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면?

[ 2018년 11월 26일에 오토엔뉴스를 통해 다음 자동차 섹션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올해는 국내에서 자동차와 관련된 여러 이슈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안전과 관련한 것은 많은 사람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BMW 일부 차종에서 잇따라 일어난 화재 사고, 여러 수입 상용차 브랜드의 제품 고장 및 문제 등이 그랬고, 최근 들어 독일 콘티넨탈 ABS 모듈 부식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콘티넨탈 ABS 모듈 부식 문제는 최근 국토교통부가 관련 내용에 대한 전면 조사를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 지시한 사항이다. 문제의 원인과 책임에 관한 이야기는 조사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할 수 있겠지만, 관련 문제를 짚은 언론 보도에는 자동차 업체들이 비용 때문에 리콜이나 수리에 소극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부품을 공급한 업체와 자동차 업체는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했고, 결함 시정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제품의 불안전성을 방치한 것이 된다.

그동안 자동차 업체들이 비슷하게 제품 결함을 축소하거나 은폐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이슈에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특히 ABS 모듈을 비롯한 제동장치 관련 부품은 주행 중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자연스럽게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킨 다카타 에어백 사태를 연상하게 된다. 두 이슈의 공통점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아 쓰는 부품의 문제가 완성차를 구매한 소비자의 안전에 영향을 주는 데 있다. 완성차 업체로서는 ‘의도하지 않은 결함’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결함으로 인한 피해는 완성차 소비자가 입게 된다는 점에서 완성차 업체가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성격이 조금 다르고 외국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 소비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만한 또 다른 이슈도 있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최근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기아차의 엔진 결함과 관련해 리콜 적정성 여부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에서 2015년과 2017년에 주력 모델에 올라간 세타 2 엔진과 관련해 두 차례에 걸쳐 약 170만 대를 리콜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에 미국에서 현대기아차 여러 모델에 잇따라 화재 사고가 일어나면서 민원이 이어졌고, 소비자 단체가 나서 리콜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NHTSA는 화재 사고에서 특정한 경향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련 조사를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뉴욕 남부 연방 지방 검찰청이 담당하고 있으며 NHTSA와 협력해 진행되고 있다.

이같은 진행 상황은 국내에서 이루어진 세타 2 엔진 관련 리콜과 비슷한 면이 있다. 2017년 4월부터 약 17만 대가 대상으로 지정되어 리콜이 이루어졌지만, 리콜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민원이 잇따르자 국토부가 리콜 적정성 여부 조사에 들어간 바 있다. 그러나 당초 국토부는 2017년 9월에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했으나, 여러 차례 미뤄져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국내 리콜 이전까지 현대기아차의 공식 입장은 국내 판매 모델과 북미 판매 모델의 리콜 관련 이슈는 별개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비슷한 이슈로 비슷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양쪽에서 발표되는 조사 결과는 충분히 비교할 만한 대상이 될 것이다.

오는 11월 30일은 자동차 발전 과정에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한 책이 나온 지 53년이 되는 날이다. 그 책을 쓴 사람은 당시 30대 초반의 변호사였던 랄프 네이더였고, 그가 쓴 책의 이름은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 미국 자동차의 설계에 내재된 위험(Unsafe at Any Speed: The Designed-In Dangers of the American Automobile)’이었다. 

그는 책에서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반 세기에 걸친 자동차 업계의 ‘이익이 안전에 우선한다’는 관행을 지적했고, 이는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가 차원에서 소비자 보호와 자동차 안전에 관한 사항을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도 그의 책이 영향을 주었다. 그 덕분에 지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자동차 안전 기준을 갖고 있다.

자동차 개발과 생산의 복잡성은 종종 소비자의 이익과 권리가 자동차 제조업체의 거대한 시스템에 매몰되는 결과를 낳곤 한다. 랄프 네이더가 반 세기 동안 쌓인 자동차 산업의 부조리를 지적함으로써 많은 것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로부터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해묵은 부조리가 매일같이 자동차를 몰고 타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최근의 여러 자동차 안전 관련 이슈를 거울삼아 소비자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대처하도록 시스템과 기업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제조업체가 더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제품을 개발, 생산, 판매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물론 어떻게 개선되더라도 한계는 있다. 휘청거리거나 다른 회사와 합병하기는 했을지언정 아직 안전 관련 이슈로 망해 사라진 자동차 회사는 없었다. 소비자의 결단과 행동이 뒤따른다면, 그런 일도 과거의 것이 될 수 있다. 안전성은 자동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신뢰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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