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엘 2018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강력하고 빠른 페라리 488의 더 강력하고 더 빠른 버전, 488 피스타가 나왔다. 표현은 단순하지만, 페라리가 성능향상을 위해 들인 노력은 단순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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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부드럽고 정확하지만 순식간에 줄어든 차의 속도에 굵은 탄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찰나, 커브를 힘차게 빠져나가며 한쪽으로 쏠리는 힘에 버티려는 몸은 소리의 통로를 바꿔버렸다. 이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호흡은 가는 콧소리가 되어 나왔다. 아마도 그 신음 소리는 실내를 울리는 엔진 소리에 가려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는 페라리 테스트 드라이버의 귀까지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반석에 앉은 내 반응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는, 역시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지금 달리고 있는 코스를 설명한다. “여기서는 약간 넓게 돌고, 여기서 다시 가속을 해요. 이제 저 건물을 바라보고 브레이크를 밟은 다음 스티어링 휠을 크게 돌리고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요.” 서킷에서 레이서나 테스트 드라이버가 모는 차에 동승한 경험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숨 쉴 여유도 없이 몰아치듯 달리는 차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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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첫 경험이다. 개인적으로는 엔트리 모델인 포르토피노에서 최신 F1 경주차에 이르는 모든 페라리의 시험주행 코스로 쓰이는 이탈리아 마라넬로의 피오라노 서킷을 달리는 것도 처음이고, 전력질주하는 488 피스타에 탄 것도 처음이다. 심지어 페라리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488 피스타를 직접 몰아보는 것도 나를 포함해 이번 행사에 참가한 극소수 기자들에게 주어진 첫 기회다. 488 피스타는 불과 며칠 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페라리의 최신 모델이다. 여러 면에서 첫 경험인 만큼 전에 없던 놀라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놀라움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불과 한 시간쯤 전에 마라넬로 주변 일반 도로에서 차를 직접 몰고 달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주행감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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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 특유의 절제된 움직임과 힘 좋은 엔진을 달래가며 차를 다루는 조심스러움이 있기는 해도, 일반 도로를 달리는 488 피스타는 스포츠카로서는 꽤나 편안한 차였다. 고성능 차는 불편하다는 방정식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점점 옛날 이야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테스트 드라이버가 모는 488 피스타는 전혀 딴판이었다. 동승을 마치고 차에서 내릴 때 ‘어땠느냐’고 묻는 페라리 관계자의 말에 “이건 완전히 경주차다”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차가 주는 느낌이 그랬고, 그런 차로 만들어졌으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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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피스타라는 차의 성격은 그 이름으로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앞의 숫자 488은 2015년 데뷔한 488 GTB에서 가지쳐 나온 모델임을 뜻하고, 뒤의 피스타(Pista)는 영어로 트랙 즉 경주를 위해 만들어진 길을 뜻하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 경주차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된 488이 바로 488 피스타인 것이다. V8 엔진을 탑승 공간 뒤에 올린 양산 모델을 먼저 내놓고 그 차의 성능을 높인 고성능 버전을 더하는 것은 페라리가 여러 세대에 걸쳐 해왔던 일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전 세대 모델인 360, F430, 458 모두 그와 같은 고성능 버전이 있었다. 그리고 기본 모델을 바탕으로 경주차를 만들고, 경주에 투입해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반 도로용 고성능 버전을 완성하는 과정도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잊혀지거나 가볍게 여겨지기는 해도, 페라리는 모터스포츠가 중심인 회사다. 양산차 개발 과정에서도 모터스포츠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488 피스타도 모터스포츠가 낳은 산물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488 GTB를 GT 레이스 출전용으로 만든 488 GTE와 원메이크 레이스용으로 만든 488 챌린지는 488 피스타 탄생에 필요한 노하우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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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쉽게 숫자부터 살펴보자. 488 피스타의 심장인 V8 3.9리터 트윈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이 720마력이다. 바탕이 된 488 GTB에 쓰인 것과 기본 설계는 같으면서도 최고출력은 무려 50마력 높아졌다. 