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타이어 딜러 정보지 Tire Family 2010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요즘은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로고 하나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로고는 회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로고에는 그 회사의 성격과 철학이 시각적으로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나 브랜드도 마찬가지여서, 그 회사나 브랜드의 엠블럼을 이해하면 자동차에 담긴 철학과 차의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오랜 전통을 지닌 메이커나 브랜드의 엠블럼 가운데에는 탄생한 지역을 상징하는 것이나 창업자의 이름을 담고 있는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처음부터 자동차 만들기에 대한 뜻을 담아내기보다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 메이커나 브랜드가 만든 차들에 의해 엠블럼에 의미가 스며든 경우가 많다.
메이커의 철학이 담긴 엠블럼 가운데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것이 유명하다. 원 안에 세 꼭지 별이 들어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엠블럼은 자동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엠블럼은 현재 메르세데스 벤츠의 뿌리가 된 다임러와 벤츠의 상징이 합쳐진 것이다. 세 꼭지 별을 둘러싸고 있는 원은 원래 벤츠 엠블럼의 둘레를 장식한 월계수 잎이 단순화된 것이고, 원 안의 세 꼭지 별은 땅 위의 자동차, 물 위의 선박, 하늘의 항공기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겠다는 뜻을 담은 다임러의 상징이었다. 이 두 회사의 상징은 1926년에 두 회사의 합병과 함께 어우러지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단순해져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나오고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 차에는 널리 알려진 단순한 형태의 엠블럼과 함께 월계수 잎이 둘러진 고전적인 엠블럼도 함께 쓰인다. 라디에이터 그릴 위에 우뚝 솟은 단순한 엠블럼 아래를 받치고 있는 것이 바로 고전적 엠블럼. 라디에이터 그릴 안에 단순한 엠블럼이 들어있는 모델도 보닛 앞쪽 가운데 부분에는 고전적 엠블럼이 자리 잡고 있다.
이태리와 독일의 대표적 스포츠카 메이커인 페라리와 포르쉐의 엠블럼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담겨 있다. 아무 관계도 없는 두 회사의 엠블럼에는 특이하게도 모두 노란 바탕의 방패 안에 도약하는 검은 말이 그려져 있다. 포르쉐 엠블럼 속의 검은 말은 포르쉐의 근거지인 슈투트가르트 시의 문장(紋章)이다. 그런데 페라리 엠블럼 속 검은 말은 페라리의 근거지나 가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검은 말은 원래 제1차 세계대전 중 이태리 공군의 전쟁영웅 프란체스코 바라카의 전투기에 그려져 있던 것인데, 그가 원인불명의 사고로 추락해 운명을 달리한 후 잔해 속에서 발견되어 그의 어머니에게 유품과 함께 전해졌다. 이것이 1920년대 초반에 알파 로메오의 레이서로 활약하던 페라리의 창업자 엔초 페라리에게 전달되어 그의 상징이 되었다. 과감한 경주 스타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던 페라리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떠올린 바라카의 어머니가 그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라카가 전투기에 그려 넣었던 말 그림은 원래 그가 격추시킨 독일군 전투기에 그려져 있던 것. 사람들은 아마도 바라카가 격추시킨 독일군 전투기의 조종사가 슈투트가르트 출신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페라리와 포르쉐 엠블럼은 뿌리가 같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도약하는 검은 말이 공식적인 페라리의 엠블럼이 된 것은 페라리가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한 1947년의 일이지만, 포르쉐는 미국 수출을 시작한 1953년에 들어서야 이 엠블럼을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미국 GM의 대중차 브랜드인 시보레의 엠블럼은 ‘보 타이(나비 넥타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유래에 대한 여러 설 가운데 하나도 재미있다. GM의 창업자인 윌리엄 듀런트가 1907년에 사업차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호텔 벽지의 패턴이 마음에 들어 일부분을 찢어 지갑 속에 넣어두었다가 1913년 시보레 브랜드를 만들 때 이를 활용했다는 것이다. 시보레는 GM의 차를 몰고 좋은 성적을 낸 레이서인 루이스 시보레의 이름을 딴 브랜드인데, 미국인이지만 프랑스 출신 이민자의 혈통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에서 엠블럼의 유래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영국의 스포츠카 메이커 로터스는 비교적 단순한 엠블럼을 갖고 있다. 로터스의 엠블럼은 네 개의 알파벳이 겹쳐져 있고, 그 아래에 영문으로 로터스라고 쓰여져 있는 둥근 삼각형이 동그라미 안에 들어 있는 형태다. 이 가운데 겹쳐진 네 개의 알파벳은 창업자인 앤서니 콜린 브루스 채프먼의 머릿글자(A, C, B, C)다. 이처럼 창업자 이름의 머릿글자를 엠블럼에 반영한 메이커들도 적지 않은데,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마쓰다를 비롯해 영국 브랜드인 벤틀리, 롤스 로이스도 창업자의 머릿글자를 엠블럼에 담고 있다.

하지만 롤스 로이스는 창업자의 이름에서 유래한 엠블럼보다 라디에이터 그릴 위를 장식하고 있는 여신상이 더 유명하다. 후에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라는 이름을 얻은 이 여신상은 처음부터 롤스 로이스의 상징이었던 것은 아니다. 자동차 애호가였던 몬태규 경이 그의 연인이었던 여비서 손튼을 그리며 친구에게 부탁해 만들어 자신의 롤스 로이스 차에 달았던 지극히 개인적인 상징물이었다. 신분의 차이로 맺어질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1915년 손튼이 타고 가던 배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해 손튼이 세상을 떠나면서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지만, 그녀를 모델로 만든 롤스 로이스의 엠블럼은 지금까지 이어져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