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2025년 4월 10일에 서울 중구에 있는 크레스트 72에서 ‘현대자동차그룹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 테크 데이(Hyundai Motor Group Next-Gen. Hybrid System Tech Day)’ 행사를 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현대차그룹 개발자들이 나와 새로 개발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기술을 설명하는 한편,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처음 적용해 판매되는 현대 팰리세이드 가솔린 2.5 터보 하이브리드의 구성 요소를 비롯해 현대차그룹 계열 브랜드의 여러 모델로 확장될 기술에 대한 설명 및 실물 자료가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한 이유 중 하나는 세계 주요 시장의 전기차 판매량 증가세가 당초 예측했던 수준을 밑도는 최근 상황이 그 바탕에 있어 보입니다.
사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시장의 전기차 수용 속도를 보수적으로 예측했던 곳 중 하나입니다. 몇몇 업체들은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 2030년 또는 2035년까지 주요 시장 판매 모델을 전기차로 완전히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전동화 전환을 서두르기 위해 전기차 개발 투자를 늘리고 내연기관 개발 투자를 줄이는 전략을 택한 곳이 많았습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2021년 기준으로 현대자동차가 2040년에 주요 시장에 이어 2045년까지 모든 시장 판매 모델을 완전 전동화하는 로드맵을 발표한 데서도 알 수 있듯, 전동화에 투자를 하되 다른 업체들보다 전동화 전환을 추진하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었죠.

하지만 2023년쯤부터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했고, 많은 자동차 업체가 전략 수정에 나섰습니다. 흔히 특정 기술이나 제품의 보편화에 앞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수요 정체 현상을 뜻하는 캐즘(Chasm)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이런 현상을 기성 자동차 업체들의 전동화 전환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긴 시스템과 공급 문제가 더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특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수요는 있지만 기존 자동차 생태계가 소비자들이 전기차에 원하는 성능과 품질, 물량을 뒷받침하지 못해서 생긴 불균형의 결과라는 것이죠. 그래서 기성 자동차 업체들은 궁극적으로는 완전 전동화를 목표로 하면서도, 자신들이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완전 전동화 전환 시점을 더 먼 미래로 내다보게 된 것이죠.
따라서 주요 자동차 업체는 내연기관 또는 내연기관 기반 하이브리드 차가 시장에 남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리라는 전망 아래 투자 비율과 우선순위를 조정하기에 이릅니다. 현대차그룹도 2023년 무렵부터 그와 같은 흐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술 전략을 조정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하이브리드 모델 라인업 확대,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TMED-II) 적용,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직렬 하이브리드 시스템 전기차) 개발, 수소 에너지 전략 강화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이번에 공개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하이브리드 모델 라인업 확대의 바탕이 되면서 원가 증가는 억제하고 성능과 효율은 높임으로써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원래 내연기관에서 곧바로 전기 동력원으로 전환할 계획이었던 제네시스 브랜드 차들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번에 공개된 현대차그룹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관한 설명을 듣고 느낀 점은 ‘합리적인 비용으로 확장성과 성능, 효율을 모두 높일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상용화 기술은 특허와의 싸움이면서 시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값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기 마련인데요. 그런 점에서 길지 않은 개발 기간에 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엔지니어들의 고생이 많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특징을 알아보기에 앞서, 배경 지식이 될 수 있도록 전동화 구성요소를 구분하는 이름을 먼저 정리해 보겠습니다. 관련 기술을 설명하는 자료에서 P0, P1, P2, P3, P4로 표시되는 요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각각 어떤 성격의 요소들인지 알아두면 그와 같은 표시를 보고 바로 알 수 있겠죠.
- P0: 흔히 벨트 구동 스타터제너레이터(belt-driven starter-generator)라고 불리는 장치입니다. 엔진 외부에 부속장치로 설치되는 시동 모터 겸 발전기로, 엔진 크랭크샤프트의 풀리와 벨트로 연결되어 작동합니다. 주로 마이크로 하이브리드 또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포함됩니다.

