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8월 GM대우 사보 ‘Driving Innovation’에 실린 글입니다]

만약 세상에 밤과 그늘지고 어두운 곳이 사라진다면, 자동차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것은 헤드램프일 것이다. 헤드램프는 어두운 곳에서 차가 나가는 방향을 밝게 비춰 안전운전을 돕는 장치인데, 밝게 비추지 않아도 모든 것들이 잘 보일 테니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안전운전을 위해 필수적인 장치가 바로 헤드램프다. 굳이 어두운 밤이 아니라도, 자동차가 달리면서 만나는 어두운 곳은 다리 밑, 터널, 깊은 숲속 등 무척 많기 때문이다. 그늘진 곳뿐 아니라 날이 흐리고 비나 눈이 올 때에도 헤드램프는 무척 유용하게 쓰인다.

자동차의 다른 모든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헤드램프 역시 꾸준히 발전이 이루어져 왔고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줄곧 차에 탄 사람을 편하고 안전하게 해 주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헤드램프는 어떤 특징을 가져야 바람직할까? 헤드램프가 하는 일을 생각하면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차에 탄 사람, 특히 운전자가 어두운 곳에서 차 앞에 나타나는 물건이나 주변 환경을 잘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간단히 생각하면 헤드램프는 전구가 밝고 멀리, 넓게 비출수록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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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헤드램프는 어두운 곳만 잘 비춰주면 된다. ⓒBMW AG

그런데 내 차의 헤드램프만 밝으면 그만일까? 그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생각이다. 내 입장에서야 바깥이 잘 보이면 그만이지만, 맞은편에서 오는 차의 운전자는 내 차가 비추는 밝은 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오히려 주변의 사물을 잘 알아볼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차의 운전자 뿐 아니라, 밝은 빛을 내는 헤드램프를 가진 차의 운전자도 곤란할 수 있다. 빛이 너무 강렬하면 가까운 곳의 물체는 반사가 심해 알아보기 힘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동차의 헤드램프는 상향등과 하향등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상향등은 헤드램프의 빛이 위쪽을 향해 멀리까지 비추도록 한 것이고, 하향등은 반대로 빛이 아래쪽을 향해 가까운 곳을 비추도록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차의 헤드램프 스위치를 켜면 하향등이 켜지고, 스위치 레버를 앞쪽으로 밀면 상향등이 켜진다. 이런 작동방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향등이 가장 기본적인 헤드램프라고 생각하지만, 역사를 훑어나가다 보면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동차에 헤드램프가 달리기 시작한 직후에는 상향등과 하향등의 구별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앞서 이야기한대로 단순히 어두운 곳에서 밝고 멀리 빛을 비추는 역할에만 신경을 썼다. 자동차의 초창기는 요즘처럼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당연히 자동차의 수도 많지 않아 다른 차를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험한 길을 달리기 위해서는 밝고 멀리 비추는 기능이 우선시되었다. 즉 상향등이 기본 헤드램프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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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형 포드 모델 T. 이 시절만 해도 헤드램프는 오로지 상향등뿐이었다. ⓒ Ford Motor Company

그러나 자동차가 늘어나고 차끼리 마주칠 일이 많아지면서 차가 서로 스쳐 지날 때 빛의 방향을 낮출 필요가 생겼고, 그래서 등장하게 된 것이 하향등이다. 하향등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15년이지만, 간단한 스위치로 상향등과 하향등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은 1954년 이후의 일이다.

