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배우는 생존의 법칙

[ 2018년 7월 2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지난 4월, 포드는 올해 1분기 실적발표에서 앞으로 수 년 내에 북미에서 판매하는 승용차 포트폴리오를 두 차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포드는 이미 지난해에 전체 제품군에서 승용차 비중을 줄이고 크로스오버 카와 트럭 부문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 이번에 그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항을 밝힌 것이다.

포드는 보도자료를 통해 ‘소비자 수요와 제품 수익성 감소를 고려해, 북미 시장에 전통적 포드 세단의 다음 세대 모델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2020년까지 북미 시장 포드 제품 포트폴리오의 약 90퍼센트가 트럭, 다목적 차, 상용차로 채워지고 승용차는 스포츠카 머스탱과 내년 출시 예정인 소형 크로스오버 해치백인 포커스 액티브만 남는다.

이와 관련해 미국 자동차 전문 월간지 ‘카 앤 드라이버’ 편집장 에디 알터먼은 ‘포드가 승용차를 없애는 이유에 관한 의견(Why Ford Is Killling Its Cars: A Thoery)’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포드의 제품 정책 변화를 비판했다.

요점은 포드가 2000년대 후반 경영난 이후 브랜드 정리와 단순화 과정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떨쳐내는 대신 포드 세단의 값을 지나치게 높게 끌어올린 것이 판매와 수익성 감소의 핵심 원인이고, 원인을 신중하게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신 크로스오버 카와 픽업 트럭에 집중하는 것은 제품군의 유연성을 떨어뜨려 또 다른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연료가격, 기업평균연비 제도, 경기, 제품 자체의 발전과 같은 요소들이 변화한다면 포드가 다시금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칼럼을 읽고 크게 공감하면서, 그와 같은 지적이 포드 뿐 아니라 미국에 뿌리를 둔 자동차 업체 모두가 당면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드는 물론이고 GM과 더불어 크라이슬러를 거느리고 있는 FCA도 미국 시장에서 픽업 트럭과 크로스오버 카, 대형 SUV 등에 집중하면서 세단이나 해치백과 같은 전통적 승용차의 비중을 차츰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GM은 현재 크기에 따라 네 단계로 구성하고 있는 브랜드별 모델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더 촘촘하게 구성할 계획이다. FCA는 픽업 트럭 중심의 상용차 전문 브랜드인 램(Ram)을 강화하면서 닷지 브랜드의 존폐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FCA는 미국 기반 브랜드 중 가장 먼저 핵심 세단 시장에 포진하고 있던 크라이슬러 200/닷지 다트를 출시 3년여 만에 날려버린 바 있다.

북미 특히 미국 시장에서 세단 판매가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작아지는 속도가 금세 모델을 없앨 만큼 빠르지는 않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승용차 장르인 중형 세단의 2017년 주요 모델 판매량을 살펴보면, 토요타 캠리가 약 38만 7,000대, 혼다 어코드가 약 32만 3,000대, 닛산 알티마가 약 25만 5,000대, 포드 퓨전이 약 21만 대, 쉐보레 말리부가 약 18만 6,000대, 현대 쏘나타가 약 13만 2,000대, 기아 옵티마(K5)가 약 10만 7,000대 팔렸다.

연간 10만 대 미만이 팔린 모델을 제외하더라도 160만 대로, 2017년 미국에서 팔린 약 1,720만 대의 자동차 중 9퍼센트 남짓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 밖에 소형에서 대형에 이르는 세단, 해치백과 왜건 등 일반적으로 승용차로 분류할 수 있는 차들은 620만 대 이상 팔려 35퍼센트가 넘는 비중을 차지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0퍼센트를 거뜬히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것이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로 줄어들더라도 3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기까지도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다.

알터먼 편집장의 칼럼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 기반 자동차 업체들이 승용차 생산과 판매에서 발을 빼는 것은 수익성 말고도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제품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포드는 F시리즈 픽업이 41년째 미국 시장 판매 1위를 차지했다고 자랑하지만, 승용차 판매 1위는 1990년대 이후 줄곧 토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의 차지였다. 이미 일본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미국 출신 브랜드보다 더 미국 소비자 취향에 맞는 차를 만든 지 오래다.

2017년 판매실적을 봐도 2016년 대비 캠리는 0.4퍼센트, 어코드는 6.5퍼센트 판매가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런 숫자를 근거로 미국 업체들은 승용차 분야에서 일본 업체를 따라잡거나 넘어설 수 없으니 경쟁력 있고 수익성 높은 크로스오버 카나 대형 SUV 및 픽업 트럭에 집중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미국 업체들이 곧잘 빠지는 숫자의 오류, 숫자의 덫이다. 멀리는 1970년대 석유파동 때에도 그랬고, 가까이는 2000년대 초반 고유가 시대 때에도 그랬다. 호황기에 크고 수익성 높은 차 만들기에 집중하다가 경제적 환경변화나 국제정세 불안으로 소비성향에 변화가 생기면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위기에 빠지기를 반복한 것이 미국 업체들이다. 2000년대 후반에 있었던 금융위기 여파로 거의 몰락 직전까지 갔으면서도 아직 눈에 보이는 숫자 즉 단기 실적에 치중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인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테슬라가 특히 미국인들에게 열광적인 반응과 기대를 얻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통적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 더는 기대할 게 없어서다. 아직 제품에 부실한 면이 많고, 공언한 만큼 생산이 여의치 않아 미래가 아슬아슬하긴 해도, 테슬라는 뭔가 다르니까 기대를 하는 것이다. 

조직의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크면 움직임이 둔해지기 쉽다. 의사소통과 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뭔가 변화를 시도하려고 해도 큰 조직은 관성이 있어 조직 전체가 단번에 방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국내 자동차 판매 중 수입차의 비중이 올들어 18퍼센트를 넘어섰다. 월간 판매량은 수시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고, 월간 시장 점유율이 20퍼센트를 넘는 달도 있었다.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해 새 제품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모델 구성으로 유연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업계에서 흔히 쓰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표현은 뒤집어 보면 복불복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업체를 거울삼아,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숫자의 오류와 덫에 빠져 숫자 뒤에 감춰진 흐름을 읽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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