- P1: 엔진 크랭크샤프트에 직접 연결되는 스타터제너레이터입니다. 이 시스템은 따로 12V 전기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시동 모터를 완전히 대체할 수도 있고, 대개 P0 시스템보다 더 강력한 토크로 엔진 힘을 보조하거나 회생 제동 때 더 큰 전기 에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스타터제너레이터의 역할이 P0 시스템보다 더 큰 만큼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일부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 P2: 전기 모터가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위치하는 시스템입니다. 전기 모터의 연결 방식과 구조는 각기 다를 수 있지만, 변속기 입력축 쪽에 구동용 전기 모터가 벨트로 연결되거나 변속기 일체형으로 설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단계 시스템부터는 전기 모터가 단독으로 구동력을 만들어내는 전기차 모드(EV mode) 주행이 가능합니다.

- P3: 전기 모터가 변속기 출력축 쪽 즉 변속기와 구동축 사이에 설치되는 시스템입니다. 대개 전기 모터의 출력과 토크가 높아 전기 모터 단독 구동 모드를 적극 활용하도록 설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P4: 전기 모터가 엔진 중심의 동력계와 분리되어 구동축에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입니다. 요즘 승용차에 많이 쓰이는 앞 엔진 앞바퀴 굴림 구동계 배치에서는 엔진 중심의 구동계와 분리되어 있는 뒤 차축이나 뒷바퀴 허브에 전기 모터가 설치되는 경우가 되겠죠.

P0부터 P4까지의 다섯 유형이 있지만, 한 가지 유형만 쓰이기도 하고 몇 가지 유형이 조합되어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여러 유형을 함께 쓰게 되면 시스템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복잡해지고 제어하기가 어려워지며 값은 더 비싸지겠죠.

현대차그룹의 기존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P0와 P2를 조합한 시스템이었습니다. 즉 벨트 구동 스타터제너레이터와 변속기 입력축에 설치한 전기 모터를 활용한 구조였죠. 엔진과 전기 모터+변속기 사이에는 클러치가 있어, 클러치 및 전기 모터 작동 조합에 따라 엔진 단독 구동, 엔진과 전기 모터의 혼합 구동, 전기 모터 단독 구동을 모두 지원하는 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이고요. 또한 앞바퀴굴림 기반 구동계 배치를 쓰는 현대와 기아 브랜드 차들에만 쓰는 것을 전제로 설계해서, 뒷바퀴굴림 기반 구동계 배치를 쓰는 제네시스 브랜드 차들로 확장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 크랭크샤프트에 연결된 P1과 변속기 입력축에 연결된 P2를 조합한 구성입니다. P1은 시동 모터와 발전, 구동력 보조 역할을 하고 P2는 전과 마찬가지로 주 구동력과 회생 제동(감속 에너지 회수)을 맡습니다.
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라는 점은 전과 같지만, 새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하이브리드 시스템 전반의 성능과 효율이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기능과 역할이 제한적이었던 P0이 좀 더 큰 힘으로 엔진 동력을 보조할 수 있는 P1으로 대체되면서 큰 힘이 필요할 때 엔진의 부담 즉 연료소비를 줄일 수 있어 시스템 효율이 더 높아지고 더 높은 성능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또한 P1과 P2가 함께 작동하면 더 큰 구동력을 만들 수 있는 만큼 하이브리드 시스템 전체 출력도 높일 수 있습니다.
또한,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있는 클러치는 필요할 때 연결을 해제해 엔진 개입 없이 P2의 단독 구동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요. 이 구조는 기존 시스템에도 있었지만, 새 시스템에서는 P0 대신 P1을 쓰면서 클러치가 엔진 연결을 해제했을 때 P2가 단독 구동할 때 P1을 발전기로 전환해 고전압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만큼 고전압 배터리를 더 자주 충전할 수 있어 전기 모터로 구동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엔진 작동 시간과 연료 소모량을 줄일 수 있죠.
효과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엔진 크랭크샤프트와 벨트로 연결해 작동하는 구조상 동력 손실이 있었던 P0과 달리 크랭크샤프트와 직접 연결되는 P1의 동력 손실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도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요. 물론 개념상으로는 P1이 엔진 크랭크샤프트와 직접 연결되는 형식이지만, 구조적으로는 P1 역시 변속기 케이스 안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클러치의 작동과 전기 모터의 개입 때 생길 수 있는 충격이나 소음을 줄일 수 있도록 중간에 댐퍼가 추가되고요.

