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Kia_Retona-1

[ 자동차와 정비문화 1998년 9월호(정확하지는 않습니다)에 실린 글입니다. ]

자동차 여행을 좋아하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차를 갖고싶어하는 필자에게 소형 SUV나 스포츠 왜건은 마음이 동하는 장르의 차들이다. 레토나가 바로 이런 장르의 정점에 속하는 모델로, 기아의 PC 통신 동호회원 시승회를 통해 시승기회를 얻은 것이 필자에게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막상 차를 타보고 나니 만족스러웠던 점 만큼이나 아쉬운 점이 많이 느껴졌다. 일부분이나마 필자가 느꼈던 아쉬운 점들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시승차는 2.0 디젤 TCI 5단 수동 고급형 하드탑 모델이었다.

외장

무엇보다 95년 서울 모터쇼에 등장했던 컨셉트카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훨씬 터프했던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앞부분의 인상은 전형적인 지프의 그것으로 친근감을 주지만, 그릴 둘레에 ‘무늬만 남은’ 프론트 가드가 많이 어색해보인다. 코란도의 것처럼 섀시에 연결하여 별도로 장착하거나 아예 없애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보네트와 래디에이터 그릴 패널이 만나는 부분도 어색하다.

차체 측면의 블리스터 펜더는 이미 유행이 지난 것일 뿐 아니라, 오프로더의 감각과는 거리가 먼 승용차 감각의 터치다. 

차체 뒷편의 도어 옆에 장착된 라디오 안테나는 애프터마켓 제품처럼 외관 전체의 디자인 흐름과 잘 맞지 않는다. 아래위로 기다란 테일 램프도 기능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보기에는 어색하다.

내장

실내의 디자인이나 레이아웃은 잘 되어있지만 각종 부품의 재질감이 너무 떨어지고, 스위치의 촉감이나 작동감이 좋지 않다. 스위치들의 디자인도 그다지 좋은 편은 못된다. 

프라이드나 아벨라 등 다른 차에서 빌려온 부품들을 많이 써 전체적인 디자인 흐름에 맞지 않는 것들이 눈에 띈다. 그 중 스티어링 컬럼 슈라우드는 유난히 눈에 거슬린다. 프라이드 부품의 비상등 스위치 부분을 때운 흔적이 역력하다. 이런 마무리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실내 바닥에 깔린 부직포 재질도 마무리가 엉성하다. 얼핏 보아도 대시보드 밑의 처리가 부실한 것이 눈에 뜨인다.

적산거리계는 있지만 구간거리계는 없는 것도 아쉬운 점 중의 하나다. 최근에는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연비 계산 등에 활용하는 사람들도 아직 상당수 있어 유용한 장비이기 때문이다.

원형 계기판의 테두리도 세심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기계용 싸구려 계기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라운드 처리하고 크롬도금으로 다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대시보드 전면에 펼쳐진 우드 그레인은 재질과 마무리가 좋지 않다. 스타렉스나 SM5와 같은 소프트한 느낌의 재질로 바꾸고, 마무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성능

성능만으로 따져본다면 크게 나무랄 곳이 없다. 군작전차량으로 선정될 만큼 튼튼한 구조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레토나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곳이 바로 성능인 셈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몇가지 있다.

서스펜션 구조가 스포티지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승차감, 핸들링 특성은 상당히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이 점이 오프로더 매니아들에게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승차감이나 운동특성 자체에서도 거친 것을 원하는 매니아들은 레토나의 더블 위시본/5링크식 서스펜션보다 록스타의 리프 스프링식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을 더 좋아할 지도 모른다.

엔진성능에 있어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 터보가 작동하는 상태에서는 출력에 대해 별다른 불만사항이 없지만, 저회전에서의 힘부족 때문에 터보 랙(lag)이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2천 rpm부터 터보가 작동되는 세팅이나 실제 최대토크가 나오는 부분이 2천 rpm으로, 가속을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2천 rpm 이상의 고회전 영역을 사용해야 한다. 부스트 압을 낮추어 터보가 작동되는 시점을 낮추거나 배기량을 높이는 등 본질적인 출력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운전환경 및 편의장비

실내의 디자인은 지프의 원조라고 불리는 랭글러의 신형과 비교해 보아도 레토나의 것이 지프 원형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과 배치가 잘 되어있다. 그러나 디자인과 레이아웃만으로 승부를 걸기에는 레토나에게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먼저 시트 쿠션의 스폰지가 너무 무르다는 점을 들고 싶다. 스포티지와 같은 디자인의 것으로 차량의 컨셉트에 잘 어울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장거리 주행시에 몸이 쉬 피곤해 진다. 스포티지와 같은 디자인이지만 스폰지가 더 무르다. 

장거리 주행시에 몸을 피곤하게 하는 데에는 애매한 시트 포지션과 풋 레스트 각도도 한 몫을 담당한다. 시트를 조금 더 높이거나 풋 레스트를 조금 눕히면 한결 나을 것 같다.

풍절음을 제외하면 엔진방음이나 노면소음 등은 처리가 비교적 잘 된 편이지만 감가속시 전기계통에서 나는 것이 분명한 히스 노이즈와 , 트랜스퍼 케이스쪽의 진동소음이 특히 많이 거슬린다.

핸들링은 유격을 조금 줄여야할 필요가 있다. 오프로드 주행시에는 어느 정도 유격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오프로드형 세팅이라고 보기에도 조율의 필요성이 느껴진다. 특히 한박자 늦게 반응하는 스티어 감각은 직진주행시나 도심에서의 운행시에는 그리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무엇보다 불만스러운 점은 완성도가 전반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닫이식 뒷창의 경우 웨더 스트립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지저분한 느낌을 주고, 시승차의 경우 여러 부품들이 조립 전에 마무리가 깨끗하게 되지 않아 플래스틱 찌꺼기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였다. A 필러 내장재는 좌우 조립상태가 틀렸고, B 필러 내장재는 부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흠집이 나 있었다. 특히 내장재의 소재가 너무 싸구려처럼 느껴지는 점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내장 부품의 재질에만 조금 더 신경을 써도 좋은 평가를 얻을 것이다. 

총평

레토나에 있어 가장 아쉬운 것은, 개념이 애매한 차가 되어버린 것이다. 외부 스타일 외에는 승용형 SUV인 스포티지와 별 다른 점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록스타 R2와는 정 반대의 결과물이 만들어진 셈이다. 판매촉진을 위한 상품기획 외에도 개발 당시의 어려웠던 사정의 영향이 컸겠지만, 보다 오프로더 지향의 모습을 분명히 갖추는 것이 레토나의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