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토카 2010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대중 브랜드 메이커들보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려는 메이커들은 틈새시장을 찾기 위해 늘 혈안이 되어 있다. 최근 그런 틈새시장을 아주 잘 찾아내는 브랜드로 BMW를 꼽을 수 있다. BMW의 안목은 1 시리즈 해치백, X6 등 여러 결실을 맺어 왔지만, 최신작인 그란 투리스모는 ‘과연 존재할까’ 의심스러운 틈새시장을 노린 아주 독특한 차다. 해외에서의 이름은 5 시리즈 그란 투리스모이지만, 국내에서는 5 시리즈라는 이름이 지워진 채 그란 투리스모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혁신성 강조를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럭셔리 브랜드가 차종의 뿌리가 되는 이름을 떼어낸 것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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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 투리스모를 실물로 처음 접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크다’였다. SUV도 아닌 차가 매우 높고, 넓고, 길다. 5 시리즈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휠베이스는 7 시리즈와 맞먹고, 차체 높이는 1.6m에 살짝 못 미친다. 구석구석 살펴보면 BMW의 차종별 전통적 요소들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스포티한 모델에나 쓰던 프레임리스 윈도가 쓰였고, 7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테일램프에 X6와 꼭 닮은 사이드 윈도 라인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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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 투리스모의 특이함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이 차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 두 가지 방식으로 열리는 트렁크다. 세단처럼, 혹은 해치백처럼 열리는 트렁크 리드는 신기하기는 해도, 솔직히 ‘이게 정말 실용적인 걸까?’하는 의구심을 낳는다.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폭넓게 썼지만 복잡한 가동부 때문에 무게가 만만치 않다. 시승차에 달린 전동 개폐장치는 필수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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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 겉모습과 달리 실내의 디자인과 꾸밈새는 환상적이다. 아직 감성적으로 부족함은 있지만 기능성과 아름다움이 잘 어우러져, 요즘 잔뜩 물이 오른 BMW의 실내 디자인 가운데에서도 손꼽을 수작이다. 내장재 소재와 마무리, 조립도 최고 수준이어서, 7 시리즈보다 훨씬 아늑하고 여유롭게 느껴진다. 좌석은 앞뒤 모두 일반 승용차보다는 높고 SUV보다는 낮다. 앞좌석은 전투적이기까지 한 BMW 특유의 스포티함이 살아있다. 실내 크기에 비해 지름이 작은 스티어링 휠은 이런 분위기를 북돋운다. 센터 페시아와 기어 레버, I드라이브 컨트롤러 주변은 최근 BMW 차들과 별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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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차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뒷좌석이다. 앉는 부분이 높은 뒷좌석은 큰 뒤 도어 덕분에 타고 내리기 쉽고, 자연스럽게 뒤로 누워 앉는 자세가 나와 편하고 넉넉한 느낌이다. 2명이 앉으면 가장 좋을 구성이고, 좌우 개별 온도조절장치와 등받이 각도 및 좌석 전후 거리 조절 기능 등이 있지만 장비는 좀 더 고급화해도 좋겠다. 트렁크 리드에 많은 공을 들인 짐 공간은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막상 절대적인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운전석에서 룸미러로 보이는 후방시야는 높은 트렁크 리드 때문에 비좁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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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상으로는 뒷자리에 아이들, 혹은 높으신 분들 모시고 장거리 여행을 가기에 딱 좋을 차이지만, 막상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등 뒤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별로 의식하게 될 것 같지 않다. 주행감각과 동적 특성은 높은 키나 무거운 차체를 의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느 BMW 차들과 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가변 밸브 리프트 및 타이밍 기구에 직접 연료분사 장치, 트윈 스크롤 터보차저까지 갖춘 직렬 6기통 3.0L 엔진은 BMW 특유의 즐거운 회전질감을 고스란히 살리며 306마력의 출력을 8단 자동변속기에 전달한다. 묵묵하지만 재빠르게 출발한 차는 변속기의 바쁜 기어 놀림을 거치며 점점 쏜살같이 가속하지만, 정작 시속 100km 정속주행 때에는 1,500rpm 부근으로 회전수를 묶어 놓는다. 시승 중 정속주행 연비가 13km/L를 넘어설 때도 있을 정도로 매우 효율적이다. 물론 적극적인 마음으로 운전에 나서면 얘기는 조금 달라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휘발유 엔진 차로는 연료소비량이 비교적 준수한 편이다. 106.6km 시승 코스에서의 평균연비는 7.9km/L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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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를 잊어버리게 하는 주행특성에는 사실 일일이 늘어놓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섀시 제어장치들의 도움이 크다. 무엇보다도 4가지 모드로 섀시와 파워트레인 특성을 통합 조절할 수 있는 다이내믹 드라이빙 컨트롤(DDC)이 큰 몫을 해낸다. 각 모드별 섀시 특성변화가 비교적 뚜렷한 편이어서, 가장 부드러운 컴포트 모드에서는 렉서스, 가장 과격한 스포트+ 모드에서는 포르쉐를 연상케 하는 주행특성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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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 투리스모라는 이름은 흔히 쾌적하게 장거리를 고속으로 여행할 수 있는 차를 말하는 GT카의 뿌리가 된 말이다. BMW의 그란 투리스모가 실제로 그런 차로 만들어진 만큼 제대로 된 이름 짓기라 할 수 있다. GT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적 개념의 새로운 GT를 만들었다는 것이 그란 투리스모의 가장 큰 의미라 하겠다. 물론, 새로운 장르의 첫 시도인 만큼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평점: 7.5 / 10

좀처럼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을 만큼 첫 인상은 낯설다. 하지만 BMW 그란 투리스모는 이름에 어울리는 실내를 내세워 GT카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정의한다.

  • 장점: 신선한 개념, 편안한 뒷좌석, 수준 높은 실내 꾸밈새
  • 단점: 풍요로움이 부족한 뒷좌석, 성격도 쓰임새도 모호한 2단 트렁크 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