기본적으로 같은 엔진이 이처럼 획기적으로 성능이 높아지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50마력이라는 간단한 수치 차이를 얻어내기 위해 이루어진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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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엔지니어들은 엔진 블록만 남겨둔 채 거의 모든 엔진 부품을 살피고 손봤다. 실제로 488 피스타의 엔진은 절반 이상의 부품이 488 GTB의 것과 다르다. 엔진 내부의 기계적 저항과 마찰을 줄였고, 여러 부품에 첨단 소재를 써서 크기와 무게를 줄인 덕분에 엔진 자체 무게만 18킬로그램이 가벼워졌다. 또한, 효율적 연소를 돕기 위해 흡기 계통과 터보차저 회로를 중심으로 공기흐름을 최적화했다. 이처럼 여러 부품과 요소에 이루어진 크고 작은 변화들이 한데 어우러진 덕분에, 엔진은 운전자의 액셀러에이터 조작에 훨씬 더 빠르게 반응하고, 가속은 이전보다 더 치밀하고 힘차게 이루어진다. 배기계통을 손질하면서 배기음도 488 GTB보다 조금 더 자극적이고 또렷해져, 가속의 짜릿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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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력하고 더 빠르게 반응하는 엔진이 제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차체 여러 곳에 탄소섬유와 첨단소재를 써서 가볍게 만드는 한편, 공기역학 특성도 개선했다. 일례로 차체 옆면 공기흡입구는 엔진으로 흘러들어가는 공기를 식혀 엔진 힘을 키우는 인터쿨러의 냉각능력을 키워준다. 그리고 인터쿨러를 식히면서 온도가 높아진 공기는 뒤 스포일러 양옆으로 난 공기배출구로 빠져나와 인터쿨러가 더 빨리 식도록 돕는다. 눈으로 보기에 디자인의 변화처럼 여겨지는 부분들은 모두 성능향상을 돕고 있다. 전체적인 차의 전체 형태가 만들어내는 공기역학 특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기능적 요소들만 강화한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절대적인 속도뿐 아니라 서킷에서 랩타임을 줄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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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해도 좀처럼 달라진 것들이 주는 영향이 와 닿지 않는 분들을 위해 다시 숫자를 꺼내본다. 488 피스타는 작은 변화만으로 공기역학 효율이 488 GTB보다 20퍼센트 개선되었고, 488 GTB보다 90킬로그램 가벼워진 몸으로 정지 상태에서 2.85초 만에 시속 100킬로미터, 7.6초 만에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은 0.15초 짧아졌지만, 시속 200킬로미터 가속시간은 0.7초나 끌어내렸다. 물론, 숫자만 놓고 본다면 미미한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직접 차를 몰아보기 전까지는 아주 가볍게 여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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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숨을 고르고 나서 헬멧을 쓰고 488 피스타의 운전석에 앉아 피오라노 서킷으로 차를 몰고 들어섰다. 엔진을 덥히는 웜 업 랩과 식히는 쿨 다운 랩을 빼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것은 단 두 바퀴. 차근차근 페이스를 높여 한 바퀴를 돌고 긴 직선 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순식간에 엔진 회전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스티어링 휠 위의 지시등과 시시각각 눈앞에서 달라지는 트랙을 번갈아 보기 위해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인다. 움직이기 바쁘기는 스티어링 휠 뒤의 변속 패들을 조작하는 손도 마찬가지다. 회전수가 높아질수록 강렬해지는 배기음이 정해진 톤에 이를 때 윗단으로 변속하기 위해 움직이는 오른손보다 커브에 가까이 다가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움직이는 왼손이 훨씬 더 다급하다. 테스트 드라이버가 몰 때만큼 빠르지는 않아도, 이어지는 커브들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처럼 휙휙 다가왔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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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 엔진이면서도 마치 자연흡기 엔진처럼 매끄러운 반응은 모든 회전수 영역에서 부족함이 없다. 어느 한 순간도 힘이 빠지는 기색 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만큼 등을 떠미는 가속감은 무서울 정도다. 빠르고 탄탄한 가속감이 일품인 488 GTB와 비교해도 한층 더 치밀하고 자극적이다. 차를 한계까지 몰아 붙이지 않고도 3킬로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서킷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 30초가 채 되지 않는다. 빈틈 없는 성능을 발휘하는 엔진, 지치지 않는 브레이크, 흐트러지지 않은 몸놀림에서는 경주차의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차이가 있다면 승차감은 탄탄하기는 해도 여전히 나긋함을 잃지 않고, 땀이 흐르면 에어컨도 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은 조작 실수는 SSC 6.0 전자제어 주행안정 시스템이 바로잡아주니 안심하고 성능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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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를 달리는 경주차라는 표현은 이제 여러 자동차 업체가 흔하게 쓰고 있다. 그러나 페라리가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결코 허세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사실이고, 실제로 일반 도로와 서킷 을 모두 달려보면 금세 수긍할 수 있다. 짧은 경험에서 조차 488 피스타가 보여준 주행감각의 무지개는 한층 더 색깔이 짙고 폭이 넓었다. 488 피스타는 지금까지 나온 8기통 페라리 중 차를 모는 즐거움, 특히 페라리를 모는 즐거움의 크기와 영역이 가장 넓은 차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