어두운 곳을 비춘다는 단순한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헤드램프는 다른 여러 부품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필요한 조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첨단기술이 쓰이는 한편 설계도 세심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최근에는 디자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헤드램프가 단순히 전구 뒤에 사발 모양의 반사경을 씌운 구조로 만들어졌던 시절에는 모든 차의 헤드램프가 거의 같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차체를 공기역학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하면서 헤드램프가 차체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겉에 커버를 씌워 차체 면과 이어지도록 하면서 다양한 모양으로 모습이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헤드램프는 라디에이터 그릴과 함께 차의 얼굴 특징을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디자이너들은 헤드램프의 모양에도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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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형 머큐리 4도어 쿠페. 2차대전을 전후로 자동차의 헤드램프는 차체에 포함된 형식으로 바뀐다. ⓒ Ford Motor Company

요즘 자동차용 헤드램프로 가장 널리 쓰이는 전구는 할로겐 전구다. 가정에서 쓰는 일반적인 백열전구와 비슷한 원리로, 유리로 된 관 안에 할로겐 가스를 집어넣고 가는 필라멘트에 전기를 흘려 저항 때문에 생기는 열에너지가 빛으로 바뀌어 빛을 내는 것이다. 이런 할로겐 전구는 빛의 세기가 약해 먼 곳을 비출수록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고, 비교적 수명이 짧은 편이다. 하지만 단순한 구조인 만큼 값이 싼 편이어서 아직까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할로겐 램프의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기술의 헤드램프들도 나오고 있다. 일반적인 할로겐 전구는 노란색 빛을 낸다. 그런데 요즘 밤길을 다니다 보면 흰색 또는 파란색의 빛을 선명하게 내는 헤드램프를 단 차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이른바 HID(고압방전) 방식의 램프를 쓴 차들이다. HID 램프는 전기가 고압으로 방전되면서 내는 전기불꽃을 이용한 것으로, 전구 안에 할로겐 가스 대신 크세논(Xenon) 가스를 쓰기 때문에 일반 전구보다 흰색에 가까운 파란 빛을 낸다. 크세논 가스를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제논이 되기 때문에, HID 램프를 제논 램프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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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제네시스에 쓰이는 HID 헤드램프. 파란 빛이 도는 흰색 빛을 낸다. ⓒ현대자동차

HID 램프는 할로겐 램프보다 빠르고 또렷하게 켜지고, 파란색 또는 흰색 빛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또한 안정기를 거친 높은 전압이 꾸준하게 불꽃을 일으키기 때문에 빛이 또렷하고 밝기가 일반적인 할로겐 전구보다 두 배 정도의 밝다. 그만큼 물체를 알아보기가 쉬운데, 특히 빠른 속도로 달릴 때 그 효과를 쉽게 실감할 수 있다. 게다가 전력소모가 적기 때문에 수명도 일반 전구를 쓰는 헤드램프보다 훨씬 길다. 대신 빛을 내기 위한 방법이 일반 전구와 달리 복잡해서 값이 상당히 비싸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고급차를 중심으로 쓰이고 있다. 일반 할로겐 전구의 유리관에 파란색 코팅을 해 HID 램프 느낌의 빛을 내는 것도 있지만, 실제 HID 램프와 성능 면에서는 비교할 것이 못된다.

최근에는 전자부품 중 하나인 LED(발광 다이오드)를 이용한 헤드램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동차 메이커가 자사의 디자인과 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모터쇼 등을 통해 선보이는 컨셉트카에 LED 헤드램프가 쓰인 지는 몇 년이 되었지만, 양산차에는 최근에 들어서야 쓰이기 시작했다. LED 램프는 크기가 작으면서 밝은 빛을 고르게 내고 수명이 반영구적이다. 또한 전기 에너지가 바로 빛 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적고 전기를 많이 쓰지 않는다. 전에는 LED가 빨간색과 녹색 두 종류밖에 없었지만, 흰색 빛을 내는 LED와 빛의 세기가 강해진 고휘도 LED가 개발된 이후 쓰임새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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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A8의 풀 LED 헤드램프. ⓒAudi AG

특히 작은 크기의 LED를 모으는 형태에 따라 모양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 디자이너들이 선호하기도 한다. 앞으로 LED 헤드램프가 자동차의 디자인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물론 헤드램프 본연의 기능인 어두운 곳을 비추는 것은 더 안전하고 편리해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