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카 한국판 2010년 7월호에 실린 글의 원본입니다. ]

최근 인터넷을 통해 접한 소식 중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것이 하나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그랜저 탄생 24주년을 맞이해 기념 모델을 출시했다는 이야기다. 대개 뭔가 기념할 일들은 10년 주기나 100년을 넷으로 쪼갠 25년 단위로 챙기기 마련이다. ‘탄생 24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을 내놓았다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들린 이유다. 사실 그랜저 아니 현대차의 뜬금없는 행보는 2010년형 그랜저 출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에 데뷔한 현재의 그랜저(TG)는 지난 2008년에 ‘뉴 럭셔리’라는 수식어를 달고 중반 부분변경(mid-life update) 모델이 나왔다. 현대차의 모델 체인지 주기를 감안하면 올해 안에는 후속 모델(HG)이 나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그랜저 후속 모델 출시 시기를 11월에서 12월 사이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HG 출시를 겨우 1년여 앞둔 지난해 12월에 난데없이 페이스리프트라 해도 좋을 정도의 대대적인 손질을 한 2010년형 그랜저가 나왔다. 겨우 1년 팔자고 큰 돈 들여 뜯어고치는 모습이 뜬금없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유는 있었다. 2010년형 그랜저 출시보다 20일 앞서 나온 기아자동차의 K7 때문이었다. 현대·기아차 내부적으로 어떤 정보가 오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사가 공유하는 새 준대형차 플랫폼으로 만든 차를 기아차가 먼저 내놓는다는데 현대차가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K7의 판매대수는 출시 3달이 지난 올해 2월부터 그랜저를 넘어서 지금까지 우위를 이어오고 있다. 격차가 약간 좁혀졌던 4월을 빼면 두 모델의 판매대수 차이는 매월 1,000대 안팎에 이른다. 올해 들어 두 모델의 판매대수 합계가 1만 대를 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큰 격차다. 

재미있는 것은 그랜저 판매가 뚜렷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2010년형 모델이 나온 이후라는 점이다. 디자인은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의 전부도 아니고 최근 현대의 디자인 흐름을 반영한 긍정적인 변화이기는 했지만, 어딘가 어색하게 바뀐 디자인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상대적으로 뚜렷한 주관이 엿보이는 K7의 디자인과 비교하면 업그레이드된 그랜저의 모습에서 나은 점을 발견하기는 힘들다.

물론 그랜저는 모델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그러나 모델 수명이 다해도 판매가 꾸준히 이어지는 다른 현대차들과는 양상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24년 동안 국산 대형차와 준대형차를 대표하는 모델로, 쏘나타에 이은 제2의 국민차 대접을 받아왔던 그랜저의 아성이 무너진 것이다. 이러니 현대가 ‘그랜저 살리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후속 모델 데뷔까지 남은 반년을 주저앉아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뒤늦게 제품경쟁력을 끌어올려 판매를 늘리기 위해 뜬금없는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내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이들이 속한 준대형차 시장의 규모는 전성기에 비하면 많이 축소되었다. 준대형차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역할을 기대했던 K7은 기아차 입장에서는 효자일지 몰라도 현대·기아차 그룹 차원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차는 HG에 많은 힘을 쏟을 것이다. 기아차의 몫은 확보했지만 준대형차 시장 전체의 파이는 키우지 못한 K7을 대신해 HG에게 같은 임무를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양승석 현대차 사장이 한 것으로 알려진 ‘그랜저 후속 모델 데뷔 시기를 10월로 앞당기겠다’는 발언은 이 같은 현대차의 HG에 대한 기대와 초조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다 GM대우는 알페온을, 르노삼성은 새 SM7을 조만간 같은 시장에 투입하기 위해 벼르고 있다. 예상을 깨는 시장의 변화에 새로운 선수가 가세하면서, 앞으로 벌어질 준대형차 대전의 재미를 키우고 있다. 한 집안 식구인 K7과 그랜저가 먼저 벌여놓은 이 게임, 월드컵 축구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