이러면 전에 없던 P1이 차지하는 공간이 생기면서 변속기도 커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요. 한정된 엔진룸 공간 안에 동력계 구성요소를 넣으려면 그 역시 크기를 무작정 키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설계와 구조를 최적화해서 전체 변속 관련 부품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을 최대한 억제했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기존 시스템 변속기에서 P1 및 P2 모터와 관련 부품(댐퍼) 때문에 25.4mm 길어진 것을 다른 부품에서 16.9mm 줄여, 전체 변속부는 8.5mm만 길어지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모터 냉각 구조와 주요 부품의 배치 및 크기의 최적화도 함께 이루어져 변속기가 커지는 것을 최대한 억제한 덕분에, 아랫급 하이브리드 시스템에도 같은 변속기 구조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면서도 변속기 허용 토크는 가솔린 2.5 터보 엔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가솔린 1.6 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쓰인 것의 37.4 kg・m에서 46.9 kg・m으로 약 25% 커졌습니다. 새로운 설계가 반영된 가솔린 1.6 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용 변속기도 허용 토크가 37.4 kg・m에서 38.7 kg・m으로 커졌고요.

현대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에 처음 쓰인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도 일반 가솔린 2.5 터보를 바탕으로 하이브리드 시스템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조율과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우선 압축행정 때 흡기 밸브가 닫히는 시기를 늦춰 펌핑 손실을 줄이고 실린더 안을 채운 혼합기의 유효 압축비를 낮추면서 폭발 행정 때 팽창비는 높게 유지하는 과팽창 사이클(앳킨슨 사이클)을 적용했고요. 혼합기가 더 안정적으로 잘 연소되도록 피스톤 머리 부분(피스톤 크라운) 형상을 바꾸고 연료 분사 영역을 조절했습니다. 또한 P1이 엔진 시동과 발전을 맡으면서 12V 교류발전기(얼터네이터)와 에어컨 컴프레서와 같은 부속장치와 그 장치를 구동하는 메인 벨트가 빠졌습니다. 덕분에 부속장치 작동으로 생기는 동력 손실도 줄일 수 있었고요.
동력계 성능을 보면, 팰리세이드에 들어가는 가솔린 2.5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이 281마력, 최대토크가 43.0 kg・m입니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는 가솔린 2.5 터보 엔진이 262마력의 최고출력과 36.0 kg・m의 최대토크를 내고 전기 모터가 54.0 kW(약 73 마력)의 최고출력과 264 Nm(약 26.9 kg・m)의 최대토크를 내서 시스템 최고출력이 334마력, 시스템 최대토크가 46.9 kg・m에 이릅니다. 수치상 성능은 하이브리드 모델이 가솔린 2.5 터보 모델보다 최고출력은 19%, 최대토크는 9% 뛰어나죠. 그러면서 복합 사이클 기준 연비는 7인승 2WD 18인치 휠 장착 모델 기준으로 가솔린 2.5 터보 모델이 9.7km/L인 데 비해 하이브리드 모델은 무게가 95kg 더 나가는데도 14.1km/L로 약 45% 더 뛰어납니다.

정리하면, 이번에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과 천지개벽할 만한 차이가 나는 혁신적 새 기술은 아닙니다. 물론 P0+P2 조합 시스템에서 P1+P2 시스템으로 바뀐 것은 큰 의미가 있지만, 보편적인 기술적 관점에서 상상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의 변화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포괄적으로 보고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씩 개선하고 최적화한 것들이 합쳐진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곳곳에서 티끌 같은 개선점들을 모아 태산까지는 아니어도 바위 정도의 개선 효과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통해 지금까지 세 가지(1.6 N/A 하이브리드+6단 DCT, 2.0 N/A 하이브리드+6단 AT, 1.6 터보 하이브리드+6단 AT)가 있었던 하이브리드 동력계에 두 가지(1.6 터보 하이브리드+6단 AT, 2.5 터보 하이브리드+6단 AT)가 추가되어 모두 다섯 가지로 늘어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2026년에는 후륜구동 구동계 배치에 맞춘 2.5 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완성해 제네시스 브랜드 차들에 순차적으로 적용한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2020년대 후반까지 현대와 기아, 제네시스 브랜드 주요 핵심 모델에 하이브리드 동력계가 기본 적용되거나 선택할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류청희 | Jason (Chung-hee) Ryu님에게 덧글 달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