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5월 Carmily에 기고한 글 중에서 발췌해 정리한 글입니다. ]

포르쉐와 페라리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은 페라리가 ‘대중적인’ 모델을 내놓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소수의 사람들만 감당할 수 있는 성능, 소수의 사람들만이 살 수 있는 가격표가 붙는 페라리에게 ‘대중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V형 혹은 수평대향 12기통 엔진을 얹은 ‘정통’ 페라리와 비교하기 위한 상대적인 표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1968년부터 1976년까지,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던 디노(Dino) 브랜드에서 찾을 수 있다. 디노를 시작으로 탄생한 V6 또는 V8 엔진 페라리로 인해 페라리와 포르쉐는 맞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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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 브랜드가 탄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뿌리를 파헤쳐 보면 그 끝에서 페라리의 자동차 경주에 대한 집착을 찾을 수 있다. 자동차 경주선수 출신인 창업자 엔초 페라리가 자신의 경주 팀을 모태로 회사를 만든 것이 페라리의 시작이고,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스포츠카를 판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페라리 운영의 중심에는 늘 자동차 경주가 있었다. 그러나 소수를 위한 고성능 고급 스포츠카만으로 수익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60년대 들어 F1과 르망 레이스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 장르에서 여러 메이커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졌고,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려는 페라리의 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영난에도 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으려는 엔초 페라리와 임원들 사이에는 불화가 생겼고, 엔초 페라리는 결국 1969년에는 다른 메이커로 회사를 넘기려는 임원진의 반란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지켜나가기 위해 독단적으로 회사 지분 절반을 피아트에 넘기기에 이른다.

이런 과정 속에서 엔초 페라리는 어쨌든 경영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해법은 많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은 폭넓은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익성 높은 모델을 대량생산해 판매하는 것이었다. 페라리로서는 이전보다 차급이 낮은 새로운 시장에 뛰어드는 도전이었고, 그곳에는 포르쉐가 야심차게 내놓은 모델인 911이 유명세를 얻으며 자리를 굳혀 나가고 있었다. 이전까지 고급 고성능 스포츠카로 격을 달리하며 최고의 스포츠카로 군림했던 페라리가 처음으로 포르쉐와 맞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자존심이 강했던 엔초 페라리는 이런 개념의 차가 페라리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해, 별도의 브랜드로 만들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브랜드가 디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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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디노는 1956년에 24세의 나이로 요절한 엔초 페라리의 아들 알프레도 페라리의 애칭이었다. 알프레도 ‘디노’ 페라리는 명 엔지니어인 비토리오 야노(Vittorio Jano)와 더불어 경주차용 V6 엔진을 개발하던 중 세상을 떠났고, 결국 엔진은 야노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엔진에 붙은 ‘디노’라는 별칭은 곧 이 엔진을 쓴 차들로 이어진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페라리가 아꼈던 아들의 이름이 자동차의 브랜드로 되살아난 데에서 디노를 ‘리틀 페라리’로 부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디노 브랜드의 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5년이다. 피닌파리나에서 디자인한 콘셉트카가 파리 모터쇼에 전시되어 많은 관심을 끌었다. 뒤이어 1968년에는 일반인들이 구입할 수 있는 첫 디노인 206 GT가 탄생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디노 브랜드를 새긴 차는 206 GT를 뒤를 이어 나온 246 GT였다. 경주차, 혹은 프로토타입에 가까웠던 206 GT와 달리 246 GT는 당대 스포츠카 가운데에서도 여러 면에서 빼어난 매력을 자랑했다. 특히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에서 만든 보디는 차체 전체를 흐르는 매끄러운 곡선이 아름다웠고, 최고시속 241km, 0→시속 97km 가속 7.1초의 성능을 내어 당시 인기 있었던 포르쉐 911의 고성능 모델인 911 S보다 조금 더 뛰어난 성능을 냈다. 가격은 911 S를 약간 웃돌았지만 매력적인 스타일과 미드 엔진 차 특유의 경쾌한 핸들링으로 좋은 평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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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GT와 더불어 246 GT는 페라리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차다. 우선 페라리 처음으로 엔진을 뒤 차축 앞쪽에 세로가 아닌 가로로 놓은 차이고, 경쟁상대인 람보르기니가 미우라를 통해 먼저 선보이기는 했지만 페라리의 미드 엔진 시대를 열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한편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어 다른 차의 부품을 대폭 활용해 만든 첫 페라리이기도 하다. 차체 앞뒤의 램프류와 함께 차에 쓰인 여러 전기장치들은 대부분 피아트 승용차의 부품을 활용한 것이었다. 피아트는 각종 부품뿐 아니라 엔진도 생산해 공급했는데, 이 엔진은 페라리의 설계를 바탕으로 하여 피아트의 스포츠 모델인 피아트 디노를 통해 먼저 제품화되기도 했다.

또한 기통당 배기량을 모델 이름에 반영하던 방식을 탈피한 차라는 점도 새로웠다. 246이라는 이름은 2.4L인 엔진 배기량과 V형 6기통인 엔진 형태를 뜻하는 것이다. 이처럼 엔진 배기량과 엔진의 기통수를 결합하는 모델 이름 짓는 방식은 앞서 선보인 206 GT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디노 브랜드가 사라진 이후로도 리틀 페라리의 작명법으로 꾸준히 쓰이게 된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특징들은 지금까지 리틀 페라리가 고유의 입지를 가지고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