자동차 취향은 무척 다르지만, 교집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큰 차는 큰 차답고 작은 차는 작은 차다워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같다. 달리 말하면 큰 차는 클수록 좋고, 작은 차는 작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물론 각자 선호하는 특성은 정반대다. 아내는 큰 차를, 나는 작은 차를 더 좋아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들, 이제 돌을 앞둔 딸이 점점 더 커나갈 일을 생각하면, 거의 혼자 타고 다니는 내 차는 그대로 두더라도 가족용으로 쓰는 아내의 차는 좀 더 크면 좋겠다는 것이 지금 우리 가족의 솔직한 현실이고 바람이다. 게다가 차에 대한 취향은 엄마를 닮은 아들 녀석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우리 부부의 취향대로 가족용 차는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그렇다고 쓸데없이 45인승 버스를 덜컥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적당한 크기로 다루기 아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온 가족이 함께 타고도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 여유까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미니밴은 왠지 답답한 이미지여서 싫고, 모는 사람보다 차에 타는 다른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분이어서 영 내키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 만큼 자연에 푹 파묻혀 살고 싶은 생각이 있는 만큼, 아내와 나 모두 험로 주행도 너끈히 해낼 수 있는 4륜구동 SUV에 마음이 더 동한다. 이 정도 조건만 놓고 생각해 봐도 우리 가족이 꿈꾸는 차는 실용성 높은 대형 SUV로 간단히 정리가 된다.
잠깐의 고민 끝에 정한 유력 후보(라고 쓰고 희망사항이라고 읽는다)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다. 지난해 새 모델로 완전히 탈바꿈한 새 모델 정도면 네 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가족에게는 차고 넘치는 차가 될 것이다.
사실 아내는 구형 디스커버리의 투박하고 각진 모습을 더 좋아한다. 나도 마찬가지기는 하다. 다만 아내는 인상이 날렵해진 새 디스커버리에 손사래를 치는 반면, 나는 못마땅하긴 해도 봐줄 만은 하다는 의견이다. 생김새는 생김새대로 중요하지만, 일단 내 차가 되고 난 다음에 더 중요한 것은 외모보다는 내면이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의 실내는 첨단과 전통이 공존한다. 여러 기능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쉽게 찾아 조절할 수 있으면서도, 보고 쓰기에 신선한 느낌을 줄 만한 요소들이 많이 있다. 간결하고 단정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내장재는 아이들의 손때를 묻히기에는 조금 아까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새 디스커버리는 이전 세대 차들과 비교하면 운전하기가 편해졌고 승차감도 꽤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아내에게 운전을 맡겨도 특별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내 공간이 넉넉하다는 선대 모델들의 장점은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는 점이다.
주로 아이들이 타게 될 2열 좌석은 좌석 크기도 적당하고 아이들을 챙기기에도 공간이 충분하다. 크게 열리는 도어 덕분에 둘째를 어린이 안전좌석에 앉히기도 편리할 테고, 답답하다는 첫째의 투정도 이전보다는 훨씬 덜 할 것이다. 한창 모바일 게임과 인터넷 동영상에 빠져 있는 녀석에게는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USB 포트가 아빠 엄마의 잔소리를 잊게 만드는 도우미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다.
3열 좌석은 정말로 사람을 태우기보다는 짐을 싣는 용도로 주로 쓰게 될 것이다. 이전보다 접고 펴기 편리한 것은 물론 바닥 높이도 그리 높지 않아서 유모차나 장바구니, 캠핑장비 같은 것들을 싣기에 썩 부담스럽지 않다. 3열 좌석 자체도 간이형이라기에는 제법 제대로 된 형태여서, 아이들끼리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써먹기에도 좋다.
아내가 주로 몰 차로 디스커버리를 먼저 떠올린 큰 이유 중 하나는 터레인 레스폰스 시스템이다. 아내는 운전을 좋아하기는 해도 오프로더를 몰아본 경험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이든 캠핑이든 가족이 함께 먼 길을 떠날 일이 있다면 좀 더 안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능이 많기를 바란다. 터레인 레스폰스 시스템 정도면 길 위에서 닥치는 웬만한 문제들은 차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아내에게 운전을 맡겨도 그 정도면 특별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뜻 고르기는 망설여진다. 그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몰아본 다양한 랜드로버 차들이 대부분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모델이 바뀌면서 나아지는 점들도 있기는 하지만, 전자장비와 관련된 고장은 거의 모든 시승차에서 겪었던 기억이다. 사막 한가운데 갖다 놔도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브랜드가 랜드로버인데, 과연 실제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우리 가족을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로 디스커버리를 사게 된다면 뽑기 운이 좋기를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내가 고민했던 다른 가족차
1.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아내가 좋아하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크고 각지고 우람하게 생긴 차’의 끝판왕이다. 좌우가 분리된 독립식 뒷좌석에 두 아이를 앉히면 나머지 공간에는 오지에서 며칠은 캠핑할 수 있을 정도의 짐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럴 일은 별로 없겠지만. 그러나 고급 브랜드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내장재와 조립 마무리, 노면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승차감 같은 것들이 선택을 꺼리게 만든다. 결정적으로 차 덩치가 이쯤 되면 어디 세워두기가 곤란하고 민망하다. 난 반댈세.
2. 볼보 V90 크로스컨트리

이쪽은 내 취향을 좀 더 반영한 선택이다. SUV는 아니어도 웬만한 정통 SUV 못지않은 짐 공간과 수납공간, 4륜구동 시스템의 험로 주파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SUV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안정감과 민첩함도 지니고 있어 잘 포장된 길에서는 모는 맛도 제법 쏠쏠하다. 특히 튼튼한 설계와 첨단 ADAS 기능이 뒷받침하는 안전성은 가족용 차로서 가장 마음을 끄는 점이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을 위한 차로 쉽게 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서로 몰겠다고 아내와 나 사이에 싸움이 날까봐. 다른 하나는 제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3. 페라리 GTC4 루소

네 명이 탈 수 있고, 어린이 안전좌석도 달 수 있고, 그러면서 트렁크에 짐도 실을 수 있고, 4륜구동이어서 사계절 쓸 수 있고, 성능은 끝내주고, 실내는 화려하고, 승차감은 페라리치고는 편안하고, 내키면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 쏠 수도 있고. 이건 좀 심하지? 이건 좀 심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