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역사를 바꾸어 놓은 한 여인의 ‘친정 가는 길’

[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 한성자동차 웹진 ‘with Hansung’ 2011년 8월호에 쓴 글의 원본입니다. ]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한 여인이 있었다. 발명가이자 엔지니어였던 남편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그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떠난 친정으로의 여정은 자동차 역사를 바꾸어 놓는 위대한 길이 되었다.

아내, 가출하다

베르타 벤츠(왼쪽)와 카를 벤츠 부부

한 남자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한 여인이 있었다. 발명가이자 기술자였던 그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결혼을 결심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그는 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아버지를 졸라 미리 받은 결혼 지참금을 약혼자의 사업자금으로 쓰도록 할 정도로 그에게 푹 빠져있었다. 뜨겁게 사랑한 두 사람은 결혼한 후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래도 그녀는 항상 그의 곁에서 가장 큰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마침내 남자의 오랜 노력은 결실을 맺어 놀라운 발명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기술에만 몰두했던 남자에게는 그것을 세상에 알릴만한 수완이 부족했다.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의 순간에 늘 남편과 함께 했던 여인은 힘들어하는 남편의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남편의 힘을 북돋울 수 있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남편의 발명품에 주목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성공적인 첫 장거리 주행의 100주년을 기념해 당시 모습을 재구성한 모습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된 어느 여름날 새벽. 그녀는 아직 잠들어 있는 남편 몰래 두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작업실로 발길을 옮겼다. 남편의 발명품을 꺼내어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이를 때까지 두 아들과 함께 조용히 밀어 옮김으로써, 그녀는 세상을 바꾸게 될 놀라운 여정을 시작했다.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난 남편은 식탁에서 ‘친정에 갔다 올게요’라고 쓰인 아내의 쪽지를 보고 곧바로 자신의 작업실로 달려갔다. 작업실의 문을 연 순간, 그는 곧바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직감했다. 때는 1888년 8월. 남편의 발명품을 가지고 친정으로 떠난 여인의 이름은 베르타(Bertha)였고, 아내의 가출에 충격을 받은 남자의 이름은 카를 벤츠(Carl Benz)였다. 그리고 베르타가 가져간 남편의 발명품은 바로 자동차였다.

남편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된 여행

카를 벤츠가 세계 첫 자동차를 발명해 특허를 얻은 것은 1886년이었다. 이후로 자동차가 하나둘씩 선보이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이 새로운 기계의 미래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말 없이 움직인다는 점을 빼면 모든 면에서 마차보다 나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벤츠의 동업자들조차도 확신이 없어 등을 돌릴 정도였다. 

두 아들과 함께 떠난 베르타 벤츠의 여정을 보여주는 지도

하지만 카를과 아내 베르타는 자동차의 밝은 미래를 굳게 믿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동차가 기술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과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증명하는 것이었다. 베르타의 친정이 있던 포르츠하임(Pforzheim)은 벤츠 가족이 살고 있던 만하임(Mannheim)에서 남쪽으로 100여 km 떨어져 있었고, 그녀는 남편의 발명품이라면 그 정도 거리는 충분히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 누구도 자동차로 그만큼 먼 거리를 달려본 적은 없었다.

확신을 갖고 두 아들까지 대동하고 호기롭게 길을 나선 베르타였지만, 여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그녀는 ‘과연 어느 길로 가야 하느냐’는 고민을 해야 했다. 대충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변변한 지도 한 장 없이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베르타는 ‘일단 아는 동네부터 찾아가자’고 마음먹었고, 그래서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멀리 돌기 시작했다.

엄마와 두 아들의 험난한 여정

처음 연료를 구했던 약국에서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

물어물어 남쪽으로 방향을 돌린 후에, 베르타는 자동차로 떠나는 장거리 여행에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연료였다. 벤츠의 자동차는 리그로인이라는 일종의 용제를 연료로 썼다. 자동차는 물론 주유소도 없던 시절, 화학자들만 갖고 있던 이 연료를 구하기 위해 베르타는 중간에 들른 약국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세계 최초의 주유소’가 된 그 약국은 지금도 독일 비슬로흐(Wiesloch)에 남아 있다. 그 후로도 베르타는 필요할 때마다 약국에 들러 리그로인을 구했다.

하지만 연료보다도 세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든 것은 엔진의 냉각수였다. 벤츠의 자동차에 쓰인 냉각수는 지금의 자동차와는 달리 증발해 날아가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수시로 물을 구해 냉각장치를 채워야 했다. 길 주변의 가정집이나 선술집은 물론 냇가에서 물을 퍼 오거나, 심지어는 길가의 도랑에서 하수를 쓰기도 했다. 

베르타 벤츠의 ‘친정 나들이’에 쓰였던 벤츠의 파텐트 모토바겐 모델 III

여행의 수단이 된 것은 카를 벤츠가 만든 세 번째 자동차였다. 첫 자동차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소한 문제들은 끊임없이 여행자들을 괴롭혔다. 놀랍게도 베르타는 대부분의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 남편을 도우며 자동차의 기술적인 부분을 어깨너머로 익힌 덕분이었다. 연료 파이프가 막히면 모자 핀으로 뚫었고, 구멍난 점화선은 스타킹 밴드를 뜯어 수리했다. 닳아버린 브레이크는 구두 수선점에서 얻은 가죽을 씌워 고치기도 했다. 언덕길에서 차를 미는 일은 15살과 14살이었던 두 아들의 몫이었다.

자동차의 미래를 바꾼 첫 여성 운전자

우여곡절 끝에 세 사람은 해질 무렵이 되어 포르츠하임에 도착했다. 베르타는 남편에게 전보로 도착했음을 알렸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 여행이, 그것도 세계 최초의 여성 운전자에 의해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사흘 뒤에 베르타와 두 아들은 남편이 기다리는 만하임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떠났다. 포르츠하임까지 가는 길에 얻은 경험 덕분에, 돌아가는 길은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재회한 벤츠 가족은 성공적인 여행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벤츠인 파텐트 모토바겐 모델 III(왼쪽)과 벤츠 첫 자동차의 복제품

베르타의 무모했던 도전은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믿을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사람들은 자동차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첫 자동차 여행에서 얻은 경험들은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데 반영되었고, 벤츠는 새 자동차의 개발에 철저한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철저한 개발과정과 테스트 역시 베르타 벤츠의 친정 나들이가 아니었다면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